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에 '욕구'를 추가했습니다
제 감정을 모르고 살았다는 걸 깨달으면서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에는 종이로 프린트를 해서 틈틈이 적었습니다. 잊어버릴까 봐 핸드폰에 메모해두었다가 옮겨 적기도 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그만두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감정일기를 일처럼 여기고 있었거든요. 분명 감정일기를 쓰는데 감정은 푸석푸석 말라버린 채 그날 있었던 일을 기계적으로 적어 내려가기도 했고, 감정일기를 빼먹은 날에는 '이거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데... 다른 것도 다 못할 거야'라는 식으로 자책도 했고요. 그래서 과감히 감정일기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 싶었습니다. 쓰지 않아도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으니깐요. 그런데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이면 어딘가 답답하고, 막막한. 언어로 풀어낼 수 없는 감정들이 응어리져 찌꺼기로 남았습니다. 조금씩 쌓인 찌꺼기들은 하루와 함께 내려가지 않고 제 가슴속 어딘가를 꽉 막아버렸습니다. 답답함이 차오르자 다시 감정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빼놓는 날이 있고, 채우지 못하는 칸이 있더라도 자책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적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아 적자고 다짐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감정을 저도 알 수 없어서 '짜증난다', '우울하다'고만 반복해서 적었습니다. 하지만 제 감정을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찾아 적어나갔습니다. 막연하게 '짜증'이라고 느껴졌던 감정은 불안함, 답답함, 서운함, 원통함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감정일기를 통해 제 감정을 조금 더 명확히 구분하는 연습을 하며 제가 일상에서, 관계에서 접하게 되는 감정들을 조금씩 이해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짜증의 원인을 조금이라도 정확히 알게 되면서 날카로운 말을 하거나, 과도하게 고민을 하는 빈도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욕구' 라는 항목을 하나 추가했습니다. 전에는 사건, 생각, 감정, 행동, 결과 다섯 가지로 칸을 나눴는데요. 이 다섯 개의 항목만으로는 진전이 없는 것 같아 보완을 했습니다. 4월 6일 감정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SNS에서 A가 B에게 단 댓글을 봤습니다. 저는 '둘이 같이 놀았나? 부럽네'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부러움과 섭섭함을 동시에 느낍니다. 그래서 부럽다, 섭섭하다 라고 적습니다. 하지만 찜찜함이 남았습니다. 제가 왜 부럽고 왜 섭섭한지 그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깐요.
제 감정 이면에 감춰진 '욕구'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왜 다른 사람이 단 댓글에 부러움을 느꼈을까요. A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는 다른 사람과 친해지고 싶지 않다,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타인과 친해지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기에 섭섭함과 부러움을 느꼈던 거겠죠. '나도 A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라는 짧은 문장을 적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메일을 확인하거나 웹서핑을 하는 등의 행동을 했습니다. 제가 어떤 일을 회피할 때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입니다. 제 감정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게 힘드니깐 본능적으로 다른 행동을 했던 거죠.
하지만 존재하는 욕구를 없는 것처럼 여기거나 무시하다 보면 스스로의 감정을 착각하게 됩니다. 저는 너무 오랜 시간 제 감정을 무시하다 보니 제 감정을 파악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내가 왜 이럴까'. '나는 이상한 사람일까', '나는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걸까' 수도 없이 고민했습니다. 결국 제 불안과 우울, 짜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가 가진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런 감정과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감정일기는 제 사고방식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인식해 문제에 직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 입입니다. 다만 이전과 같은 패턴의 반복을 택할지, 다른 시도를 할지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해주죠. 그래서 저는 오늘도 감정일기를 적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시도들을 해내가는 중입니다.
* '돈'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