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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크림

by 홍정주

10.11

몇일 전에 나에게 문자가 왔었다. 문자가 온 날짜는 10월 2일. 복지회에서 10월 10일 오후 2시부터 선착순 100명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나눠준다고 했다. 오늘은 왠 일로 오전 9시 40분에 일어났다. 복지회에 전화를 해 어떤 걸 주냐고 물으니 바디로션과 풋크림을 나누어 준단다. 나는 복지회에 전화한 것 빼놓고는 아침 시간 내내 브런치에 올린 글 중에서 출간할 만한 글들을 추리고 있었다. 추리다 보니 시간이 오후 1시 30분 정도가 되었다. 엇, 물품 받으려면 지금 나가야겠는데? 아니지, 지금 나가면 늦지, 나는 괜히 엄마에게 한 번 물어보았다.

“엄마, 발에 바르는 크림 준다는 데 받아 올까요?”

“괜찮다. 바세린 바르면 된다.”

엄마는 대답하셨다. 엄마의 발상태는 엉망이다. 항암부작용인지 발톱은 여러개가 빠졌고 발톱속도 까맣고(발톱무좀인건지, 항암부작용인지 모르겠다. 항암부작용일 가능성이 좀 더 높다.) 내성발톱증상도 있으시다. 발 뒤꿈치도 갈라지셨다. 엄마는 가끔

“내가 요즘 발이 안좋다”

라고 하신다.

복지회부터 집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린다. 나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풋크림은 받는 사람이 얼마 없어서 좀 늦게 가도 될지 몰라.’

나는 복지회에 전화를 해서 풋크림의 수량이 다 떨어졌는지 물어보았다.

“물량이 다 소진되었어요. 죄송합니다. 바디로션과 풋크림외에 치약과 쌀도 드렸어요.”

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시중에 파는 풋 크림을 검색해 보았다. 몇 천원 하는 싼 것부터 몇 만원 하는 비싼 것도 있었다. 풋크림을 일부러 사기는 좀 그렇고(풋크림을 대체할 수 있는 핸드크림을 포함한 여러 크림들이 집에 몇 개 있어서이다.) 무료로 받았으면 정말 잘 썼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갈까 말까 주저하고 고민할 시간에 그냥 풋크림을 받으러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풋크림을 받아왔으면 그건 이미 과거가 되어있을텐데 풋크림을 받지 못한 것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나를 오래도록 괴롭힐 것 같다.(엄마 발이 보일 때마다 그렇지 않을까? 풋크림을 사야하나..)모르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면 에너지도 떨어진다. 그 상태가 에너지를 갉아 먹는 달까. 움직일까 말까 고민이 될 때는 움직이는 것이 대개는 더 나은 것 같다. 이걸 할까, 말까 결정할 때는 총 3가지의 변수가 나온다.

안했을 때

미지-결론이 안남,

했을 때

1후회

2만족

결론이 남


여기에 대해서 말을 해보면 1번처럼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는 결론이 안 난다. 그리고 그 일이 하지 못한 무언가가 되면서 그 일이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 일을 했을 때의 결과는 후회하거나 만족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결론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한 일이므로 과거가 된다. 이것도 왠만하면 하고 후회하는게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나은 이유 중 하나이다. 풋크림이 별로 안 좋은 것이었어도 받아왔으면 왔다갔다 하는 시간 반나절만 낭비하는데 그친다. 그런데 풋크림을 받지 못하니까 이것이 미지의 영역이 되어 계속 머릿속에서 가정법으로 사람을 괴롭힌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할 때가 있다. 이것을 했을 때 생각보다 별로라 도로 무르고 싶을 때, 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즉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정도면 나는 그 일은 무조건 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예를 들면 나에게 일자리 제의가 왔었을 때, 내가 만약 그 일자리를 해보고 도저히 못하겠다 싶으면 한달 두달 만에 그만둬도 됐었다.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이 탈락되서 다시 신청하고 이런 과정이 좀 번거롭더라도 취업해서 얻을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나는 판단력이 없어 좋은 기회를 날렸다. 특히 지금 아니면 절대 잡을 수 없는 기회.절호의 찬스, 타이밍,이런것들은 정말 꽉 잡아야 한다. 해보고 아니면 도로 무르면 된다. 또한 어떤 걸 하기로 정하고 했는데 만족이면 마침표가 찍어지는 아주 잘한 선택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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