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첫 기관생활을 시작하는 날.
2026년 3월, 49개월
"태은아, 기분이 어때?"
"... 무서워."
"무서워?"
"어, 긴장돼. 엄마..."
"긴장되고 무서운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거야, 태은아."
"그래?"
"그럼! 모든 새로운 시작은 조금씩 떨리고 긴장될 수 있어.
그리고 그건, 그만큼 태은이가 잘 해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해."
"(창 밖을 보며) 저 친구도 유치원 가나보다!
어, 엄마! 여기 노란 스쿨버스도 지나간다!"
"그러네. 다들 어린이집도 가고 유치원도 가나 봐, 그치?"
드디어 3월 3일 화요일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아니 몇 달 전, 어쩌면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상상으로만 가늠해 봤던 순간이 왔다.
오늘은 태은이가 만 49개월 만에
난생처음 기관생활을 시작하는 날이다.
"태은아, 태은이가 그동안 엄마랑 매일매일 여기저기 다니면서 우리 엄청 재밌었잖아. 그치?
산도 가고 바다도 가고 또 친구들도 만나고..."
"트니친구들? 엄마! 놀이터도 갔잖아!"
"그래, 트니친구들이랑 놀이터도 가고...
아윤이 집에도 놀러 가고 또 하울이 형아랑 키즈카페도 가고..."
"엄마! 아윤이도 유치원에 간대?"
"아윤이도 유치원 간대. 그리고 하울이 형아도 유치원 가고
이준이 형, 인아... 모두모두 유치원에 간대."
"...그래?"
태은이는 창 밖을 응시하며 나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누구누구도 다 유치원에 간다는 말로 위안을 찾는 거 같았다.
저 작은 가슴 찰랑이는 마음이 얼마나 복작 시끄러울까,
창 밖을 내다보는 아이의 옆모습을 룸미러로 흘끗 보며
나는 계속 말을 걸었다.
"다섯 살이 되면 이제 유치원에 들어갈 수 있거든.
태은이도 드디어 유치원을 시작하는 거야."
"엄마...! 근데 나... 무서워..."
아이는 덤덤한 거 같으면서도
한 번만 더 건드리면 울음이 톡 터질 거 같기도 했다.
"근데 태은아 그거 알아? 태은이 지금 다섯 살이잖아.
여섯 살 되고 일곱 살 되었을 때 엄마가
'너 다섯 살 때 처음 유치원 간다고 막 무서워했잖아~' 얘기해 주면
기억도 못할지도 몰라!"
"... 그래?"
"응! 지금 무서운 마음은 지금이 지금이라서 드는 거야.
그런 마음은 대부분 사라지거든.
막상 유치원 가면 춤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하느라
즐거운 일이 너무너무 많아서 무서웠다는 마음은 잊게 되더라고."
"날아가버리는 거야? 연기처럼?"
"그렇지! 바람 불면 훅 날아가버리는 연기 같은 거야."
내가 굳이 아이의 두려움을 상쇄시키려고 하지 않아도
아이는 알아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두렵지만 해볼 만하다는 것,
불편하지만 궁금하기도 하다는 것...
그런저런 마음들 사이에서
태은이는 스스로 발란스를 잡으려 애쓰고 있음이 느껴졌다.
"태은이는 잘할 수 있어, 누구보다 엄마가 잘 알고 있어!
태은이 마음은 이미 준비가 넘치도록 되어있어.
그러니까 걱정 말고 가서 즐겁게 지내고 끝나면 엄마가 데리러 올게!"
"엄마! 밖에 있을 거야?"
"아니, 태은이는 선생님이랑 들어가고
엄마는 집에 가서 있다가 시간 되면 태은이 만나러 올 거야."
"지난번처럼 한 시간?"
"아니, 오늘은 좀 더 길어.
다섯 시간 있다가 올게."
"응..."
유치원까지 가는 10여분 동안 태은이는 울지도, 떼쓰지도 않았다.
그저 두런두런 나와 대화하며 창 밖을 보던 모습,
대견함에 나는 핸들을 꽉 쥐었다.
"다섯 살 되기까지 태은이랑 엄마랑 정말 재미있게 잘 놀았다, 그치?
엄마는 태은이랑 그런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어서 너무너무 행복했어.
정말 감사해."
"엄마..."
"응?"
"근데 나 채소는 못 먹을 거 같아..."
"괜찮아 태은아.
선생님께 못 먹겠다고 말씀드리면 된다고 했지?"
"억지로 먹이지 않아?"
"절대로! 선생님께서 억지로 먹이시지 않아. 걱정 마."
"알겠어..."
"근데 선생님께서 기다려주시는 대신, 태은이도
한 번 하나만 먹어볼까? 요런 정도의 마음은 가져보면 좋을 거 같아."
"어, 엄마! 혀에만 대보는 거 할 수 있어!"
"그래, 다른 친구들은 잘 먹는지도 봐보고.
그러다 보면 또 할 수 있어.
엄마는 태은이가 뭐든지 해보면 좋겠어."
"알겠어 엄마!"
우리의 4년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그로 인해 태은이의 내면이 얼마나 단단하고 반짝이는지
가는 차 안에서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그보다는 아이의 불안함에 귀 기울이는 게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미 단단한 보석 같은 마음이기에
불안함도 느끼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도착했다...!"
"어, 엄마! 폴리 장난감은 차에 두고 갔다 올게!"
"그래 멋져! 엄마가 잘 맡아놨다가 이따 다시 줄게. 자, 가보자!"
전 날 내린 비로 아직 축축한 땅이 깨끗하고 기분 좋았다.
주차장에서 유치원 문 앞까지 100미터 정도 거리를 미끄러지듯
우리는 손을 잡고 까불거리며 뛰어갔다.
선생님께서 문을 열어주시고
나는 태은이의 작은 손을 선생님 손에 쥐어드렸다.
태은이 잘하고 와, 이따 만나자!
머뭇거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선생님,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드리고
얼른 뒤돌아 아이의 시야에서 빠져나왔다.
빨간 벽돌은 용암이고
까만 벽돌은 땅이야!
라며 깡총대던 보도블럭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종종 걸음으로 꾹꾹 눌러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카시트에 아이가 앉아있지 않다는 사실 만으로
등 뒤가 훵- 했다.
3.5km,
차로 12분 거리.
들여보낸 지 3시간 지났고
다시 만나기까지 2시간 남았다.
지금은
2026년 3월 3일 오후 12시 30분.
분명 웃으며 그리운 마음으로 돌아볼
오늘,
지금 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