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_미운 네 살 못지않다.
2025년 11월, 46개월
다시 생태탐방원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차를 대고 P버튼을 눌렀다.
아이의 울부짖음은 잦아들었지만
긴장의 공기가 묵직하게 차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화를 내 버릴까,
아니야 화 좀 그만 내고 싶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아니.. 그렇게 쉽게 넘어가서는 안되지.
얼러야 하나
달래야 하나
엄하고 무섭게 일관해버릴까...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더해도
정답 따위는 없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 버렸다는 자체가 속상한데 뭐.
생각이 팽창하여 결국 울음이 터져버렸다.
내가 소리 내어 울자
아이도 다시 얼굴이 일그러지며 울기 시작했다.
눈물자욱이 아직 얼룩덜룩한 그 작은 얼굴에 다시,
통통한 볼 위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줄기져 흘러내렸다.
“태은아.. 어떻게 친구를 무니.. 니가 어떻게 사람을 무니..
너 정말 너무 큰 잘못을 한 거야, 알고 있어?
니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쁜 짓을 한 거야..”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는 노력도 않은 채
그대로 와르르 주저앉아버렸다.
내 우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이 순간을 각인하길 바랐다.
괴롭도록 이 장면이 날카롭고 깊이 새겨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은이는
"엄마 정말 미안해. 안 그럴게. 엄마 내가 친구를 물어서 미안해. 미안해!"
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아이가 쓸 수 있는 어휘란 어휘는 전부 다 써버린 거 같았다.
이제는 더 이상 묘수 같은 새로운 말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미안해]로만 일관하는 아이의 절실함이
너무 무력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작은 볼에 곡선을 그려가며 이어지는 눈물줄기는
턱 중앙으로 흘러 두 줄기가 만나져
한 방울 눈물로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 동안 차 안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 엄마가 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순간이 없어,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 너가 싫다.
미워."
그런 순간에는 왜 그렇게 더 괴롭기 위해서 그 감정으로 파고들게 되는 걸까?
나는 감정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선을 넘어버렸다.
그런 점들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찢어질 듯이 아프다.
그 때의 나에게 가서
입을 때려주고 싶다.
결국 남은 건
찰나의 감정을 가장 못되고 잔인한 말로 내뱉어 버린
나 자신에 대한 혐오뿐이다.
"어 엄마. 어 알겠어. 응. 미안해. 미안해 엄마."
천천히 내뱉는 나의 독 같은 말들을
아이는 온전히 듣고
씹어 삼키듯이 대답했다.
이제 더 이상 할 말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통화 괜찮아?"
"어,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눈물 잔뜩 묻어나는 내 목소리를 바로 감지한 남편이
먼저 무슨 일이냐 물어봐주자
염치도 없이 나는 그게 또 좋았다.
이 사태에 대해 대충 얘기하니
남편은 말없이 듣고는 내 얘기가 끝났음을 재차 확인하고 다시 물었다.
"음. 여보는 어떻게 하면 좋겠어?"
"나는 여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있을 자신이 없어."
"그럼 집에 가고 싶어?"
"그게..
진짜 솔직한 내 맘 같아서는
그냥 집에 가버리고 싶어."
"응..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는 여보가 결정하는 대로 따를게,
결정만 해줘.
일단 퇴근 안 하고 회사에서 기다릴 테니까 생각해 보고 연락 줘."
백번이고 천 번이고 짐 싸들고 나와서 가버리고 싶었다.
왜 짐을 싸서 나오지 않고 서둘러 나왔을까 후회가 됐다.
여기서 정말로 집에 가야 이 아이에게 이 사건이 제대로 각인될 텐데,
가장 소중한 걸 잃어버리는 경험으로 남아야
다시는 사람을 물거나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것 같은데..
마치 절대권력을 신에게 위임받은 양
아이에게 가장 효과적인 벌이 무엇일지 저울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한 켠으로는
여기서 내가 가버리면 이 여행은 망가질 거 같았다.
남아있는 친구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불편할까.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일이 있을 때
가지 말라고, 뭘 가냐고 했을 거 같았다.
그리고 사실 가장 솔직한 생각으로는
다시 들어가서 웃고 떠들고 히히호호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고 있을 미래의 나를 그려보니 거부감이 들었다.
그냥 도망쳐버리고 싶은 마음,
그건 순전히 [나]의 마음이었다.
나는 전화기를 스피커폰으로 돌려서 아이 옆에 놓아줬다.
차분하게 아이와 자초지종을 나누던 남편은
"근데 태은이가 친구를 문 거는 정말 큰 잘못인 건 알지?
네가 할 수 있는 태어나서 가장 나쁜 짓을 한 거야."
라고
내가 좀 전에 태은이에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해주었다.
