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으로 파혼 대신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하다
일본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이 되고 내 마음은 냉랭했다.
나갈 준비를 하는데, 예랑이가 말했다.
"잘 잤어요? 오늘은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줄 수 있어요?"
난 밤새 뒤척였는데, 푹 잔 얼굴로 이기적으로 말하는 예랑이를 보니 마음속에 뒤틀린 뭔가가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예랑이의 입장에서는 결혼식을 하고 싶은 사람인 거고 관계를 끝내지 않고 결혼을 진행시키기 위해 내가 이 여행을 제안했는데, 예랑이가 받아들여준 거니까.
나도 예랑이가 내민 손을 잡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알겠어요."
마지못해 대답은 했지만, 그렇게 대답하고 보니 그동안 나도 큰 일을 결정할 때,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예랑이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나만의 추진력에 몸을 싣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갔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랑이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자기가 하기 싫은 일에는 극단적으로 소극적이고 느린 그의 태도와 행동이 너무 답답해서 그랬던 건 있지만, 그 속에서 얼마나 이 사람이 무력감을 느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워낙 평범하게 살기를 거부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같이 짐을 정리해서 호텔 프런트에 무거운 배낭은 맡기고 숙소 주변 동네에 있는 맛집에 가기로 했다.
예랑이는 자기가 원하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는지, 다정한 말투와 태도로 바뀌어있었다.
다행히도(?) 예랑이가 찾아낸 맛집은 아침부터 웨이팅이 많을 정도로 굉장히 맛있었고,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도쿄의 다른 지역도 구경을 했다.
여행을 할 때, 유명하거나 느낌 있는 장소와 음식점, 카페를 미리 찾아놓고 동선까지 생각해서 선택하는 나와는 달리, 예랑이는 두서없이 즉흥적이었다. 계획은 뚜렷하게 없는데, 마음속에 생각한(나에겐 말도 없이 혼자 생각한) 그림이 다르게 현실화되거나 변수가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내 방식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나도 스스로 개선해 가면서 예랑이를 그냥 따라다니기만 했다. 고생은 두 배가 됐지만 뭔가 나도 내 안의 '이래야 한다'는 아집을 내려놓는 기분이 들어서 자유롭기도 했다.
몸은 정말 고생스럽고 도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는 정신없는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옆에 예랑이가 있어서 든든하긴 했다. 예랑이와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면서 대화를 했고 이상하게도 몸은 힘들었지만 둘 다 기분이 계속 좋았다. 길을 정처 없이 걷고 있는데, 갑자기 예랑이가 자기가 그럼 결혼식에서 남은 것들 중에 어떤 걸 하면 좋겠냐는 얘기를 했다. 그때가 예랑이의 닫혀있던 마음이 열린 순간이었나 보다.
나도 이 사람에게 얼마나 결정권을 안 주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기다림 없이 얼마나 내 속도에만 맞춰서 결정을 해왔는지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결혼식을 다시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