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 치믈리에 행사에 난입한 시위대의 방식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치믈리에 행사 중 갑자기 난입한 동물권 시위단체
내가 현장에서 본 동물권시위대는 상당히 무례했다.
그들은 행사장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였다. 본격적인 행사 시작에 앞서서 무대를 점거하고 본인들의 이야기를 크게 떠들었다.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해서 타인의 의견이나 감정까지 무시하고 짓밟을 권리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 배달의 민족 공식입장 中 반대로 피해를 당한 배달의 민족 측에서는 상당히 정중했다. 이사님이 직접 올라와 '본인을 포함해 배민 구성원들 역시 반려동물과 함께하며 가족처럼 지내는 이들이 많다. 구성원 중 누구라도 생명에 대한 존중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내 생각 역시 배달의 민족측의 생각과 비슷하다. 그들은 어떠한 정당성이나 합법성을 가지지도 않고 폭력적인 시위를 통해 치믈리에 행사에 참여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고 아프게 만들었다. 그들은 과정을 보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이슈화 시키는 '결과'만을 목적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했다. 올바른 과정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결과는 과연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뉴스 헤드라인의 무서움을 보았다.
'사랑하는 두 남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결국 자살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이 뉴스기사가 된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뜻한 이야기는 사라진채 냉정한 '한 줄'만 남게된다. '사랑하는 여자와 이어지지 않은 현실를 비관한 남성 자살하다.' 이 뉴스의 헤드라인은 어떤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헤드라인은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뉴스기사가 된다면 나올 법한 헤드라인이다. 당신은 저 헤드라인 속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깊은 고뇌와 슬픔이 느껴지는가? 이번 치믈리에 시위대의 사태 후에 뉴스기사들이 그랬다. 현장에서 동물권 시위대의 잘못된 행동들과 피해를 입은 배달의 민족과 치믈리에 행사 참가자들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뉴스 기사에는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만 헤드라인으로 남아있었다.
시위 참가자들이 시위 후에 언론사 한겨레와 한 인터뷰도 나왔다.
시위대는 어떤 생각으로 시위를 하였을까?
http://www.hani.co.kr/arti/animalpeople/farm_animal/854492.html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써 시위대의 인터뷰에서 가장 어이없었던 부분.
-화제성을 위해 이런 형태의 시위를 기획한 것인가요?
“(기존의) 다른 동물권 시위들이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약자의 시위가 항상 그러하듯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소수의 인원을 모아서 기습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이해해주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희의 활동으로 인해 적은 사람들이라도 마음의 동요가 있었다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겨래 인터뷰 中-
(다른 동물권 시위들이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을 이슈화 시키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으로 배달의민족 치믈리에 행사장과 참가자들을 이용하셨네요. 인터뷰 중 '다른 분들이 이해해주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씀에서 이미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점도 잘 알게되었습니다.)
'강자' vs '약자'의 프레임으로 이 사건을 이야기했다는 점
시위대는 본인들을 '약자의 시위'라고 이야기했다. 강자 vs 약자의 프레임으로 사건을 보게 된다면
배달의 민족은 동물권시위대와 비교했을 때 강자의 프레임에 속한다. 강자 vs 약자의 대결구도로 사건을 이야기하면 당신은 누구편에 설 것인가? 축구경기에서 강팀 vs 약팀이 붙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약팀을 응원하게 되는 마음처럼 인간은 강자와 약자 프레임에서 선택한다면 약자의 편에서 이야기 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에 영화를 포함한 많은 미디어에서 정의로운 주인공이 약자의 편에서서 강자를 무찌르는 수 많은 장면들이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약자를 응원하게 되는 사고를 가지게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생각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가 강자와 약자중에서 선택해야 할 것은 바로 강자도 약자도 아닌 '올바른 편'을 선택해야한다.
약자가 반드시 올바른 것만은 아니다. , '약자'라는 이유로 그 들의 행동이 정당화 될 수도 없다.
동물권 시위대는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부분에 있어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하고 상처주는 방식을 택했다. 과연 잘못을 저지른 쪽은 누구일까?
'피해자' vs '피의자'의 프레임으로 이번 사건을 바라봤으면 한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강자의 프레임에 속하는 배달의 민족과 치믈리에 참가자들이다. 배달의 민족은 이번 행사를 위해 몇 달전부터 오랜시간 준비하고 또 많은 비용을 들이며 홍보했다. 이번 한 행사를 위해 치슐랭가이드 책 출판, 마스터클래스운영, 롯데호텔 장소섭외, 500인분에 치킨준비와 선물준비, 포토존 및 전시준비, 기자 및 유명인 초청, 영상촬영 준비 및 사전 영상 그리고 온라인 유튜브광고까지 행사를 참가하기만 내가 본 것만해도 이 정도인데.. 실제로 행사를 준비한 배달의 민족 관계자분들은 오늘 하루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을 들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배달이 민족이 공들여 준비한 행사에서 무례했던 시위대는 오히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을에게 '죽음이 재미있냐?" 라는 구호로 모두를 생명을 경시하는 죄인처럼 취급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행사장 안에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과 참가자들 그리고 초청된 연예인분들 모두가 죄인이란 말인가? 전국에 치킨을 먹는 수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란 말인가? 시위대는 인터뷰에서 시위대는 궁극적으로 닭을 먹는 것은 금지되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들의 눈에 비친 우리는 끔찍한 죄인들이였다.
이번 사건에서 명백하게 피해를 입은 쪽은 배달의 민족과 치믈리에에 참가했던 참가자들이고 피해를 입힌 피의자 쪽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불법시위를 한 동물권시위대이다. 사람들이 '강자 vs 약자'의 프레임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피해자 vs 피의자'의 프레임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고 올바른 쪽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잘못된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그들의 이번 불법시위를 '약자'라는 이유로 우리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그들은 행사장을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자신들의 이슈화를 위해 배달의민족에 행사장을 이용하며 500여명이 넘는 참가자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약자'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인터뷰는 그 들의 행동에 비해 너무나 무책임하다. 우리 사회는 강력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소년법'으로 보호하며 비교적 약한 처벌을 내렸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인과 강간을 저지를 청소년들에 약식 처벌에 분노하였고 소년법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분명 약자는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하는 것이 맞지만, 약자라는 이유로 올바르지 않은 행동까지 이해하고 그들을 보호해야할 의무는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사를 망친 시위대가 이번 일에 대해 당당하게 책임을 질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한 번 '약자'와 '소수자'의 그늘 뒤에 숨을 것인지 궁금하다.
아래 링크는 배달의 민족의 공식 입장입니다.
http://blog.baemin.com/221324896618
이 글을 쓰는 이유?
시위대의 행사장 난입 사건이 있고 나서 동물권 시위대의 주장과 상황만을 담은 기사들이 넘쳐나서 적었다.
많은 기사들이 '약자'의 프레임에 있는 시위대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누군가는 올바른 쪽에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친한 학교 동생에게 너는 어떻게 할 말 안 할 말 다하고 살 수 있느냐고 물어본적이 있었는데, 그 때 동생이 했던 답변이 '오빠 나는 할 말 안 할 말 다하는게 아니라 해야할 말을 하는거야.''해야할 말을 못하면 난 밤에 잠을 못자.'라고 말했다.
지금 내가 그렇다.
해야할 말을 해야겠고
안한다면 밤에 잠을 못잘 것 같았다. (ㅋㅋㅋ)
물론 내 주장이 100% 올바르다고 이야기 할 수 없겠지만,
편파적인 뉴스헤드라인을 읽고 온 누군가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