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직장이라는 말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안정적인 직종으로 인기를 얻었던 공무원이나 공기업에도 퇴사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에 ‘공무원’만 검색해도 연관 검색어로 ‘공무원 퇴사’가 따라온다. 급여나 복지 면에서 최고라는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을 검색하면 ‘브이로그’와 ‘중고차’ 다음으로 ‘퇴사’라는 키워드가 노출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미디어에 퇴사 영상을 올리고, 그 영상을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건 그만큼 직업에 대한 고민이나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치솟는 집값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월급을 모은다고 하더라도 집을 사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는 통계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정이라는 단어는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라고 하더라도, 급여가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높더라도 월급만으로는 집 문제를 해결하는 게 턱없이 힘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코로나19가 겹치며 불안정한 상황은 더욱 장기화됐고 이로 인해 일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이직과 퇴사를 노력이나 인내심 부족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돈의 가치가 떨어진 만큼 일의 가치도 함께 하락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이직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특히 비슷한 연봉을 받고 다른 업계로 이직하거나, 혹은 신입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기존의 연봉이나 커리어, 안정성이라는 기준 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행동 뒤에는 기존과는 다른 이유가 있을 터이다.
월급의 가치가 하락한 만큼 일의 다양한 가치가 부상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안정성과 급여 수준을 우선으로 일의 가치를 판단하던 시절이 저물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는 인기를 얻던 직업이 이제는 매력적이지 못한 직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차피 평생 직장은 없고,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없다면 이전과 동일한 기준으로 직장의 우위를 정할 수 없다. 이제는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일, 주도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 시간을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일 등 더 다양한 기준에 따라 일을 선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5년 새 최저라는 기사도 나왔다. 시험 과목 개편으로 인한 하락세라는 주장도 있으나 더 이상 ‘정년보장’이 주는 안정성이 큰 매리트가 없다는 것이 주요 요인일 것이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김예지, 21세기북스)’와 같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주도적으로 다른 삶과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므로 직업의 가치는 사라지거나 하락하고 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가치로 재편되고 있음에 가깝다.
이러한 현상이 반가우면서도 아쉽다. 반가운 이유는 사회의 인재가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한 세대라는 지금의 20·30세대는 물론이고 묵묵히 시대를 뒷받침하고 있는 중장년층들도 더 많은 가능성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 특정 직군의 인재 쏠림 현상이 해소된다면 더 다양한 곳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구직자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일자리가 그만큼 적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자기 마음에 딱 드는 직업이 얼마나 있겠느냐만. 그럼에도 다양한 인재들을 받춰 줄 기회가 아직까지는 부족하다. 합격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패배자가 되는 시험 위주 사회의 부작용도 보완돼야 한다. 일보다 투자가 각광받는 사회지만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빛을 보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퇴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방법으로, 더 많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