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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Sep 09. 2024

지극히 미적인 시장_영양

별 볼 일 많은 영양

횡한 상설시장. 지방의 공통현상이다.

오일장은 수혈이다. 사람 없는 동네에 한 달에 여섯 번 사람을 긴급 수혈한다. 일시적일 뿐, 매주, 매달 그리해야 그나마 사람 내음이 난다. 오일장이 열리는 한 달에 여섯 번, 그나마 군청 소재지가 있는 읍은 사람으로 복잡 거린다. 휑한 평상시 모습과 달리 사람 냄새가 난다. 장터의 순기능이다. 빈사 상태의 지방 소도시에 오일장마저 사라지면 피가 돌지 않는 신체처럼 괴사가 될 것이다. 이는 비정상인 수도권 밀집으로 인한 지방의 소멸, 6년째 다니면서 가끔 가지만 체감하는 현실이다. 지방에 대한 정보는 동영상 속이나 기사로만 접하면 진짜의 현실은 모른다. 대부분 “에고” 정도의 의성어 수준 체감일 것이다. 7년 전에 도시에서 살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2020년의 영양                                                2024년의 영양

영양이다. 2020년 가을에 찾은 이후로 오랜만이다. 간혹 오다가다가, 때로는 다른 일로 지나치듯 방문했지만 오롯이 오일장을 위해 찾았다. 별도로 수비초 때문에 일월에 있는 생산자 방문 목적 또한 있었다. 새벽을 지나 풍기 나들목을 나오니 사방이 밝아진다. 여기서도 한참이다. 영주를 지나 봉화읍에서 다시 국도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영양읍이 나온다. 태백이나 정선, 영월도 지나지 않지만, 고속도로 출입구에서 가장 먼 곳으로 울진과 영양군일 것이다. 동청송 나들목에 영양이 쓰여 있지만 엄연히 그 동네는 청송이다. 가끔 내가 약수 마시기 위해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신촌 약수터 근방이다. 

봉화읍에서 영양읍까지는 60km 조금 넘는다. 산길로 돌아돌아 가야 하기에 시간이 꽤 걸린다. 봉화에서 영양가는 길 안개가 피어오른다. 안개는 계절 변화를 알리는 지표. 어제와 오늘의 계절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안개는 피어오른다. 영양의 경계에 들어서니 아침 해가 뜨면서 안개도 사그라졌다. 영양 읍내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시장 구경을 나섰다. 카메라 챙기면서 지난번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지금의 영양 객사(호스텔)가 공사 중이었다. 시장 건물 공사라 생각했지만 요번에 보니 아니었다. 

장터에 들어서자 “앗” 한숨 섞인 단어를 조용히 내뱉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있겠지 했던 것은 내 착각이었다. 4년 전보다 사람이 더 적었다. 더 사그라진 시장을 몇 번을 왕복했다. 그렇게 시장을 오갔다.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진다. 경상도 장터에 들어서면 사방팔방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울 엄마 또한 경상도이기에 그렇다. 외지인에게는 휑한 장터처럼 보여도 나와서 파는 이들과 나와서 사는 이들 사이에는 흥과 정이 오간다. 옆집이나 이웃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과 달리 오래 보고 산 사촌처럼 대화가 살갑다. 고등어 만원 치를 살 때도, 7천 원 한 대박 피땅콩을 사는 사이에 정겨운 대화가 오간다. 

잠시 시간을 내어 읍내에 10km 조금 넘게 떨어진 풍력단지를 향했다. 계획했던 식당이 열려면 한참 남았기 때문이다. 다녀와도 시간이 남아 일월의 생산자도 만나고 왔다. 요즈음 고춧가루와 다른 토종고추 생산자다. 일반 고춧가루는 팔고 있지만 수비초는 예약이 밀려 난리라고 한다. 10월 중순에 다 수확해봐야지 알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왔다.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인생. 내년에 토종 고추를 따로 공급받을 계획을 하면서 다시 읍내로 왔다. 

얼추 오픈 시간. 자신 있게 들어서니 테이블마다 예약자 팻말이 있다. 이미 노년의 부부가 식사 중. 12시 예약은 꽉 찼고 지금은 괜찮다는 말에 고추돈가스 주문. 영양의 대표 농산물인 고추를 활용해서 만드는 요리다. 소복이 쌓은 양배추 채 위에 돈가스를 올린 다음 그 위에 빨갛거나 파란 고추 편을 꽤 많이 뿌려서 나온다. 고추 편이 매울 듯싶지만 생각보다 맵지는 않다. 돈가스 기름 맛을 깔끔하게 지우는 정도. 돈가스가 나오기 전에 예전 경양식처럼 수프도 나온다. 내 옆 노년의 부부는 마치 젊은 연인처럼 돈가스 하나와 사과 피자를 주문해서 나눠 먹고 계셨다. 먹는 사이 군인 한 명이 들어 오더니 포장한 것을 양손 무겁게 들고 나간다. 사는 이가 적으니 식당의 종류나 숫자도 적은 것이 영양이다. 네이버에서 영양 맛집으로 검색하면 다른 곳보다 숫자가 적다. 그렇다고 많다 해서 다 맛있는 것이 아니듯 식당 숫자가 적다고 맛있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영양에서 먹는 맛있는 한 끼에 충분히 들어가는 맛이다. 

참고로 지난번에는 돌판 냄비에 요리하는 돼지 주물럭과 곱창전골을 먹었다. 이번에는 돈가스만 먹고 안동을 향해 출발했다. 

수수에 망을 씌었다. 가을이다.

예전에 하회마을 근처에서 헛제삿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었지만 사진이 없었다. 헛제삿밥 사진 찍기 위한 안동행이었다. 맛만 보고는 ‘헛’제사밥 사진을 찍었다. 공깃밥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밥이 나왔다. 제사상 위에서 12시간 정도 보내고 나온 밥처럼 단단했다. 

결코 다시 먹을 일이 없는 안동 헛제사밥

낸 돈 15,000원이 ‘헛’ 것이 되었다. 비빔밥이 유명한 동네는 비빔 재료는 좋을지언정 밥은 좋지 못한 특징을 지닌 듯싶다. 

https://youtu.be/Gv1rqpXgYAQ?si=vzdkMgQevvuH31D1

다시 시작한 유튜브..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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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맞은장날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101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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