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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Oct 24. 2021

[인터뷰] 완벽주의의 함정

승제와의 인터뷰_2021.10.17 @OO동 스타벅스


[인터뷰] 완벽주의의 함정

승제와의 인터뷰_2021.10.17 @OO동 스타벅스


레슨 선생님께서는 '대중음악은 창작자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그 사회 보편이 공감할 수 있는 텍스트로 해설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는 대중음악으로써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나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 이별을 하면 모든 이별 노래가 나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거라고 했다. 반대의 예로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우리가 둔감하다는 사실을 언급하셨다. 순간 반발감이 들었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남의 일 취급을 한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혹여나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별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책감과 수치심에 휩싸였다.

완벽주의의 함정

그 순간 나를 압도한 충동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당위였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일관성 있고, 평등한 대우를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도와주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랬다. 신념과 가치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밥 한 번 먹자는 인사말을 모두 지키려 하고, 이쪽 모임에 두 번 나갔으면 저쪽에도 한 번은 나가는 최소한의 균형을 위해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십 년쯤 해보고 깨달았다. 그건 불가능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필요할 때마다 쏟아지는 화수분이 아니었다. 결국 극단적 처방을 했다. 그 누구에게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이젠 '왜 나와는 만나주지 않냐'는 말에 '너 말고 다른 사람도 안 만나는데?'라고 응수할 수 있었다. 내 원칙을 지킬 수 있어 편-안했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고 싶었다. 나의 말에 상처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나의 기준이 무너지는 게 더 심각한 문제였다. 내가 만든 기준을 내가 지키는 데 상처 받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는 의심은 하지 못했다. 완벽주의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리고 승제는 그런 나를 "꽉 막힌 놈"이라고 표현했다. 나의 그런 모습이 "꼭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안"지만 "자기 고집"이라면서 "네가 개빡쳐가지고 이거 해야 해, 안 하면 안 될 거 같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승제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개빡쳐가지고 이거 해야 해, 안 하면 안 될 거 같아" 하는 것들은 대충 이 정도다.

0. 행복하면 안 된다
1.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야 한다
2. 결혼을 하면 안 된다
3. 술을 마시면 안 된다
4. 도움을 청해선 안 된다(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5.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6. 과소비하면 안 된다
7.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
8.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9. 좋은 글을 써야 한다
10. 위의 원칙을 남에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이다. 제대로 지킨 것도 없다. 아마 나를 아는 사람이 보면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찰 지도 모른다.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잘해줄 때도 있었고, 반대로 상처를 줄 때도 있고, 술도 마시고, 과소비도 하고, 음식도 남겼다. 사람답지 않은 짓으로 피해도 많이 줬다. 이 글을 씀으로써 9번과 10번도 어겼다.

삶을 내가 온전히 통제할  방법은 없다. 그게 싫어서, 내 신념을 지키고 싶어서 삶을 왜곡시키곤 했다. 행복한 일, 좋은 일이 있어도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며 부정하거나 회피했다. 좋은 제안이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원칙을 내가 세워놓고, 내가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 다시 술을 마셨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내가 거리를 둬놓고 밤이 되면 외로워했다. 내가 만든 원칙이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웃는다고 모두에게 복이 오는 건 아니지만, 복을 제 발로 걷어차는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 줄 방법은 없는 거였다.


다시 완벽주의

그나마 잘 지킨 건 4번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이다. 그래서 죽어도 누구한테 도와달라는 소리를 안 했다. 양 손에 물건을 들고 있어도 문을 열어달라는 소리를 안 한다. 발로 열거나 팔꿈치로 열거나. 어쨌든 혼자 해결하려 애쓴다. 지인과 같이 옷을 보러 가서도 잠깐 옷을 들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 걸어놓고 옷을 입어보거나, 걸 곳이 없으면 옷걸이를 입에 물고 입기도 한다. 힘든 일이 있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 봐야 해결되는 게 없으니까.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무시당할 거 같으니까. 착한 사람들한테 짐만 주니까. 그래서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 했다.


승제는 그런 나에게 "너는 고집이 있어서 누구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걸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나도 도와주는 방법을 배우게 되더라고. OOO를 도와주는 방법. 이놈한테는 공짜로 준다고 하면 절대 안 받으니까 가격을 깎아주거나 이놈한테 뭘 시키고서 줘야 해."라고 했다. 그러니까 도움을 청하면 안 된다는 나의 신념은 승제에게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었다. 내가 뭘 해봐야 승제 손바닥 위였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나의 신념을 지켰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게다가 그 신념을 지켰다고 뿌듯함이나 성취를 느낀 것도 아니다. 못 지켰을 때 자잭 하는 용도였다. 나는 감히 행복하면 안 된다. 0번 <행복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하므로.


"질문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라는 나의 질문에 승제는 "인터뷰를 하는 목적이 뭐죠?"라고 물었다. 나는 "내가 나를 잘 모르겠어서"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승제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게 끝이야? 보통 다 모르지 않아?"라고 되물었다. 나는 턱을 긁적이다가 "그것에 너무 몰두했어. 내가 나를 모른다는 사실에. 그래서 이걸 완벽히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그 소리에 우리는(함께 조개구이를 먹고 인터뷰 장소까지 따라와 어색하게 앉아있던 J까지) 박수를 치면서 웃었다.

그 소리에 완벽주의를 
완벽하게 해결하려 애쓰던 멍청한 놈도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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