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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Nov 07. 2020

지극히 미적인 시장_예산

가을 끄트머리


지극히미적인시장_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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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1000원어치만 주세요.” 지폐 한 장을 내미는 내 손을 쓱 할머니께서 쳐다보셨다. 봉지에 떡 네 개를 담아 주시면서 뭐라 사투리로 하셨는데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되묻기도 뭐해 자리를 뜨면서 떡 하나를 먹었다. 단맛이 거의 없는 맛이었다. 이왕 입에 들어온 거 넘겨야 하기에 시장 구경하며 씹었다. 떡을 넘기고 바로 한 개 더 먹었다. 씹는 사이 침이 전분을 엿당으로 바꿨다. 씹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단맛이 강해졌다. 그렇다고 설탕 같은 쨍한 단맛은 아니다. 단맛이 강한 지금의 떡과 아주 달랐다. 떡에서 단맛이 빠지니 팥의 구수한 맛이 명확해졌다.



은은한 단맛과 구수한 맛, 오랜만에 떡을 맛있게 먹었다. 사실 처음부터 떡 살 생각은 아니었다. 카메라를 챙기고 장터로 나서자 할머니 한 분이 떡을 사고 계셨다. 장터에 빠지지 않는 것이 떡, 그리 특별한 품목은 아니었지만 파는 이나 사는 이의 모양새도 남달랐고 떡 담음새도 달랐다. 1만원을 손에 쥐고 계시길래 몇천원어치 사시려나 했지만 만원어치 다 사셨다.

궁금함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떡을 샀다. 1000원에 세 개가 정가. 내가 받은 봉지에는 떡이 네 개 들어 있었다. 받은 만원을 이마에 비비고(개시의 표현으로 아침 시장에서 가끔 본다) 주머니에 넣자마자 1000원을 내미는 필자를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보시고는 별말 없이 덤 하나를 더 주셨다.



10월, 시장에 콩이 많았다. 가끔 ‘강남콩’이라 하기도 하는 ‘강낭콩’이 대세, 백태나 쥐눈이콩은 한창 탈곡하고 있을 듯싶다. 시장에 강낭콩이 많이 나오면 제비는 강남으로 떠난다. 강낭콩이 따뜻한 중국 남쪽 지방에서 왔으니 지역 관점에서는 강남콩이 틀린 말은 아니다. 강낭콩은 마당 울타리에 많이 심어서 울타리콩이라고 하는데 모양이나 생김새가 다양하다. 강낭콩이 다양한 모양새가 있는 것처럼 팥도 매한가지다. 팥색? 질문하면 붉은색! 대답할 것이다. 붉은 팥만 봤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아니다. 검은색, 노란색, 푸른색 다양한 팥이 있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예산 옆, 홍성군에는 팥으로 메주를 쑤고, 청국장을 담그는 이도 있다. 팥으로 메주를 띄우고 된장을 담는다. 다만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SBS <폼나게 먹자> 촬영할 때 출연한 가수 아이유가 팥으로 쑨 청국장을 진짜로 맛있게 먹기도 했다. 콩 청국장과 다른 구수한 맛과 단맛이 있다. 홍주 발효식품 (041)634-1479

검은빛이 나는 잿팥(그루팥)을 한 봉지 샀다. 밥에도 넣어 먹고, 팥 찐빵도 만들어볼 생각이었는데 몇 걸음 더 가자 여러 색이 섞인 팥도 있어 그마저 샀다. 오일장에는 슈퍼처럼 정찰 표시가 없지만 시장마다 표준 가격이 있다. 그날 팥은 한 바구니에 5000원이었다.


돌고 도는 장터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탱자가 눈에 띄었다. 유자도 어쩌다 보는 과일이 되었기에 탱자는 더더욱 보기 힘들어졌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움이 밀려왔다. “차에 두면 향 좋아. 청을 담가도 좋고” “장터 구경하고 좀 있다 가기 전에 사갈게요” “그러셔” 대답하는 할머니 표정에는 ‘네놈이 오긴 뭘 와’ 하는 표정이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시장을 몇 바퀴 돌고 탱자 사러 할머니께 가니 표정이 ‘저놈 진짜 왔네’다. 한 바구니에 5000원이다. 바구니를 봉다리(봉지가 맞다. 시장에서는 봉다리가 더 어울린다)에 담고는 두 손 가득 덤이 더해졌다.


예산장은 다른 장터와 달리 민물새우나 민물고기 파는 곳이 많았다. 수십 군데 시장을 다녔어도 송사리까지 파는 곳은 없었지만 예산장에는 있었다. 예산은 큰 저수지 두 개를 위아래로 품고 있는 동네다. 아래로는 예당지, 위로는 바다를 막아 호수로 만든 삽교호가 주인공이다.