"아빠도 잘 생각해 볼 테니까
태은이도 지금 이 순간만 지나가면 될 거라고 피하지 말고
두고두고 이 일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하고 반성했으면 좋겠다."
다른 공간에서 같은 결의 사랑으로
차분하게 아이에게 훈육의 언어를 구사해 주는 남편이
너무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나 또한 그렇게
조금씩 진정하는 쪽으로 몸을 돌려 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전화를 끊자 단체창에 문자가 와있었다.
언제 와?라는 말풍선이 그려진 귀여운 스티커.
시계를 보니 얼추 한 시간 정도 지나있었다.
그래, 기다리는 사람들도 얼마나 마음이 불편할까.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혜미한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한 번도 채 울리기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혜미가 전화를 받았다.
"언니~ 아이고 어디야?"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이들의 왁자지껄 즐겁게 노는 소리에
나는 속도 없이 몰래 안도했다.
"혜미야.. 유하는 괜찮아? 미안해.."
"아이고~ 언니 아니야 아니야.
언니 이럴까 봐 걱정하고 있었어!
우리 다 기다리고 있어, 빨리 들어와!
유하 아무렇지도 않아~"
"아 진짜.. 너무 미안해.."
"아니야 언니~ 유하도 태은이를 건드렸겠지~ 태은이가 괜히 왜 그랬겠어~"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는 혜미의 커다란 품에
나는 또 눈물이 나서 별 말도 못 하고 미안하다고만 했다.
어디냐고, 주차장이야? 내가 지금 갈까? 물어봐주는 혜미가 고마웠다.
유하와 태은이가 분리된 공간에서 따로
집중도 있게 마주할 기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래주겠냐고, 그럼 부탁한다고 했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하늘,
내 노란 패딩을 챙겨 들고 헐레벌떡 뛰어나오는 혜미가 어슴프레 보였다.
"언니~ 왜 옷도 안 입고 나갔어, 추운데~ 아이고 태은이~ 많이 놀랐지? 괜찮아 괜찮아~
"혜미야.. 너무 미안해.."
"아유 언니~ 아니야~ 진짜 아니야~ 유하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내 손을 덥석 잡아주는 혜미의 크고 거친 손,
힘을 주어 꼭 잡아주는 그 두 손에 담긴 마음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속절없이 울었다.
이러고 울고만 있는 것도
염치없고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안도의 마음, 속상함.. 여러 감정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밀려들었다.
연습한 대로
"이모, 죄송해요."라고 얘기하는 태은이의 가슴을 쓸어주며
혜미는 연신 괜찮다고 했다.
"태은아 괜찮아~ 놀랬지?
놀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유하도 태은이 물었었잖아~~
서로 놀다가 때리고 그럴 수 있어~
우리는 서로 좋은 친구잖아, 그치?"
혜미는 태은이를 안아주며 등이며 가슴, 얼굴을 살뜰하게 쓸어주었다.
태은이도 혜미의 품에서 조금씩 진정하고 있었다.
버선발로 뛰쳐나와준 혜미 덕분에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을 거다.
태은이는 나와의 통곡, 아빠와의 통화, 혜미이모의 위로를 겪어내며
어느 정도 사태 파악을 한 거 같았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혜미에게
"이모, 이거! 여기서 제가! 2층 눌러서 혼자 올라갔었어요!"
라며 횡설수설,
아직 채 울음이 다 가시지 않은 호흡으로 간간히 끅끅대면서
자신의 짧은 무용담을 들려주며 마음을 다스리는 거 같았다.
처절하게 우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던 초겨울의 산책로를 한 달음에 지나,
우리는 다시 102호 숙소 앞에 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경희가 맞이해 주었다.
눈짓으로만 동태를 살펴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연우와 함께 패드를 보고 있던 유하는
엄마와 함께 태은이가 들어오자 곁눈질로 흘끗 쳐다보았다.
나는 태은이가 먼저 사과할 수 있도록 둘을 불러 마주 세웠는데
유하가 먼저 미안하다고 태은이에게 얘기해 주었다.
"태은아, 미안해!"
"나도 미안해 유하야. 깨물어서 정말 미안해."
아이들의 화해는 늘 그렇듯 그렇게
순식간에 싱겁게 이루어졌다.
둘은 서로를 꼭 안아주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같이 엎드려
패드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대로 일단락이 된 거 같다.
나는 조금 진정을 하고 옆방으로 가서
기다렸을 현아와 아름이에게 잘 다녀왔다고 얘기했다.
문을 열자마자 아름이가 이름처럼 한아름 팔을 둘러 커다랗게 안아주었다.
