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름에 '태'라는 이름이 있어서, 웬만한 우리 글꼴들에는 앞에 "태-"라는 회사 이름을 붙인다.
그러다 보니 "태명조"나 "태고딕"이 우리 회사의 글꼴이냐는 문의가 많이 온다.
그러나 "태명조", "태고딕"은 엄밀히 말하여 우리 회사가 최초로 개발한 글꼴이 아니다. 물론 그 굵기의 명조, 고딕 글꼴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이름의 유래가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의 명조와 고딕 글꼴들은 대개의 경우 4가지의 기본 글꼴로 만들어졌었다.
그건 아마 일본의 사진식자 업체가 한국에 글자 원도를 주문할 때 그들의 한자와 함께 사용할 굵기의 한글을 주문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그들의 글꼴명을 그대로 적용하여 부른 것들이 과거에 명조, 고딕의 글자꼴 굵기를 의미하는 세, 중, 태, 견 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사용되던 명조와 고딕 글꼴은 가는 글꼴부터 굵은 글꼴 순으로
명조의 경우 : 세명조, 중명조, 태명조, 견명조
고딕의 경우 : 세고딕, 중고딕, 태고딕, 견고딕
으로 불렸다.
"견고딕"을 "견출고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 보다 더 굵은 글자를"특견명조","특견고딕"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지만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유통되던 사진식자판은 앞서 말한 4가지 굵기의 명조와 고딕이 있었다.
글꼴 강좌에서 소개했던 저작도구에서 글꼴의 굵기를 정의하는 Weight의 속성 옵션을 보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10가지가 넘는 굵기가 정의되어 있다.
각 굵기를 선택하면 옆에 숫자로 100부터 1000까지 그 굵기를 표현하는 숫자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한글 제작업체 중에도 이러한 굵기를 글꼴 명에 붙여 다양한 명조, 고딕을 개발하는 업체도 있고 그 덕분에 디자이너들은 예전에 비하여 훨씬 다양한 명조와 고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 만들어지던 명조와 고딕은 단순히 글자의 굵기만 다른 것이 아니고, 그 굵기에 가장 걸맞은 모양의 조형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 업체에 원도를 제공하셨던 최정호 선생과 같은 분들이 글꼴 원도를 그릴 때는 붓을 이용하여 종이에 글자를 그렸고, 어차피 새로운 굵기의 원도를 만들 것이라면 구태여 먼저 만든 명조, 고딕과 완벽하게 동일한 구조를 가져갈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가장 최근까지 종이에 원도를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사진식자판을 만들었던, 태시스템의 김화복 대표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루에 그릴 수 있는 원도 글자의 숫자는 10자에서 30자 정도였다.
수동 식자 원판을 위해 납품했던 글자가 1500자 남짓이라면, 3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글꼴의 기획과 뒷 작업을 포함한다면 때로는 6개월씩 한 가지 글꼴에 매달려서 원도를 만들어야 했다고 한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굵기를 조정하고, 같은 자소를 손쉽게 복사하고 수정하는 현재의 글꼴 제작에 비하여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고, 초기의 글꼴 개발자들은 그만큼 대우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인정받은 선구자에 한해서 이다.
일본 업체의 납품 대금 전체가 디자이너에게 지불되지는 않았겠지만, 대기업 대졸 초임이 20~30만 원 정도 일 때 한 글자의 일본 업체 납품 단가가 3~5,000원 정도였다고 하니, 적지 않은 금액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렇게 일본으로 공급된 우리의 명조, 고딕은 당시에는 집 한 채 가격이었다는 일본제 사진식자기에 담겨, 국내에 역 수입되었다. 현재의 한글 글꼴들이 우리의 우수한 디자이너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장비에 담겨 판매되고 있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모든 산업에 있어 기술과 디자인의 조합이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