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두 줄을 확인한 순간.
2020년 5월 11일 화요일 오전 6시 35분.
오늘을 얼마나 기다려왔던지.
배란 후 2주일이 지난 시점,
이제 비로소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 되었다.
= 임테기를 사용해도 될만한 시점이 되었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일 줄이야.
바스락대는 거위털 이불을 살살 걷으며 일어나
설레는 마음 부여잡으며 안방 화장실로 간다.
상부장 거울 속 나와 눈을 한 번 맞추고 비장하게 문을 열어
미리 구매해 놓은 얼리 임신테스트기 중 하나를 고른다.
브랜드만 다를 뿐, 다 똑같은 건데도
왠지 뭐가 더 좋을까 잠깐 고심하게 된다.
간절함이 빚어낸 멍청 모먼트.
테스트기를 편편한 곳에 두고 시간을 체크한다,
오전 6시 29분.
마치 오래 깨어있었던 거처럼
하나도 졸리지 않고 정신이 명쾌하다.
'정확히 5분 뒤에 볼 거야, 그전까지는 절대로 보지 않을 거야.'
스스로가 만들어낸 미신적 발상 아래
'지금부터 5분 간 너는 내게 중요하지 않아! 눈길도 안 줄 거야!'
이상한 다짐을 하고 있다.
평소 일상처럼 밤새 올라온 인스타 피드도 보고 뉴스 헤드라인도 살핀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가고..
정확히 5분이 지난 순간, 경미하게 가슴이 덜컹했다.
'30초만 더 지나고 봐야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저 순간의 나의 고집, 저 이상한 나를 너무나 이해한다.
.
.
.
C선과 T선으로 이뤄진 임신테스트기,
지난달, C선 한 줄이 뜬 것만 본 나는
'바로 옆 선의 간격이 이 정도였구나..' 하고 생각한다.
아주 희미했지만 T선이 보인다..! 는 걸
너무 쉽게 인정해 버리면 안 될 거 같은 마음에,
마치 원래 처음부터 이 두 선의 간격이 궁금했고,
그걸 알게 된 게 중요하다는 양.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연기라도 하듯
나는 그렇게 스스로도 잠깐 속이고 있었다.
'희미하면 인정 안 된 다 했었지?'
'아니 근데 희미하게나마 뜨는 자체가..!'
'그래 뭣도 아무것도 아니면 희미하게도 뜰 리가 없지..?'
순간을 뒤엎는 혹시는 순식간에 강력한 직관이 된다.
'맞아.. 두 줄이 떴다는 자체가 왠지.. 떴잖아, 떴다, 떴어..'
샤워하고 나와 출근할 채비를 하는 남편 앞에
조용히 임신테스트기를 놓았다.
"여보, 아닐 수도 있긴 한데... 보통 이렇게 희미하게 뜬 건 무효라고 하기도 한다는데.
그래도 뭔가 이렇게라도 T선이 뜬 자체가 너무 신기해 그렇지?"
남편은 임신테스트기를 짧게 보고는
내 눈을 길게 쳐다보며 말했다.
"응 그러네. 일단 내일도 모레도 좀 더 지켜보자!"
결혼도,
만남을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서로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으면서도
대화 중 결혼을 전제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그렇게 이어졌으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버리면 날아갈세라 깨어질세라
[결혼]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피해온
그였기에, 또 나였기에.
지금 이 순간의 이 덤덤함이
어떤 종류의 그것인지 너무나 알고 있기에.
우리는 그저 얼굴을 맞대고 눈을 맞추며
열심히 몇 번이고 끄덕끄덕 했다.
그렇게 그는 출근을 하고
나는 주인 없는 집에 몰래 들어온 도둑처럼
노트북을 열어 검색을 시작했다.
[임테기 희미한 두 줄]의 검색 결과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키워드로 검색을 했는지 단 번에 보이는 화면,
나의 고민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은
위안도 되고 불안도 된다.
"아무래도 호르몬이라는 게 날이 갈수록 그 수치가 올라가는 거더라."
"처음 눈에 보인 시점은 원래 흐릴 수밖에 없는 거다."
"하루만 지나도 훨씬 진해질 거다.."
나는 오레오시리얼 속에서 동결마시멜로만 건져먹는 습관처럼
필요한 문장들을 쏙쏙 찾아 읽어 삼키고
조금은 진정된 손으로 노트북을 닫았다.
'그런데 왠지 왠지 내일이면 더, 내일모레면 더 더 짙어질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