"아이고 언니~ 마음이 이렇게 약해서 어떡해. 이제 시작이야~"
첫째 7살 규비를 진작 유치원에 보내본 현아가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언니 성격에 진짜 주차장으로 가서 집에 갔을 거 같았어!"
애 키우다 보면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라고
이렇게까지 할 거 없다고 얘기해 주는 둘에게,
반 웃으면서 나를 풀어주려는 듯 이야기를 해주는 모습에
나는 또 고맙고 또 미안했다.
하지만
계속 이 기분에 머물러 있는 것도 못난 짓이다.
이미 충분히 마음 쓰이게 해버렸다,
모두에게 민폐를 끼쳐버렸다는 생각에
얼른 털어버리고 모드를 전환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다 같이 한 방에 모여 뜨끈한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오늘을 위해 준비한 10ml 유리병에
오늘 산에서 모아 온 알록달록 나뭇잎들을 모아
별, 나비, 음표 등 모양 펀치로 구멍을 내어
우리들의 가을을 차곡차곡 담아 채웠다.
새빨간 단풍잎, 갈색 플라타너스, 노란 은행잎, 얼룩덜룩 참나무 잎..
고사리 손으로 모양 펀치를 내어 유리병에 하나하나 넣으면
엄마들은 가죽끈을 묶어 아이의 목에 걸어주었다.
아이들은 내복만 입고 뜨끈한 방바닥을 여한 없이 쿵쾅대며 뛰어다녔다.
꺅꺅 소리를 질러가며 괜히 우르르 몰려다녔다가
침대방에 모여 앉아 자기들끼리 뭔가 모의작당도 하고
식탁에 아무렇게나 모여 초코송이 과자를 으적이고
다시 둘씩 셋씩 작은 무리로 나누어 놀기도 했다.
태은이는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꺅꺅,
채아 옆에 딱 붙어서 과자를 먹고
유하랑 앞다퉈 뛰며 방으로 들어갔다가
규민이 옆에 앉아 규비 누나 이야기를 듣고
연우와 어깨를 맞대고 엎드려 패드도 신나게 봤다.
웃을 때면 윗니 아랫니가 전부 다 하얗게 드러나는 얼굴,
아이가 저렇게 천진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쉽게 안도하려는 내가 싫었다.
웃는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복잡할수록
나는 오늘의 훈육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내 아이가 나의 가치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때,
왜 나는 그 지점에서 아이에게 배신감을 느꼈을까.
아이에게 실망을 하고
아이가 밉기까지 했던 건
뭐였을까.
물론 잘한 행동은 아니지만
아이는 아이로서 할법한 행동을 했다.
그냥 그뿐이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사랑으로 아이를 훈육하고 가르쳐왔다고 생각했던 모든 가치들이
한꺼번에 부정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낀 거다.
어느 정도는
'우리 아이는 그럴 일 없을 거야.'라고 자부해 왔던,
그 꼴 같지 않은 확신이 훅 부끄러워지면서
나는 안전하다, 안도하고 있었던 지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니
내가 그동안 열심히 해온 육아가 전면으로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건 근간이 흔들리는 두려움이었고,
절망감이었으며 불쾌하기까지 한 감정이었다.
그것이 아이에 대한 미운감정과 실망,
배신감으로까지 이어진 거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감정이 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까지 아이와 내가
서로 밑바닥을 다 드러내 보이면서 통곡오열을 했다는 것..
이 모든 게 결국 적당한 정도의 훈육이었나 자문하니
답은 너무나 [아니]라는 거다.
결국 나의 이고(ego)에 의해,
나의 이고가 더 중요해서 일어난,
내 자존심 하나 지키기 위해 아니,
내 자존심이 더 컸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판을 키워버린 현장이지 않았나..
그런 부분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됐다.
자신의 바람과 욕심 등을 자식에게 투영하는 부모만큼은
절대 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나는 결코 그런 부모가 아니라는
일말의 우월감 같은 게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고개를 들면서
그것이 자기혐오와 맞물리게 되었다.
자식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고 가르치는 건
응당 부모의 몫이자 역할이지만,
거기에 자식에 대한 실망감,
자식으로 인한 배신감의 감정까지 올라오는 건
결국 부모 자신의 이고가 상처받았기 때문에 드는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보다
나의 이고가 더 컸던
그 찰나의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의 나에 대해서..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나의 생각이 머무르는 지점이다.
그런 차원에서라도 더더욱
이 날의 사건과 이 글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
.
.
아이가 네 살이면 미운 네 살이라더니
엄마 나이 네 살도 못지않다.
네 살 정도면 그런 나이인가 싶다.
알만큼 아는 거 같아도 사실은
모르는 거 투성이, 그래서
배울 것도 투성이.
#그래서미운나이
#엄마나이네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