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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Jan 09. 2021

주식이 오르니 짜증이 난다

여전히 감정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많은 일들 중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일도 있죠. 감정들은 저에게 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감정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하루를 마치며 감정일기를 적습니다. 같은 일에도 사람들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요? 사람마다 다른 성격과 해석의 방식으로 사건을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과정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머리로 이해하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로 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요 며칠 코스피가 꾸준한 상승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 지인들도 자연스레 주식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저는 주식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남들은 다 얼마씩 벌었다는데 나만 못 버는 거 같아서 그런가?'생각했죠. 하지만 주식 관련 뉴스를 보거나, 주식이 올랐다 혹은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나고, 자꾸만 주식을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4만 5천 원일 때 넣었으면 얼마를 벌었겠다, 어제만 넣었어도 7%는 벌었네 하면서요.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자꾸만 그 생각이 침투해 일상을 방해하는 수준이 된 거죠.


일을 해서 버는 돈보다 주식으로 버는 돈이 더 많다고 생각하니, 잠 줄여가 일하고 있는 제가 한심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의 주식을 구매하지도 않습니다. 삼성전자의 판매 실적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는 인정하지만, 재벌 경영에는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 구조에 일조하고 싶지 않아 삼성전자만은 사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래놓고 삼성전자가 올라 돈을 버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돈을 벌고 싶지 않은 건 또 아닌 거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런 제가 참 이상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돈 혹은 자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이 왜곡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유년시절 제가 기억하는 저의 가정은 가난했습니다. 난방비를 절약하려고 찬물만 쓰고, 물티슈를 쓰는 건 낭비라고 생각해서 성인이 된 후에야 물티슈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갑 티슈를 쓰면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았고요. 오렌지 주스는 부잣집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돈 때문에 다툼이 잦았습니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 술에 의존했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도 힘들어했습니다. 그럼에도 먹고살아야 했기에 아버지는 다시 일을 나가셔야만 했죠. 그런 삶을 반복하며 제 속에는 '돈이 사람을 망가트린다'라는 신념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돈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올라옵니다. 저를 위한 소비를 하면 죄책감이 들고,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가성비를 철저하게 따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가격을 넘어선 상품은 다 탐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기준에서 과도한 소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래서 사회가 돈돈돈 거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거야' 생각했고요. 근데 그건 돈 자체의 속성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돈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이 반영된 거겠죠.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노동에서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돈을 버는 모든 사람들을 일반화 해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저도 돈을 벌고 싶었던 겁니다. 그 감정을 외면했지만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에 오르는 주식을 보며 '짜증'이 났던 겁니다. 감정일기를 쓰며 인정하게 된 사실은, 저도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겁니다. 그 욕구 자체를 억누르고 비난하고 자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돈을 벌 기회가 와도 뻥 차버리게 만들었죠. 그래놓고 경제적으로 힘든 스스로를 무가치한 인간으로 여겼습니다. 이제는 생각을 조금 바꿔보려 합니다. 제가 돈을 벌고 소비하는 과정에서도 제가 생각하는 가치를 지켜나갈 방법은 있을 겁니다. 조금 더 윤리적인 방식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고, 타인을 기망하거나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일을 하며 돈을 벌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액수가 적고 많음은 문제가 되지 않겠죠.


주식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돈에 대한 생각은 조금 바뀌어 갑니다. 제가 감정 일기를 쓰는 이유입니다. 내가 오늘 느낀 불안과 초조, 그리고 짜증(저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짜증'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강하게 느낍니다.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이 저에게 어떤 말을 걸어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죠. 적지 않으면 여전히 '짜증'으로만 남을 감정을 들여다봅니다. 자동적으로 일어나 알아차리지 못했던 저의 근본 신념을 알아차립니다. 그때서야 제 삶에도 변화가 시작되니깐요. 물론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사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변화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 때로는 뒷걸음질 치게 된다 하더라도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씁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함께 살아가야 할 여러분들께 오늘의 일기를 공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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