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정리

7월 첫째 주 독서정리

by 광호

1. 장강명,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아작, 2019

장강명은 『뤼미에르 피플』이나 『호모도미난스』 등에서 이미 판타지적 요소를 듬뿍 적셔내고 있었기에 이 책을 딱히 'SF소설집'으로 분류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알레스카의 아이히만」은 '체험기계'를 통해 타인의 경험과 지식을 이식받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음을 전제로 하여, 전범 아이히만과 수용소에 있었던 유대인의 기억을 서로 공유하게 한다. 수록 작품 중 가장 논쟁적인 동시에 과감한 주제를 택했다. 「데이터 시대의 사랑」은 만남이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할 수 있게 된 시대에도 사랑에는 여전히 예측 불가한 지점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난 그렇게 읽었다.) 「정시에 복용하십시오」에서는 사랑을 유지시켜주는 보조제가 개발되는데 '상대방의 모든 게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한다는 '러브피아' 프로젝트를 연구 중이라 말하는 P가 등장하는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를 떠올리게 한다. 「센서스 코무니스」는 제목짓기의 고통에서 탈출하고 싶은 작가의 고뇌가 보인다.


2. 장강명, 『산 자들』, 민음사, 2019

10개의 한숨. 한 작품당 최소 한숨 한 번씩. '산 자들'이 되기 위해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를 하는 인물들 덕분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나름의 이유와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80년대 전후의 노동문학이 보여주었던 이분법적인 선과 악은 없다. 근로자, 학생, 자영업자, 중간관리자, 사무직, 현장직, 프랜차이즈 등 인물과 소재 또한 다양하다. 생존을 위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타자를 혐오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구조를 드러낸다. 너무 '현실적'인 '소설'이라 불쾌함이 느껴질 정도다. 문학적으로도 다양한 시도가 있다. 작품 내에 신문기사를 인용한다던가(전작에서도 자주 써먹었지만) 2인칭 호칭을 사용하는 작품(「대외활동의 신」)도 있다.


스스로를 '강연업자이자 2류 방송인(「음악의 가격」, p.311)'으로 규정하는 장면에서는 쓴웃음이 나왔다. 음악은 무료 샘플이고 판매되는 건 이미지나 라이프스타일이다. 문학 또한 마찬가지다. 중요시되는 건 '생산성'인데 이를 거부할지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몫이다. 장강명은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작품을 통해 드러내지만 동시에 빠르게 적응한 인물 중 하나다. 종이책, 전자책, 순수문학, 장르문학, 팟캐스트, 강연, 문학상, 전자책 구독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다. 개별 작품에서 보여주는 빠른 서사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문체도 속도감에 한몫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의 사회현상과 문화를 빠르게 포착해 소설로 엮어내는 과정이 빨라서 좋다. 늦어도 1년, 빠르면 몇 달 만에 신작을 내놓는다. 독자 입장에선 신작을 계속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작가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다분히 문제적이다.


3. 김혜진 외 8인 지음, 김동현 외 4인 엮음, 『땀 흘리는 소설』, 창비교육

『땀 흘리는 소설』은 네 명의 고등학교 교사가 '엮은' 책이다.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은 지은이가 따로 있다.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들에게 연락하고 책을 엮어내는 고생을 한 이유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학교 교육의 목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모두가 일을 하는데도 학교에서 '일'을 가르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고 나서야 우리 사회의 '노동'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 당황하기도 하고, 참다 참다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월급 155만 원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의 존재가, 1차 회식비만 못하다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잠깐 시간을 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우리의 노동은, 우리의 존재는 언제든 빼고 넣을 수 있는 부품이 되기 위한 게 아니니깐 말이다.


4. 박민정 외 7인,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8

2019년 수상집부터 거꾸로 읽어 내려가는 중. 박민정의 「세실, 주희」는 성별이나 민족으로 생겨나는 위계나 차별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대와 상황 등의 관계에 따라 변화함을 말한다. 세실과 주희는 같은 여성이지만 한 명은 한국인이고 한 명은 일본인이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에게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건 주희가 백인들 사이에서 영어를 잘하지 못해 주눅이 들고, 명백한 성희롱 상황에서도 대처하지 못했던 상황과 맞물린다. 같은 성별이라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위계가 놓인다. 그렇기에 소녀상 앞을 지나는 세실과 주희를 묘사하는 결말부는 묘한 의미를 탄생시킨다.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퀴어 영화가 '하나같이 과잉된 감정에 사로잡힌 신파이거나 투명할 정도로 정치적인 목적을 드러내고 있었고, 남성 동성애자의(즉, 나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p.256)'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퀴어 문학에 필수적으로 '보통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지점'이 있어야(p.286)' 하는 건 아니다. '동성애자가 그렇게 별 고통 없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이상하고 어색하'다는 주장에는 유쾌함으로 대답한다. 도우미를 안 불렀다고 성매매 안 했다고 푸대접을 한다며 이성애자들 '다 죽여버려'를 외치며 노래방의 무선마이크를 훔치는 장면에선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사건은 남자들끼리 왔는데 술도 안 시키고 다른 것도 안 필요하냐는 노래방 주인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노래방 서비스 시간도 안 주고 심지어 57분 만에 시간이 종료되자 이들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버리고 만다. 물론 이들의 절도는 처절하게 실패한다. 하지만 인생은 실패하지 않았다.)


5. 데이먼 나이트 지음, 정아영 옮김,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다른, 2017

쓰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소설이 좀 더 잘 이해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6. 제임스 스콧 벨 지음, 김진아 옮김, 『소설쓰기의 모든 것 1 : 플롯과 구조』, 다른, 2018

작법서 그만 사라. 그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써라. 근데 이건 괜찮다. 찬찬히 읽는 중.


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역, 『서부전선 이상없다』, 열린책들, 2009, [전자책]

전쟁의 당위성에 대해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텐데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본인이 어떤 민족인가, 어느 국가의 시민인가, 혹은 어느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가에 따라 전쟁은 이득이 될 수 있기 때문. 자국이 아닌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켜 국가적 성장을 도모하거나, 용병이나 군수물자를 지원, 판매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전쟁은 가능한 것이 된다. 그러나 전쟁의 당위성은 국가나 민족을 떠나서 생각해야 한다. 지역적으로 심리적으로 먼 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나에게 이득이 된다는 이유로 전쟁을 가능한 것으로 보면 전쟁은 선택지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다른 문제에서도 동일하지만 전쟁에서는 특히 국가나 민족을 상정하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에겐 숫자놀음이겠지만 전쟁을 체험하는 사람은 회복 불가능한 심리적, 육체적 훼손을 입는다. 사람 몇 백 명 죽는 건 일상이 되어버린다. 모든 가치가 퇴보하고 오직 생존을 위한 살육만이 정당성을 얻는 공간이다. 전우가 다 죽은 날에도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에게 '서부전선'은 '이상 없'는 상황으로 보고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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