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일들 중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일도 있죠. 그 감정들은 저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감정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기위해 하루를 마치며 감정일기를 적습니다. 같은 일에도 사람들마다 다르게반응하는 이유는 뭘까요? 사람마다 다른 성격과 해석의 방식으로 사건을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그 과정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머리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기로 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요 며칠 코스피가 꾸준한 상승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 지인들도 자연스레 주식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저는 주식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남들은 다 얼마씩 벌었다는데 나만 못 버는 거 같아서 그런가?'생각했죠. 하지만 주식 관련 뉴스를 보거나, 주식이 올랐다 혹은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나고, 자꾸만 주식을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4만 5천 원일 때 넣었으면 얼마를 벌었겠다, 어제만 넣었어도 7%는 벌었네 하면서요.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자꾸만 그 생각이 침투해 일상을 방해하는 수준이 된 거죠.
일을 해서 버는 돈보다 주식으로 버는 돈이 더 많다고 생각하니, 잠을 줄여가며 일하고 있는 제가 한심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의 주식을 구매하지도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의 판매 실적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는 인정하지만, 재벌 경영에는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 구조에 일조하고 싶지 않아 삼성전자만은 사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래놓고 삼성전자가 올라 돈을 버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돈을 벌고 싶지 않은 건 또 아닌 거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런 제가 참 이상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돈 혹은 자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이 왜곡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유년시절 제가 기억하는 저의 가정은 가난했습니다. 난방비를 절약하려고 찬물만 쓰고, 물티슈를 쓰는 건 낭비라고 생각해서 성인이 된 후에야 물티슈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갑 티슈를 쓰면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았고요. 오렌지 주스는 부잣집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돈 때문에 다툼이 잦았습니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술에 의존했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도 힘들어했습니다. 그럼에도 먹고살아야 했기에 아버지는 다시 일을 나가셔야만 했죠. 그런 삶을 반복하며 제 속에는 '돈이 사람을 망가트린다'라는 신념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돈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올라옵니다. 저를 위한 소비를 하면 죄책감이 들고,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가성비를 철저하게 따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가격을 넘어선 상품은 다 탐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기준에서 과도한 소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래서 사회가 돈돈돈 거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거야' 생각했고요. 근데 그건 돈 자체의 속성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돈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이 반영된 거겠죠.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노동에서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돈을 버는 모든 사람들을 일반화 해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이유또한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저도 돈을 벌고 싶었던 겁니다. 그 감정을 외면했지만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에 오르는 주식을 보며 '짜증'이 났던 겁니다. 감정일기를 쓰며 인정하게 된 사실은, 저도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겁니다. 그 욕구 자체를 억누르고 비난하고 자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돈을 벌 기회가 와도 뻥 차버리게 만들었죠. 그래놓고 경제적으로 힘든 스스로를 무가치한 인간으로 여겼습니다. 이제는 생각을 조금 바꿔보려 합니다. 제가 돈을 벌고 소비하는 과정에서도 제가 생각하는 가치를 지켜나갈 방법은 있을 겁니다. 조금 더 윤리적인 방식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고, 타인을 기망하거나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일을 하며 돈을 벌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액수가 적고 많음은 문제가 되지 않겠죠.
주식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돈에 대한 생각은 조금 바뀌어 갑니다. 제가 감정 일기를 쓰는 이유입니다. 내가 오늘 느낀 불안과 초조, 그리고 짜증(저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짜증'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강하게 느낍니다.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이 저에게 어떤 말을 걸어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죠. 적지 않으면 여전히 '짜증'으로만 남을 감정을 들여다봅니다. 자동적으로 일어나 알아차리지 못했던 저의 근본 신념을 알아차립니다. 그때서야 제 삶에도 변화가 시작되니깐요. 물론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사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변화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 때로는 뒷걸음질 치게 된다 하더라도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씁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함께 살아가야 할 여러분들께 오늘의 일기를 공유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