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영 Sep 28. 2023

충무김밥

맨밥에 김을 만다. 섞박지와 무친 해산물을 같이 먹는다.

충무김밥은 보기엔 단순한 음식이다. 준비 과정은 복잡하다. 편하게 먹는 패스트 푸드가 다 그렇다. 만들어 내는 순간만 짧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김밥에 무김치와 오징어나 말린 홍합 또는 오뎅을 같이 먹는 음식이다.

전형적인 충무김밥 모습. 품질과 구성은 그대로인데 해마다 가격이 오른다.

통영에는 꽤 많은 전문점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가끔 볼 수가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단순한 조합이면서 맛없기 힘든 조합이지만 

그 어려운 걸 가끔, 자주 해내기도 한다.

서호시장 가는 길에 있는 김밥 집은

주문을 하면 그 자리에서 말아준다.

밥을 담았다가 주는 공깃밥이 아니 퍼주는 집의 밥이 맛있는 것처럼

말아 놓은 김밥은 매력이 떨어진다. 통영에서 김밥을 먹는다면 주로 서호시장 근처다. 

일단 말아 놓으면?!

김이 밥의 수분을 흡수해 눅눅하다. 눅눅함이 지속되다 보니 김밥과 김밥이 서로 붙어 있다.

식은 밥은 밥이 따스한 밥에 비해 단단하다. 밥이 식으면 노화가 진행되기에 밥이 맛없게 된다.

국밥을 말 때 밥을 토렴 하는 이유가 노화한 밥을 되살리기 위함이다. 빼앗긴 수분과 열을 뜨거운 국물로 돌려주는 것이 토렴. 빼앗긴 수분이 다시 밥알로 찾아드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라면에 찬 밥 말아먹는 것이 맛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눅눅한 김 + 단단한 밥 조화가 되겠다. 맛이 있으래야 있을 수가 없지만 이는 무침의 양념에 단맛과 조미료를 더하면 커버 가능하다. 말아 놓으니 밥은 맛없고 양념맛만 느글 해지는 악순환이다.

맛없는 충무김밥이 이런 식이다.

가을에 낚시 갔다 오면 가끔 김밥을 만든다

충무김밥은 패스트푸드다.

패스트푸드라는 것이 준비 과정보다는 만드는 과정의 단순화에 초점을 맞춘 음식이다.

만든 무침과 김치에 김밥. 세 가지만 딱딱 싸주면, 싸놓으면 되는 음식이다. 이건 예전  방식이다.

시대가 바뀌어 노점상이 가게로 들어왔다면 주문과 동시에 말아주어야 맞다.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함에도 노점상의 방식으로 손님을 대해서는 안 된다. 

말아 놓는다는 것은 손님의 회전율만 고려한 방식이다. '손님=돈'이라 여기지 않나 싶다.

햄버거도 시간이 지나면 페기 한다. 오픈 전부터 말아 놓은 것을 팔면 앞서 이야기한 대로 맛이 가 있는 밥이 다. 

갑오징어 먹물 무침 김밥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수많은 메뉴가 있다. 조합도 가능하기에 나올 수 있는 메뉴가 많다.

충무김밥은 패스트푸드라고 했다.

패스트푸드인데 단일 메뉴다.

그냥 1인분, 2인분 메뉴 구분 없이 이렇게 주문한다.

매력이라고는 '일'도 없는 구성이 수십 년째 지속하고 있다.

가끔 무침에 호래기든, 홍합이 추가된 식당이 오픈할 뿐 근본적인 구성이 바뀌지는 않는다. 

충무김밥을 실제로 패스트푸드화를 한다면 다양한 조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낚시를 다녀와서 몇 번 충무김밥을 만들었다.

재료는 낚시에서 잡아 온 주꾸미와 갑오징어다.

밥을 해서는 김에 만다. 무친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먹는다.

무로 만든 섞박지가 없다면 총각김치로 대신하기도 한다. 상관없다. 주꾸미와 갑오징어가 나오는 가을은 무가 맛없다. 더 찬바람이 불어야 그제야 무에 맛이 든다. 충무김밥은 일 년 12달 섞박지가 빠지지 않는다. 무가 맛있든 없든 조미료가 대신하기에 그렇게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갑오징어 먹물 충무김밥을 만들었다.

손질하지 않는 갑오징어를 삶으면

살이 익다가 속에 품고 있던 먹물을 쏟아낸다.

물에 녹아들던 시커먼 먹물을 조금 더 끓이면 점성이 생긴다.

먹물을 품고 있던 내장이 열에 쪼그라들면서 먹물을 내쏟는다. 먹물은 이내 점성이 생겨 보기에는 이상한 블랙이 된다.

내장을 빼지 않고 삶았기에 뼈만 제거하고는 양념에 무쳤다.

내장의 녹진함과  양념의 구수함과 매콤함이 더해져 새로운 맛을 낸다.

섞박지가 없어 토종오이장아찌가 대신했다. 먹을 때 리셋의 역할이 섞박지라 생각한다. 입안을 리셋할 수 있는 반찬이라면 굳이 섞박지를 찾을 필요가 없다.

찬의 형태를 살짝 바꾸니 새로운 충무김밥의 탄생했다.

수많은 조합이 가능한 충무김밥의 가능성을 박제화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봐야 한다.

고정화시킨 충무김밥은 비싼 메뉴가 되어 가고 있다.

사용자 위주의 메뉴는 사라질 위험성이 높다.

반찬을 고를 수 있는 진짜 패스트푸드를 만들어 보며 어떨까 싶다.

지하철 샌드위처럼

밥을 선택한 다음 찬을 고를 수 있다면 재미도 있고 맛도 있는 충무김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충무김밥 #가성비_제로 #점점맛없어지는 #통영

매거진의 이전글  한우의 맛은 무늬와 상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