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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Feb 01. 2022

깨서 먹으라는 이유로 이름이 '깨'다

뭣이 중헌디

귀한 참깨였다. 시장 보고 온 엄니가 참깨 볶는 날이 가뭄에 콩 나듯이 어쩌다 있었다. 저녁 무렵 볶으면 그날은 무조건 비빔밥이었다. 참깨 볶고는 입구가 넓은 주발에 담는다. 그러고는 밀대 겸 방앗공이로 쓰는 것으로 깨를 으깼다. 볶고, 으깨는 사이 온 집안은 고소한 향이 가득했다. 으깨진 참깨, 주발에서 탈탈 털어도 붙어 있는 양이 꽤 됐다. 어쩌면 엄니가 적당히 털었을지도 모른다. 그날은 밥과 고추장 넣고 주발에 비볐다.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참깨나 깨소금은 아끼고 아끼던 조미료였다. 조미료는 미원, 다시다만이 아니다. 맛을 보조해 주는 것이 조미료다.


그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흔해지기 시작했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팔기 위해 농작물에 붙던 관세가 시나브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FTA 협정은 내리는 것도 모자라 아예 ‘0’%를 만들기도 했다. 참깨 관세는 한때는 천 %가 넘었다. 지금은 협정 물량까지는 40% 그 이상은 640%의 관세를 낸다. 그런데도 가격 차이가 수입과 국산 사이에서 4~6배 난다. 참깨 30kg 기준, 국산이 80만 원이라면 중국은 20만 원 후반, 인도는 16만 원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군산 식당에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주변에 이름이 제법 난 식당이었다. 주문한 회무침과 볶음을 주문했다. 나온 음식 보고는 기겁했다. 메인이 되는 식재료는 보이지 않고 위에는 깨만 한가득하였다. 생선 무침을 주문하지 않고 깨 덮밥을 주문했나 할 정도였다. 무침 위로 한 겹의 깨가 덮여 있었다. 없이 살던 시절의 복수라고 하기에도 너무 어이없는 깨 사용이다. 그뿐만 아니다. 이런 일상에서 남발에는 TV에 나와 마지막 꼭 통깨 뿌리면서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예를 들어 시금치를 무친다고 가정하면, 갖은양념에 참기름이 들어간다. 참기름이 들깨로 만드는 것도 아닌데 꼭 마지막에 똥, 글을 쓰는 동안 계속 통깨를 똥깨로 치고 있다. 이는 다음날 화장실 변기에서 애벌레처럼 둥둥 떠다니는 참깨 흔적 때문일 수도 있다. 암튼 통깨를 뿌린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지만, 예전에는 역 앞에서 사람들이 만났다. 언제, 몇 시에 어디 역전앞 이런 식으로 말이다. 역전은 말 그대로 역 앞이다. 전이 한자로 앞 전(前)다. 사람들은 그냥 역전앞이라고 했다. 말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미료는 다르다. 조미료는 ‘적당히’가 미덕이다. 참깨와 참기름을 다 사용해도 괜찮다. 양을 조절해야 한다. 아무도 양조절 하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아니라 드라마의 카메오처럼 임팩트만 살짝 주면 된다. 시금치 무침의 주인공은 시금치다. 참기름 넣고 통깨까지 넣는다면 주인공이 바뀐다. 고소한 내만 가득한 채소 무침으로 말이다. 참기름 넣었으면 통깨는 뿌리지 말아야 한다. 참기름을 넣지 않았으면 참깨는 통깨가 아닌 부숴 넣어야 한다. 통깨가 아니고 말이다. 음식은 정성으로 시작해서 정성으로 끝내야 한다. 가족이든, 손님에게 주든 같다. 통깨를 뿌리는 순간 그사이의 정성을 똥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야 한다. 


깨는 깨서 먹으라 ‘깨’다. 깨는 순간 품고 있던 맛과 향을 내준다. 통깨는 오롯이 맛을 지니고만 있다. 왜 뿌리는 지 알고서 뿌리자. 제발 TV에 나오는 사람들이여 깨 좀 그만 뿌려라. 뿌릴 거면 제대로 뿌려라. 참깨, 뭣이 중헌디 알면 그리 뿌리지 않는다. 


#참깨 #들깨 #참기름 #요리연구가 #세프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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