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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Sep 21. 2023

 한우의 맛은 무늬와 상관 없다

한우의 겉가죽 색이 달라지면 맛도 달라질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케팅의 한 수단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한우의 색이나 무늬 마케팅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생각 끝에 그 대답을 ‘흑돼지’와 ‘일본’에서 찾았다.

흑돼지는 일반 백돼지보다 맛있다. 사실이다. 흑돼지와 달리 백돼지는 피부 색깔뿐만 아니라 탄생의 목적 자체가 다르다. 백돼지를 살펴보자. 정육점에서 만나는 한돈이라 칭하는 돼지고기 대부분은 삼원교배종이다. 삼원교배종은 렌드레이스와 요크셔의 교배종 암컷에 수컷 두록의 정자를 수정시켜 나온 것이다. 뭐 이리 복잡하냐 싶지만 이게 다 이유가 있다. 어떤 종은 성장성이 좋아서, 또 어떤 종은 젖 먹이기 능력이 좋아서, 고기 맛이 좋아서다. 세 가지를 적절하게 섞어서 잘 낳고, 잘 크면서도 적당히 맛까지 있다면 사육 농가나 기업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대량생산에 적합한 품종을 만든 것이다. 요크셔나 랜드레이스는 단일 품종 맛을 본 적이 없다. 맛이 궁금해도 이 품종을 단일로 팔지는 않는다. 그나마 두록은 판매를 한다. 맛의 매력이 상당한 돼지고기다. 흑돼지는 삼원교배종인 백돼지와 달리 맛이 좋은 ‘단일’ 품종이다. 재래돼지라고 하는 것들 대부분은 만주 흑돼지나 버크셔종의 교잡종이다. 두 종은 19세기 후반부터 들여와 우리나라 재래돼지와 교배하기 시작했다. 예전 민화에 나오는 돼지를 보면 초등학교 책에 나오는 바둑이 정도 크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돼지 크기와는 거리가 멀다. 작은 재래돼지와 교배해 크기를 키웠다. 흑돼지는 맛있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이런 흑돼지에 대한 좋은 인식이 소까지 확대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조금 더 확대 해석을 해보면 일본하고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가까워 여행을 많이 간다. 일본의 3대 소고기라 부르면서 먹었던 마블링 자글자글한 고베우가 흑우다. 일본 흑우의 시작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소를 가져가면서 시작했다. 소를 가져가서 그것을 개량하고 개량한 것이 마블링이 대리석 무늬 같은 오늘날의 화우(와규)가 되었다. 필자의 대학 시절인 1992년 축산가공학 시험에 ‘마블링에 관해 기술하시오.’라는 문제가 있었다. 그때는 전문 용어였다. 상강육과 대리석 모양, 영어로는 마블링이라 적은 기억이 있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체결 이후 수입 소고기 자유화 파고가 농촌을 덮쳤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먼저 체결한 일본을 따라 하기 시작해 한우와 마블링을 결부시키기 시작했다. 마블링을 도입하면서 한우의 몸체가 커지기 시작했다. 400kg 남짓하던 한우가 500kg, 600kg을 넘기 시작했다. 1+ 등급이 최고 등급이었던 것에서 2004년도에는 1++ 등급을 추가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한우=마블링 공식이 성립되었다. 그 사이 마블링이라는 단어만 있던 소고기 수출국에서 수출하던 소에 마블링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흑우를 가져가 곡물 비육을 하기도 했다. 유일하게 마블링을 신봉하는 두 나라를 위해서 말이다. 


