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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Apr 30. 2020

2. 아무래도 정신과에 가봐야겠어요

일어나는 것부터 고통이었다. 무기력이라는 액체를 이불에 푹 적셔서 둘둘 말아놓은 듯했다. 온몸이 축축 처지고 무거웠다. '일어나서 머리를 감아야지'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도 몇 시간이 걸렸다. 간신히 일어났지만 심장이 쿵쾅거리고 쥐어짜는듯해 일상에 집중할 수 없었다. 산책은 효과가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머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 불안은 다시 엄습했다. 그런 나날이 일주일 넘게 지속됐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 초조하게 했다. 일부러 사람을 만보기도 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안 돼. 살아야 돼.

 

인터넷에 가까운 정신과를 검색했다. 


정신과에 가면 취직에 불이익이 있나요?

정신과에 가면 보험 가입이 안 되나요?


연관 검색어를 괜히 눌렀나 싶었다. 근데 그게 뭔 소용이냐. 당장 죽을 거 같은데 취직은 무슨. 일상생활도 안 되는데 취직이 무슨 문제냐. 우울증 진단을 받고도 직장생활을 잘하는 주변 사람들도 떠올랐다. 그래서 하나는 해결. 


정신과에 가면 보험 가입이 안 되나요? 이건 케바케인 듯했다. 정신과에 가기 전에 보험 가입을 미리 하고 가거나, 정신과에 갔다면 보험 가입 시 사실을 숨기면 가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난 어차피 다른 질병으로 보험 가입이 어려운 상태. 이것도 패스.


저녁을 먹다 아버지에게 '정신과에 가봐야겠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당황해하시더니 '약으로 치료 안 된다', '의지로 극복해라', '상담받으면 기록에 남으니깐 신중하게 생각해라' 고 말씀하셨다. 괜히 말했구나 싶었다. 아무도 날 이해할 수 없구나. 다시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그랬다가 정신을 차렸다. 극복해야 한다. 


'아버지, 저한테는 그렇게 말씀하셔도 되는데요. 다른 사람이 우울증으로 병원 간다고 하면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그게 안 되니깐 병원에 간다고 하는 거예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며 알아본 곳은 있냐고 하셨다. 누나는 지인 아버지가 대학병원 정신과 의산데 비용도 몇만 원밖에 안 된다며 다녀와보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경험을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나는 내 이야기를 꺼내는데 엄청 많은 고민을 했는데 자꾸 아버지가 말씀을 하시니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니깐. 아버지도 잘 모르니깐. 그렇게 생각하고 꾹꾹 눌렀다.


그리고 고민이 있으면 말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너무 상처 받지 마세요'라는 말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시면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고 나는 그 나이에 머물러 있는 거 같다. 밖에서는 덜 한데 집에만 오면 불안하다. 언제 술을 마시고 들어오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밖에 나가 있는 거 자체가 불안하다. 여행을 가거나 외박을 하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집에서 돈 이야기를 했다. 돈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용돈이 적다고 했고, 어머니는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했다. 어머니와 장을 보러 가면 항상 가격표를 먼저 봤다. 먹고 싶은 게 있냐는 말에는 항상 없다고 했다. 돈이 부족한 걸 뻔히 아는데 내 욕구를 표현하는 건 철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돈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 사람을 만나 돈을 쓰고 시간을 쓰는 건 낭비라고 여겨졌다. 특히나 여행은 시간과 돈 모두를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말하라고 하셨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도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보다 길게 하셨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느낌을 받았지만 꾹 참았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렇게 조금은 위로를 받았다. 속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꺼내놓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전보다는 나았다. 


정신과에 가기 위해 내 트라우마를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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