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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Oct 17. 2018

노지감귤 시작

#오마이뉴스_연재

지난 10월 13일 제주 한라산에 첫서리가 내렸다. 가을은 북쪽부터 혹은 산 정상부터 물러간다. 서리가 내리면 곧 겨울이 온다는 신호, 또한 식재료에 서릿발 같은 찡한 단맛이 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모슬포 경매인들 사이에 ‘한라산에 눈이 두 번 와야 방어 맛이 든다’라는 속담 같은 말처럼 한라산에 서리가 내리면 미깡밧(미깡은 일본어지만 일상적을 제주 생산자 사이에서 사용된다. 흡사 제주 사투리처럼 들렸다. 미깡밧=감귤밭)에 단맛이 든다. 미깡밧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차가운 서리는 감귤에 단맛 주는 묘약이다. 

제주에 첫 서리가 내리기 일주일 전부터 노지 감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감귤이라 하는 것의 정식 명칭은 ‘온주감귤’, 학술 명으로는 ‘사쓰마 만다린(Satsuma mandarin)’이다. 사쓰마 는 일본 규슈 남단 가고시마의 옛 이름으로 중국에서 전파된 온주감귤이 일본에서 꽃을 피워 씨가 없는 감귤의 대표 이름이 됐다. 우리나라에는 1911년 김태진 씨가 최초로 도입해 현재까지 널리 재배하고 있는 대표적인 감귤 품종이다(제주 농업기술원).

온주감귤은 나오는 시기에 따라 극조생, 조생, 보통 온주감귤로 나뉜다. 극조생은 10월까지, 11월은 조생, 그 이후에 수확하는 것이 보통 온주감귤이다. 감귤뿐만 아니라 모든 농작물이 첫물이 나오면 반갑지만 맛은 반가운 만큼 달갑지 않다. 때가 이른 탓에 단맛보다는 신맛이 도드라진다. 첫물이 지나며 기온이 시나브로 낮아지면서 단맛이 조금씩, 조금씩 든다. 바깥 기온이 낮아지면 생존을 위해 단맛이 과육 곳곳에 스며든다. 설탕물과 맹물을 동시에 얼리면 설탕물이 맹물보다 늦게 언다. 설탕 분자가 물 분자가 얼음 결정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다. 추위가 오기 전 신맛만 가득했던 감귤이 기온이 내려가면 부지런히 신맛을 단맛으로 바꾼다. 얼지 않기 위해 단맛이 든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고지대’ 농산물이라서 맛이 좋다는 말을 자주 보고 듣는다. 고지대는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기도 하거니와 평지보다 빨리 추위가 오기 때문에 단맛이 좋다.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온주감귤의 종류는 제주 농업기술원에서 종류를 파악하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백여 가지가 넘는다. 간혹 같은 곳에 산 감귤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경우가 많다. 어떤 감귤은 껍질이 반들반들하고, 또 어떤 것은 껍질이 울퉁불퉁하다. 껍질과 알맹이가 딱 붙어 있는 것도 있고, 헐렁한 것도 있는 이유가 온주감귤의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같은 시기, 같은 과수원에서 나와도 형태나 맛이 다른 게 온주감귤의 특징이다. 한 때는 온주감귤을 시기에 나누지 않고 품종으로 구분해서 유통하려고 했었다. 품종이 너무 많기도 많은 것도 한몫했지만 생산자도 잘 모르는 상태라 구분 짓기가 어려워 포기하고 말았다.

몇 년 전부터 극조생 감귤 앞에 ‘타이벡’이 붙기 시작했다. 타이벡은 감귤 품종이름이 아니라 미국 듀폰사의 합성 고밀도 폴리에틸렌 섬유 이름이다. 감귤에 이름이 붙은 까닭은 감귤 농원에 하얀 타이벡을 깔고 재배했기 때문이다. 8, 9월에 비가 많이 오는 제주 기후 특성상 극조생 감귤의 당도가 떨어진다. 타이벡을 나무와 나무 사이에 깔면 비가 내려도 땅에 스며들지 않는다. 빗물은 타이벡 위로 그대로 흘러나가 뿌리에 수분이 스며들지 않아 당도가 높아진다. 다른 과일의 비가림 재배는 옆은 트고 위쪽만 막아 수분을 제어해 당도를 높이는 것과 이치는 같다. 타이벡 농법으로 극조생 감귤도 조생 못지않은 당도가 나온다. 못지않다는 것이 그 이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제대로 된 감귤은 시월 이후에 나오는 조생부터 제맛이 나기 시작한다. 신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감귤 특유의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감귤뿐만 아니라 극조생은 ‘빠른’이 장점이지 ‘맛’이 장점은 아니다. 


12월에 노지 감귤 수확이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만감류가 제철을 맞는다. 황금향, 레드향, 한라봉, 천혜향, 청견, 카라향 등이 줄줄이 나온다. 12월에 하우스 한라봉도 나오지만 가격만 비쌀 뿐 값어치는 지불한 돈의 십 분의 일이 될까 할 정도로 맹한 맛이다. 굳이 제철 맞은 감귤이 차고 넘치는 데 선택할 이유가 없다. 

일 년에 적으면 서너 차례, 많으면 그 이상으로 제주 출장을 간다. 올해는 좀 많아서 8번 제주 출장을 갔다 왔다. 20년 가까이 다닌 제주 출장 경험으로는 한라산에 단풍이 질 때부터가 제주 여행하기에 딱 좋다. 수학여행이나 단풍 단체고객이 빠진 번잡하지 않은 공항도 좋지만, 딱 그때부터 제주의 밧과 바당(바다의 제주 사투리)에서 나는 것들이 다 맛있다. 제주 은갈치도 서리 내린 이후부터 난 것이어야 단맛이 돈다. 덤으로 제주 가는 항공권도 가장 저렴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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