아빠의 기억 _ 아들은 9살
아마도 네살 정도였던 것 같다.
상장을 넣은 종이로 된 긴원통으로 엉덩이를 때렸던 것 같다.
맞기 싫다며 울면서 또는 소리를 지르면서 집 이리저리 도망을 다녔다.
아랑곳하지 않고 쫓아가며 때렸다.
양말을 신고 도망을 치던 아이가 미끄러져 넘어지며서 한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넘어졌잖아요!!’
태권도 경기도 아닌데 넘어지면 때리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러고도 몇대 더 때렸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혼을 낼 일이 있을 경우에는 플라스틱 막대기나 나무 막대기로 바닥을 치거나 둔탁한 소리를 낼 만한 다른 곳을 때리곤 했다.
그럴때면 긴장한 아이는 정자세로 앉아 시키지도 않는 반성의 말들을 줄줄 쏟아내곤 했다.
그러다 막대기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더더욱 긴장한 얼굴이 역력했다.
어찌보면 이러한 행동들이 협박이 되고 강자가 약자를 다스리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항상 맴돌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조용히 불러앉힌다. 다른 분위기에 다른 목소리로 잠시만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고만 해도 아이는 눈치를 챈다.
그렇게 나름의 훈육으로 잘못을 지적해주고 스스로 깨우치게 해주는 것이 나의 최선 또는 정답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아이에게 어떻게 훈육하고 어떤 설득을 하는지는 소면을 만드는 장인들도 계절마다 습기에 의해 소금과 물의 배합을 달리 하는 것 처럼 각각의 아이 성격과 가정 환경에서 다른 처세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 교육에 유능한 교수님과 전문가들은 많은 아이들을 봐오면서 스스로 체득하면서 쌓인 빅데이터로 아이의성향을 파악해서 대처할지 모른다.
그런 연구가들과 아이의 곁에서 한 아이만 바라보는 부모입장과 대처 방법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방법이 맞는 방법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면서 말이다.
어릴 적부터 짜증을 쉽사리 내고 잘 삐지는 아이.
환경이 그리 만들었는지 아니면 어른이기에 드러내지 않는 부모중에 성격을 닮은 것인지 모른다.
지금까지 네살때를 제외하고는 화내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방법을 취해왔다.
그런데 오늘 이사준비를 하면서 땀은 범벅이고 아내와 새집증후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때 아이가 ‘엄마~’ 를 부르며 엄마가 그에게 고개 돌리기를 원하고 있었다.
불과 2,3초 동안 아내는 나와 하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평소처럼 우리가 대화를 하더라도 아이가 부를 경우에는 즉각 반응을 해왔고 오늘 역시 10여초만 기다렸어도 우리의 대화는 끝날 참이었다.
하지만 그 10여초를 기다리지 못하고 2,3초만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달래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게 해왔지만 오늘은 달랐다.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공부방으로 불러들여 엎드려 뻗쳐를 시킨 상태에서 말려 있는 도배용 벽지를 들고 엉덩이를 세번 내려쳤다.
물론 그리 아픔은 없겠지만 그 상황이 두렵고 무섭기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책상 아래로 숨기 바빴다.
그렇게 세대의 몽둥이를 맞고 반성문을 썼다.
모른다.
그 반성문의 마음, 잘못했다는 말이 가슴속에서 번쩍 정신을 들게 했는지.
가능하면 아이를 때리지 않겠다는 맹세가 오늘 무너졌다.
아이는 그만큼의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당분간 말을 잘 들을지 모른다.
하지만 때리지 않고도 여러번의 훈육을 해서 느낄 수 있게 만들 수 있지만.
난 오늘 훈육의 지름길을 택한 듯 해서 마음에 성에가 찬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