예산 구석구석을 다니며 쉽게 맛볼 수 있는 것이 어죽이다. 그러다 보니 붕어나 민물고기 수요가 다른 곳보다 클 수밖에 없다. 찜용으로 손질하는 붕어를 보니 붕어찜 생각이 났다. 붕어찜을 먹기 위해 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예당지로 갔다. 일단 붕어는 잔가시가 많다. 붕어찜을 회피하게 하는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민물고기 특유의 흙내가 있다는 선입견이다. 잔가시는 어쩔 수 없더라도 흙내는 선도가 안 좋은 민물고기에서만 난다. 저수지 인근 식당이라면 선도 걱정은 없다. 다들 어떤 음식에 사연이 깃들면 솔 푸드가 되기도 한다. 필자에게 붕어로 만든 음식은 솔 푸드다. 선친의 취미가 낚시였고 그 영향을 받아 필자도 낚시가 취미다. 어렸을 때 평택에서 자라기도 했거니와 커가면서 아버지가 잡았거나 같이 잡은 붕어찜을 자주 먹었기에 붕어찜을 보면 선친 얼굴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혼자이기에 붕어찜 작은 것을 주문했다. 시장에서 출발하기 전 미리 전화했다. 조리 시간이 30분 정도 걸리기에 예약하면 빨리 먹을 수 있다. 큼지막한 붕어 두 마리가 들어 있다. 이제부터 붕어 가시와의 전쟁이다. 가시를 피해 살을 발라내고, 그렇지 못하면 통째로 입에 넣고 우물우물 혀만 움직여 부드러운 살을 녹이고는 뼈는 뱉어낸다. 귀찮은 작업이지만 물고기 찜 중에서는 가장 맛있는 붕어찜이기에 귀찮음은 ‘따위’가 된다. 가시만 없었다면 붕어는 씨가 말랐을 것이다. 민물고기는 특유의 단맛이 있다. 그중에서 최고이기 때문이다. 대흥식당 (041)335-6034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지원을 하고 있다. 청년 시장이라든지 주말 장터라든지 말이다. 예산 상설시장에도 떡집과 유기농산물을 가공하는 곳이 있다. 사회적 지원 등 이런저런 문구가 적혀 있는 작은 식당 하나가 눈에 띄었다. 지역 농산물을 주로 사용하고도 한 끼에 3000원이다. 반찬은 5가지 정도 자유로이 담을 수 있게 했다. 밥과 국은 따로 내준다. 먹은 날의 국은 돼지등뼛국. 몇 가지 찬을 담고 국까지 해서 아침을 미안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잘 먹었다. 시장 주변으로 국밥집과 국숫집이 많거니와 제법 유명한 곳이 예산. 그중에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3000원이라는 가격과 식당에 걸린 원산지 표시를 보고 메뉴를 결정했다. 가격은 3000원이지만 맛은 7000원 이상이었다. 밥 먹고 가격 치르고 식당을 나왔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이 급히 나를 불렀다. 휴대폰을 놓고 나왔다. 일을 다 보고 집에 오니 식당 이름이나 전화번호 메모를 안 했다. 휴대폰을 두고 나오면서 식당 상호도 같이 두고 나온 탓이다. 

식당 이름은 모른다. 상설시장을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 진영슈퍼 바로 옆 옆이라 찾기 쉽다.


예산읍에서 홍성으로 조금만 가면 삽교가 나온다. 가수 조영남씨 노래 ‘삽다리’의 배경인 곳이다. 예산 시장 근처에 국밥 거리가 있지만 부러 삽교까지 넘어온 것은 국밥을 먹고 난 후 편하게 커피 한 잔까지 할 요량이었다. 거의 흔적만 많은 삽교 시장에 여전히 성업 중인 소머리국밥집. 암소 대가리만 사용해 국밥을 내고 있다. 맑은 국물의 소머리국밥이 아닌 얼큰한 국물 속에 밥과 소머릿고기가 가득 들어 있다. 

따로국밥 스타일로 주문할 수 있고 ‘특’ 메뉴도 있지만 보통만 주문해도 배가 불렀다. 월요일 휴무지만 삽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문을 연다. 국밥을 먹고 주차장으로 오면 한옥을 개조한 카페가 바로다. 

자매가 운영하는 카페는 한옥의 서까래를 살려 실내 장식을 했다. 이 장식으로도 유명해졌지만 직접 로스팅하고 숙성한 원두를 그날그날 바꿔가면서 커피를 내고 있다. 10월30일, 예산장이 선 날의 원두는 ‘파푸아뉴기니 모르베’였다. 국밥을 먹고 와서 스콘을 같이 주문했다. 세트로 하면 버터나 잼이 무한리필이라는 말에 덥석 주문했다. 배불러 소릴 하면서 결국 하나를 먹고 나머지는 조금 먹다 말았다. 쟁반을 돌려주고 화장실 갔다가 오니 남은 것을 포장해 놨다. “드시고 남은 것은 포장해 드려요.” 소머리국밥 한일식당 (041)338-2654, 삽교 커피 클래식 070-8804-1914



예산에 가면 꼭 먹어야 할 음식에 이제는 삭힌 김치도 추가해야 한다. 삭힌 김치는 토종배추인 구억배추로 담고는 실금이 나거나 깨진 독에 담가 숙성한다. 김치를 숙성하는 사이 생기는 김치 국물이 배추 특유의 아삭한 식감을 없앤다. 이를 막기 위해 깨진 독에 담가 물이 생기는 족족 빠지도록 했다. 숙성 과정도 특별하지만 김치 담그는 배추는 더 특별하다. 제주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가지고 있던 토종배추를 알음알음 구해 집 주변 텃밭과 따로 임차한 밭에서 직접 재배하고 있다. 

할머니가 사시던 곳이 구억리라서 구억배추라 부르는 토종배추다. 우리가 먹고 있는 배추와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속이 차지 않은 배추다. 대신, 배추 특유의 씁쓰레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일품인 배추다. 구억배추를 맛보고 난 후 다른 배추를 맛보면 심심하다. 삭힌 김치를 된장과 들깻가루만 넣고 찌개로 끓이면 맛이 기가 막힌다. 언뜻 봐서는 시래기와 우거지 넣고 끓인 것처럼 보이지만 맛을 보면 숙성의 향이 가득하다. 우거지처럼 부드럽지만 한없이 부드럽지는 않다. 힘이 있는 부드러움이랄까? 살짝 치즈 향도 나면서 밥을 부르는 맛이다. 사전 예약을 해야 먹을 수 있다. 김치로 끓인 찌개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맛있다. 토담골 (041)337-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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