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 위기까지 갈 정도의 싸움 해결을 위해 결심한 커플 상담 10-3
시간이 지나면서 큰 싸움으로 생긴 서로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나를 대하는 남자친구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냉랭했다.
상담을 받아보기 전에는 관계에 대한 속단을 하지는 말자는 생각을 해서인지,
그의 냉정한 태도에도 바로 반응하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유 없이 냉정해지는 남자친구의 태도에 이전 같으면 예민하게 반응했었을 거다.
하지만, 관계의 끝을 생각할 정도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고요했다.
드디어 상담하는 날.
휴일이어서 우리는 충분히 먹고 쉬었다.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어 예약한 상담소로 향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상황이 주어지면 부담을 느끼는 남자친구는 상담도 마음이 쓰였는지,
가는 길에 내게 계속 편하게 마음먹고 할 말 다하라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는 오히려 상담을 기다렸던 상황이라, 부담감보다는 기대감이 더했다.
상담소에 도착했고, 편안하게 조성된 상담 공간에 좋은 기운이 느껴졌다.
삼담사님이 밝게 맞이해 주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상담사님은 방문하게 된 이유부터 물었다.
나의 경우는 남자친구의 공감능력 부족이, 남자친구는 나의 감정기복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상담사님에게 결혼식을 앞두고 일어났던 갈등 상황들을 설명했고, 그로 인해 극단적인 감정싸움으로 번졌던 것에 대해 얘기했다. 남자친구와 대화할수록 감정이 상하고, 작은 문제가 커지는 상황을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상담사님은 상담 중간중간에 따뜻한 차를 끓여서 따라주었는데, 그게 말하는 동안 울컥하는 감정과 긴장이나 부담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보통의 상담은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상담사님은 우리의 생각을 말할 기회를 충분히 주면서도 각각의 갈등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와 사례를 들면서 설명을 해주어서 더욱 이해가 잘 됐다. 우리 둘의 성격적 특성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어서 그런지 서로의 마음과 상황에 대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상담 중 도움이 됐던 내용을 몇 가지 정리해 보자면,
1. 감정은 감각이다.
감정은 감각이 생기는 운전 연습과도 같아서 상황에 따라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필요한 감정을 사용하는 연습을 하면 능력이 향상된다. 어떤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감정을 알아차리고 필요한 순간에 적절히 표현할 줄 아는 게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상대의 관점(패러다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상대가 갖고 있는 관점(패러다임)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대화를 했을 때, 갈등이나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무작정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하려 하기보다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경청을 하면서 상대의 관점과 의도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면 점점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관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3. 생일과 같이 반복되는 이벤트보다 결혼처럼 인생에서 한 번 일어나는 이벤트는 더욱 감정의 각인이 깊다.
이 부분은 결혼식에 비협조적인 내 남자친구에게 한 얘기였는데, 남자친구는 이 얘기를 듣고, 자신의 태도를 반성했다.
4.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사과한다.
싸울 때마다 감정이 극에 달한 내가 남자친구에게 막말을 하거나 관계를 끊자는 말을 한 거에 대해, 감정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꼭 진심을 담은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남자친구는 감정적인 말에 나보다 더 상처를 크게 받는 사람이라는 걸 이번 상담을 통해 깨달았다. 그래서 그동안의 내 말이나 태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었다.
5. 상황에 따른 자아의 틀이 확고할수록 그게 깨지거나 경계가 무너질 때, 엄청난 감정적 혼란을 느낀다.
내 남자친구는 상대나 상황에 맞추어 자신의 자아의 틀을 정확하게 설정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비교적으로 그런 부분이 유연한데, 오히려 틀이 확고한 사람일수록 그 틀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감정적 동요와 마음의 혼란이 더 크다고 했다.
6. 이성이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경청과 공감은 상대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도 따뜻하게 한다.
경청과 공감을 통해 자신이 고집스럽게 갖고 있던 자아의 틀을 깰 수 있고, 이를 통해 더욱 성장하고 확장되어 결국엔 자신도 자유롭고 더욱 행복감을 잘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결국 자신을 위해 경험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7. 트라우마는 상대가 진정 공감을 해주는 상황에서 가벼워질 수 있다.
서로의 트라우마가 머리로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가볍게 넘길 것이 아니라, 집중해서 들어주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겐 치유의 효과가 있다. 이 부분도 남자친구가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내가 상담에서 가장 크게 주목했던 점은 생각보다 내 남자친구가 감정적인 부분에 서툴다는 것이었다. 감정에 서툴기 때문에 상대의 감정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남자친구는 스스로의 감정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거나 우울함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한 자신의 괴로움을 해소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상대방에게도 그게 느껴지면서 서로 힘든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이 말에 남자친구가 그동안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방치하고 돌보지 못했을지가 느껴져서 안쓰러웠다.
상담을 해보니, 나는 생각보다 자기 연민에 깊게 빠져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친구도 나만큼 힘들지만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남자친구의 이해되지 않던 많은 부분이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나도 남자친구와의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감정을 최대한 진실하게 담백하게 표현하면서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려 노력하고 여유와 포용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