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세의여전한 방황이야기
고교 졸업 이후 30년간 내가 잠시라도 몸담았던 직업이나 직장들은 '단과 입시학원 강사, 다이아몬드공구 회사 해외영업, 공공기관 전략기획팀, 전문대 중국어과 겸임교수, 경제자유구역청 외국인 투자유치 업무 계약직 공무원, 임용고시 학원 강사, 중앙부처 공무원, 컨설팅 회사 창업, 변호사/변리사 자격증 및 영양사 면허 취득, 온라인 교육업 및 민간자격증 운영, 라이브 커머스 쇼핑호스트' 등이고, 소비자단체나 학회 등 임원과 각종 방송 출연을 하면서 살아왔다.
이런 나의 삶을 예측이라도 하신 듯 고등학교 때 나를 눈여겨 지켜보시던 절친의 어머니는 어느 날 "팔방미인이 굶기 딱 좋다. 한 가지에 집중하거라."라고 정확하게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비슷한 말씀을 30년 전에 하셨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라 공부가 전부였을 시기였고,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 다양한 정보나 지식을 접할 환경도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라 고등학생이 주변에 관심을 가져봐야 뻔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저런 말씀을 하신걸 보면 기억은 못하지만 분명히 뭔가 다른 것에 관심을 두고 방황하는 것이 보이셨나 보다.
하지만 30년 전에는 한우물만 파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 혹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너무나 다행스럽게 여러 분야에 대한 관심과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로 변했다. 나처럼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다방면에 쓸데없는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최상의 환경이다.
우연이 시작한 변화 혹은 작업이 성공하면서 많은 분들이 내 꿈이 원래부터 그랬을 거라 추측하거나 믿고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예를 들어 지금은 성공한 식품 전문 변호사라는 직업도 사실은 식품이 싫어 서울대 식품영양학과를 5년이다 다니다 자퇴했었고, 우여곡절 끝에 16년 만에 졸업장을 땄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의 근무 역시 지나친 텃세로 적응이 어려워 도피성 선택으로 로스쿨로 간 것이지 변호사가 되기 위해 차근히 준비했거나 선망했던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갑작스럽게 로스쿨이 생긴다는 뉴스를 접하고 900점을 간신히 넘긴 영어점수와 인천대학교 졸업장으로 어디든 붙어야 한다는 절박함의 결과로 동아대학교 로스쿨에 예비합격했었고, 법학적성시험 역시 제대로 준비할 겨를이나 마음도 없어 있는 그대로 기본 실력대로 받은 점수가 전부였다.
이보다 더한 변호사가 되고자 한 이유는 우습게도 바로 골프였다. 월급 200만 원 받는 공무원이 즐기기에는 너무나 고비용 운동인 골프를 저렴하고 맘껏 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평일에 시간이 자유로운 자영업자라는 어리석은 생각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자영업자가 되기 위해 로스쿨을 갔다는 정말 어처구니없이 무지한 판단이었다. 실제로 법학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학부에서 법학개론 수업을 들은 흔적이 있는 게 전부인 상황에서 로스쿨 개강일에야 비로소 그 두꺼운 민법책을 펼칠 정도였으니 무식해서 용감했다는 표현이 정확히 맞았고, 그 이후 1학년 내내 밑바닥을 기면서 내가 한 선택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나한테 맞지 않는 이유는 바로 내가 싸움을 싫어하고, 타인에 대해 비평할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평균 키에도 못 미치고 힘도 약해 어려서부터 신체적이든 말다툼이든 싸움은 피해왔고, 특히나 소심한 성격으로 타인을 비방하거나 자극해서 어려운 관계가 되는 것을 심하게 걱정하는 나에게 전문 변호사로서 업무는 굉장한 스트레스고, 성격과 매칭 되지 않는 100% 잘못된 직업선택이 분명했다.
하지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행 중 아주 큰 다행으로 업계 유일무이의 식품을 전공하고 식약처 근무 경험이 있는 변호사다 보니 독점을 누리면서 시간당 100만 원의 웬만한 전관 변호사도 부럽지 않은 몸값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식품 사건이 많지는 않아서 한 달에 한 건의 수임도 쉽진 않지만 비싼 몸값 덕에 최소한의 업무시간으로 일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더욱 방황할 수 있게 자연스러운 환경이 구축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제 인생에 대해 '실행력이 남다르다', '에너지가 넘친다'라고 칭찬해 주시지만 실제로 일이 많지 않으나 비교적 안정된 수입이 있어 나머지 시간에 뭔가 해야만 하는 나로서는 배부른 소리지만 멍 때리기만 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 문제와 하는 일이 나와 맞지 않아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의 결과라고 변명하고 싶다.
거기에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사람 만나서 친분을 쌓는 일을 두려워하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은 초창기 회사 등 조직에 몸담았던 것과 달리 변호사가 되고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소위 1인 창업처럼 혼자 할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찾고 있다. 이런 성향은 비단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어차피 사업이든 취미든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더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고, 복잡해 지기 때문에 시작은 간소하게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년시절부터 여러 이유로 낮아진 자존감,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 존재감조차 없었던 학창 시절로 인해 형성된 소극적이며 눈치를 살피는 성격은 치유 불가능한 장애로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쓰겠다고 선언하자,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보고 제대로 평가할 자격이 있는 와이프가 '도대체 왜 책을 쓰냐'라고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나처럼 소심하고, 뚝심 없고, 방황하고, 잘난 거 없는 사람도 그냥 주어진 환경에 무너지거나 겁먹고 도망가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있고,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겉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 화려하거나 멀쩡해 보이는 페이스북 사진과 글 뒤에 숨겨진 우울한 성격과 어리석은 본성이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도 확인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 글을 읽게 될 내 자식에게 이런 부모였다는 것을 설명해주면서 나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 이게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나는 살아 남기 위해, 어떻게든 뒤떨어지지 않고 버티기 위해 방황하고 눈치 보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