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소의 곁 14화

승객인데요, 관객입니다.

by FONDOF

강남 - 과천 방면, 지선 버스 안







버스는 덜컹이며 경쾌하게 달려 양재꽃시장에 다다랐다.

무슨 음악을 들을지 한참 고민하며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이던 차에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웬 아이의 웃음소리,

소리가 얌체공처럼 버스 안에 마구 튕기는듯한

“히잏히잏히이잏!”


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삐삐머리에 앞머리는 일자를 해갖고는,

의기양양하게 히잏히잏히잏

혼자 웃으며 아장아장 걸어 올라오더니

버스 맨 뒷자리로 가 기어올라 앉는다.


방금 벌어진 이 기막힌 장면이

신기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여

모든 승객이 일제히 그 아이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뒤이어 올라타는 승객들 중 동행자를 찾는다.


저 할아버진가?

아니다 혼자 앉으신다.

저 아주머닌가?

아니네.


아이는 짤뚱한 다리를 쭉 펴고 파닥파닥 대며

양옆으로 앉아있는 젊은 여성에게 번갈아

히히힣 애교를 부리고 있다.


곧이어

드디어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접은 유모차를 들고 힘겹게 버스에 올라

두리번대며 아이를 한 번 살피곤

"...하!"

안도섞인 한숨 내뱉더니

가방을 뒤적여 간신히 카드를 찍고

웃는 듯 째푸린 듯한 얼굴로

아이에게 다가간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승객들은 이 작은 해프닝을 힐끗힐끗

저마다 지켜본다.






나는 맨 뒤로부터 두 칸 앞 오른쪽 창가에 앉아있었다.

아이엄마는 힘들게 유모차를 들고 와서

나와 내 뒷좌석에 걸쳐 옆으로 눕힌다.


그때

“거 유모차 잘 잡아요! 괜히 쏠려서 승객들 다치면 안 된다고!”

하는 기사님의 볼멘 경고가 기다란 버스 안에 쩌렁쩌렁 울린다.

선글라스 밑으로 짜증 가득 섞인 눈빛이 보이는 듯 매섭다.

아이엄마는 "ㄴ.. 네에!" 안절부절못하며

유모차를 이렇게 세웠다 저렇게 눕혔다를 반복하더니

결국 접었던 걸 다시 펼쳐 세워서

내 옆까지 걸치게 주차했다.


내내 신경이 쓰여서

반쯤 뒤로 앉아 살피던 나도

일단락이 된듯하여 다시 앞을 보고 앉아

드디어 음악을 틀었다.

셔플 설정을 한 상태로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레이디 가가의 노래가 재생되기에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한 30초 지났을까-

버스가 신호에 걸려 정차했고,

유모차는 순식간에 그대로 미끄러진다.

나와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동시에 잡았다.


“거 조심하라니까요- 나 참!”

기사님의 2차 경고,

지렁이 두 마리가 이마에서 꿈틀대듯

눈썹이 잔뜩 화가 났다.


아이엄마는 엉덩이를 드는 시늉만 하며 일어나는 척,

엉거주춤 유모차를 잡고 몇 번 흔들어보더니

그대로 다시 자리에 털썩 앉는다.


“저, 제가 잡고 있을게요.”

“아 아니 괜찮아요 이제, 바퀴 브레이크 걸어놔서...”

“네..? 아니 그래도 그냥 잡고 갈게요 괜찮아요.”


아이엄마는

난감한 듯 고마운 듯 무안한 듯 복합적인 웃음을 지으며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말투로

“참 이상하네.. 이게 브레이크 걸었는데 왜 앞으로 쏠리지..”

혼잣말을 크게 한다.


'브레이크를 걸었어도 움직이는 버스 안이잖아요...'

당황한 내 머릿속에도 많은 말들이 올라왔지만

그냥 눈웃음으로 다시 한번 괜찮아요^^ 하곤

왼 팔을 조금 뻗어 유모차의 손잡이 언저리 지점을 적당히 잡았다.

매끈한 메탈이 생각보다 차갑지 않고 뜨뜻했다.


버스는 다시 신나게 달렸고

5cm쯤 열어놓은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노란 빗살 모양의 햇살도 쏟아져 들어온다.

잠도 쏟아진다.

이어폰 너머로 웬 동요가 들려온다.

아이에게 핸드폰을 틀어준 모양이다.

눈이 부시다.

눈이 감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과천정부청사역 즈음에서 아이와 엄마가 일어났다.

이번이 아니라 다음에 내리려고 미리 일어난 모양이다.

아이엄마는 내게 고맙다고 두어 번 말하며 유모차를 가져가려다,

"안돼! 엄마 손!"

달리는 버스 안에서 혼자 서있는 아이를 보고

다시 급하게 아이 손을 잡았다.


“엄마 놔아- 엄마 이거 놔아-"

아이는 몸은 베베꼬며 잡힌 손을 빼려고 안간힘을 쓰고

엄마는 그런 아이를 달래 가며 유모차와 창 밖을 번갈아 살핀다.

“엄마 놓으라고오- 놔아 놔아아아!”

아이의 찡얼거림은 점점 커지고

승객들은 다시 한번 이 해프닝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윽고 버스가 정차했고,

“기사님 여기서 내릴게요, 잠시만요-"

하는 아이엄마의 목소리.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열린 문 앞에 섰다.

그때 문 앞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가 별렀다는 듯 벌떡 일어나셔서

아이를 두 팔로 번쩍 들어 안아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신다.

그 덕에 아이엄마는 유모차를 들고 복잡한 버스에서 내려

버스 뒷문 앞에서 다시 유모차를 편다.

좁아진 공간에 내리려는 승객들이 밀려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 다시 보니 아이가

버스와 인도 사이 찻길에 그대로 혼자 서있다,

안아서 내려주신 아주머니께서는

벌써 저만치 성큼성큼 제 갈 길을 가버리셨다.

인도에 서있던 한 남학생이 그런 아이를 발견하고 머뭇머뭇

아이를 안아야 하나 안아도 되나

주저주저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버스는 깜박이를 켜고 차선을 바꿔 다시 출발했다.






“아이고오!”

한숨인 듯 탄성인 듯

내 뒷자리 아주머니는 그렇게 단말마를 뱉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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