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정리

​씨앗을 뿌려봐, 아픔이 길이 될지도 모르잖아

김승섭,『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 #책 리뷰

by 광호

김승섭 작가는 사회역학자입니다. 몸과 건강에 대해 연구하고, 질병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합니다. 예를 들어 폭염이라는 재난은 왜 가난한 사람과 독거인에게 더 치명적인지, 낙태 금지가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해고된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지 말이죠. 작가는 이러한 연구를 하고 있음에도 ‘혁명의 전망 없이 나는 어떻게 해야 진보적으로 살 수 있을까’,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나는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음을 작가의 말을 통해 고백합니다. 저는 이 모호함에 목이 걸려 작가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전문가나 학자가 아닌 일반 대중들을 독자로 쓴 책입니다. 방대한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하였음에도 전문 용어나 난해한 문장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요'체를 쓰고 있어서 대화를 듣는 듯합니다. 친근감마저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내용이 부실하다거나 가볍다는 건 아닙니다. 직접 연구한 자료와 기존 문헌들이 잘 정리되어 있고, 시각 자료로 제시되어 있어 해당 분야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느껴질 뿐입니다. 정말입니다.


'작업장에서 위험한 물질에 계속 노출되며 일하는 노동자는...(중략)... 굳이 금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p.62)'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의 부친께서도 공장에서 일을 하십니다. 본인도 담배와 술이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쉽게 끊지 못하십니다. 단순히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질병은 사회와도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의지가 부족해서, 교육이 부족해서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높은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에 시달리면서도 반복적인 위험에 노출되므로 이를 빠르게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뿐입니다.


흥미롭게도 금연 프로그램을 진행한 사업장 중 산업안전 프로그램을 함께 시행한 사업장은 그렇지 않은 사업장에 비해 금연율이 2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p.63)고 합니다. 금연이라는 요소뿐 아니라 노동 환경이 함께 개선될 때 노동자들의 금연 의지도 높아질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죠. 개인의 의지와 노동자의 작업 환경 모두 개선될 때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개인을 탓하며 '노력하지 않았다'거나 '의지가 부족하다'라고 손가락질하지는 않았는지 고민해보게 합니다. 지적과 비판이 가져올 아픔이 '길'이 되는 데에는 실패했던 거지요.


그 어느 때보다 기회와 평등에 관해 민감한 시대입니다. 동시에 경쟁이 미덕이 되고, 차이와 차별을 혼동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세계화 시대라 하지만 동시에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너무나 복잡한 문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승섭 작가는 본인의 일을 묵묵히 해나갑니다. 관련 논문을 한글로 번역해 PDF 파일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더 많은 사람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서죠. 연구 성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수당도 받지 못할 것이 뻔함에도 말입니다.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지요.

비록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걸 보지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세상은 변화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성실한 사람들이 있어

변화의 씨앗을 간직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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