일본에서 도입한 마블링. 마블링 좋은 소고기는 맛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마블링이 좋으면 맛까지 있을까? 내 생각은 ‘아니다’다. 마블링은 고지혈증에 걸린 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의 기름이 끼고 끼다가 살코기에 낀 기름이 마블링이라 생각한다. 18개월에서 24개월 사이의 소에는 기대하는 마블링이 잘 생기지 않는다. 소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곡물 사료를 듬뿍 먹이는 8개월을 보내야 기대하는 마블링이 충분히 생긴다. 요새 우리가 먹는 투뿔 소고기 대부분이 이렇게 키운 것이다. 개중 반 절 이상이 송아지 때 수소를 거세한 소다. 예전에 복원 작업하는 흑우를 먹어 본 적이 있다. 거세한 흑우였다. 맛있다고 하는데 누렁소와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칡소 거세우 또한 먹어 봤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흑소, 칡소, 누렁소 다 키우는 생산자를 만났을 때 물어봤다. 어느 쪽이 괜찮냐는 질문에 답은 거세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칡소가 조금 더 구수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콕 집어서 이거다는 아니었다. 조금 더 낫다는 이야기였다. 거세한 투뿔 칡소 등심을 먹어보면 거세한 누렁소 투뿔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거세 투뿔 칡소의 등심 가격은 100g 만 원 후반대다. 강원도 횡계에는 칡소 수소만을 키우는 농가가 있다. 정육점도 운영한다. 수소만 사육하기에 등급은 보통 2등급 이하다. 가격은 100g 만 원. 앞서 맛본 투뿔 칡소와는 맛의 결이 다른 소고기였다. 향이 일단 좋다. 육향이라는 구수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칡소 투뿔 등심을 2주 숙성한 다음 딸에게 구워줬다. 맛있다고 먹었다. 그 다음으로 숙성한 칡소 수소를 구워 주니 표현이 이랬다. “이게 더 소고기 다워” 숙성하면 등급과 별개로 고기는 부드러워진다. 칡소 수소의 구수한 향이 비슷한 질감에서 소고기 ‘다움’을 더 나타냈다. 

조선시대 생활사를 소개한 푸른역사의 <조선환경생태사>에 나온 한우의 색과 무늬는 9가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 가지보다 많다. 게다가 그 책의 또 다른 내용은 성종 시절에 오키나와에서 물소를 들여와 개량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소를 들여와 개량하면서 한우의 크기가 비약적으로 커졌다고 한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를 대비하면서 한우를 개량했다고 했었다. 개량하기 전 한우의 도축 중량이 400kg. 성종 이후 오키나와 물소로 개량한 한우는 1994년의 400kg 한우 보다 더 작았을 것이다. 흔히 동남아서 본 소들하고 비슷한 크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지금과 같은 마블링 잔뜩 낀 거대한 한우는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만들어 진 것이다. 거세 또한 이런 마블링 좋은 한우를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아홉 가지 무늬가 있던 한우, 그런 무늬 중에서 맛 차이가 있어 봐야 얼마나 날까? 칡소니 흑우니 이런 구분은 먹고살 만한 이들을 노리는 마케팅이 아닐까? 흑돼지는 단일종이다. 백돼지는 여러 종이 섞여 있다. 칡소, 흑우, 누렁소는 그냥 한우다. 백돼지하고 달리 세 가지가 혼합된 것이 아니다. 단일 종인 흑돼지가 맛있다고 해서 칡소나 흑우도 누렁이 한우보다 맛이 특별하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똑같은 한우인데? 맛의 차이가 현저하게 난다면 연구 자료라도 있어야 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높은 등급을 받은 거세한 수소가 24개월 이후 암소나 수소보다 지방함량과 칼로리가 높아진다는 자료는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마블링이 생기는 8개월 사이 옥수수를 소의 지방으로 바꿔 먹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방을 얻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면서 말이다. 어쨌든, 한우는 구수한 맛이 있다. 거세를 하지 않은 한우에 한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거세가 한우의 맛에 영향을 주는 인자라고 생각한다. 거세한 한우의 예쁘게 자리 잡은  마블링의 맛은 심심하다. 그게 칡소든 흑소든 누렁소든 말이다.   


#칡소 #흑우 #수소 #거세우 #한우 #마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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