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재미있어야 장난
2024년 크리스마스
동지가 막 지난 12월의 차가운 하늘, 그 퍼런 속으로
뜨거운 태양이 노란빛을 뿜으며 지고 있다.
한 겨울의 해 질 녘이란 묘하다.
마치 길이 잘 들은 메탈 같은 느낌.
저녁 5시 미사시간을 맞추려 부랴부랴
아빠 손 잡고 가던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남편에게 목마 태우고
뒷모습을 찍었다.
미사 시작 5분 전,
살금살금 유아방 문을 열어
270과 240 사이에 150 신발을 가지런히 모아두고
아랫목처럼 데워진 장판 위로 아구구구 앉았다.
아, 기분 좋은 뜨끈함.
태은이는 내 무릎에 앉아 제법 두 손을 모으고
"예순님 생일 튜카하러 왔어요~" 하고는
미사 시작과 함께
천천히 몸이 노곤노곤 녹아내려 묵직해지더니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유아방에는 우리 가족을 포함해 세 가족이 모였다.
우리 바로 뒤 정중앙으로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엄마 아빠가
1등으로 왔는지 처음부터 앉아있었다.
가족 모두 크리스마스가 적절히 들어간 옷차림이다,
엄마는 빨간 니트를 입었고 아빠는 그보다 톤다운된 버건디 스웨터,
아이는 산타가 그려진 양말에 빨갛고 두꺼운 니트원피스를 입고
엄마에게 눕듯이 비스듬하게 기대어 앉아있다.
오른편 구석으로는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엄마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이어 그녀의 남편과 아홉 살 정도 큰 딸도 들어온다.
풍채가 좋은 남편이 구석자리에 조심스레 무릎을 꿇더니
다시 다리를 풀어 아빠다리를 하며 자세를 잡는데
어찌나 천천히 움직이시는지 슬로모션인 줄.
나도, 중앙에 앉아있던 부모도 움찔움찔,
닿기에는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왠지 과장된 배려의 움직임을 보여줘야 할 거 같다.
성탄미사는 평소보다 길 (수밖에 없)다.
오늘을 위해 준비하신 신부님의 강론에도 힘이 들어가 있고
우리처럼 [오늘이라도] 미사를 드리러 온 사람들 덕분에
신자수도 많아서 봉헌 줄도 길고
평상시에 2절이면 끝났을 성가가 4절까지 이어진다.
대여섯 살 아이들이 견디기에는 좀이 쑤실 수밖에.
미사 내내 작은 공간을 헤집고 다니던 아들을
아이의 엄마는 아랑곳 않고 두 손을 모은 채 미사에 집중했고
간신히 편한 자세를 찾은 아빠가 빙빙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며
스으읍, 입소리를 몇 번 냈다.
내 뒤로 크리스마스 포장지처럼 꾸며 입은 여자아이는
엄마의 패딩을 이불 삼아 잠이 들었다.
드디어 마침성가 차례,
남매의 아빠는 진즉부터 일어나 신발을 반쯤 걸터신고
이제 그만 가자고 부인을 재촉한다.
남매는 신이 나서 앞다퉈 신발장으로 촐랑이며 나갔고
뒤이어 엄마가 못마땅한 듯 코트 허리를 여미며 퇴장했다.
미사가 끝났다.
얼마나 잘 자고 있던지
패딩 속 파묻혔던 여자아이의 얼굴에 머리카락이 화석처럼 붙어있다.
눈이 부신지 째푸린 얼굴이지만
크게 짜증도 없이 조금 쨍쨍 대며 부스스 일어나는 딸에게
"잘 잤어?" 두 볼을 감싸 쥐며 이마를 맞대는 엄마를 보며
‘저 가족 분위기 좋다.. 자다 깨도 안 우네’ 생각했다.
태은이는 일어날 기미 없이 새근새근 나비잠에 빠져있다.
뒤에 앉은 가족 먼저 나간 다음에 천천히 일어나자, 고
남편과 눈으로 사인을 주고받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방금 전과 너무 달라진 상황.
문을 여는 동시에 여자아이의 울음소리 볼륨이 올라간다.
짧은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갑자기 엄청 화가 나서
드러누운 채로 발길질을 해대고 난리가 났다.
두 눈은 질끈 감고 아랫니가 다 보이도록 분한 입모양,
“엄마 나빠!! 아빠 나빠!!!” 하면서.
이러다 태은이도 깨서 울면 대환장파티다,
나는 순간 위기를 감지하고 빠르게 남편에게
'서둘러!'
레이저를 쏘아붙였다.
“아니.. 엄마가 너무 귀여워서.. ”
아이를 달래주는 엄마,
난감한 듯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의 아빠도
"그래~ 장난한 거야~ 장난이잖아"
한 마디 거든다.
하지만 아이는 진정이 안되고
이제는 두 팔까지 휘두르며
화가 점점 더 증폭되어 간다.
축 쳐져 느른해진 태은이를 안아 남편에게 엎어 안기고
패딩을 덮어주며 매무새를 만져주는데
여자아이의 울음소리는 이제
칭얼거림에서 악에 받친 으악소리로 바뀌었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올라오는 분노의 그것.
소금 뿌린 민달팽이처럼 격하게 온몸으로 바닥을 쿵쾅인다.
마침 태은이가 꿈벅꿈벅
무거워진 눈꺼풀을 치켜뜨느라 쌍꺼풀이 생긴 눈을 뜬다.
'... 가자 가자!'
남편의 등을 두들기며 신발을 아무렇게나 구겨 신었다.
가방이며 모자며 남은 짐들을 챙겨 들고
허리를 숙여 태은이의 신발을 줍고 나가려는데
여자아이의 아빠가 목소리를 깔며 내뱉은 말에
멈칫,
나를 세웠다.
그가 입고 있던 버건디색 라운드넥 스웨터에
[권위]의 칼라가 빳빳하게 올라온 듯한,
위엄 있는 목소리로.
#네?
#여기서성당이왜나와
고맙게도 태은이는 깨고 나서도 울지 않았고
"예순님 생일 끝났어? 케이크는?" 하며
횡설수설 이쁜 말들을 뱉어낸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와 봉사자들이 나눠주시는 과자선물을 받아 들고
저녁 뭐 먹을까? 들썩이며 성당을 나섰다.
다시 두꺼운 유리문을 여자
완연하게 어둑해진 밤의 찬 공기가 뺨에 와닿는다.
"아까 그 여자아이 왜 운 거야?"
남편에게 물었다.
"아아.. 아이가 비몽사몽 하니까 엄마 아빠가 귀엽다며 볼을 꼬집더라구~"
#아이고
#분할만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