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 살림 준비하기
대출 실행까지 완료한 후 나는 본격적인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 가구의 아파트 이사 준비는 마치 결혼 준비 같았다. 기존에 사용하던 오래된 원룸 가구가 재활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집에 맞춰 새로운 가구들을 장만해야 했다. 혼자 필요한 가구를 고르며 기능, 디자인, 크기 등을 모두 고려하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오로지 내가 원하는 대로 구입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셀프 신혼집(?) 가구 배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1. 방의 용도 정하기 : 겨우 방 두 개짜리 작고 소중한 집(...)일지라도 각 방의 주제를 정하면 가구 배치가 수월해진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잘해놓고 사는지 벤치마킹하고 싶어 유튜브 <자취남>, <유부남> 채널을 많이 시청했다.
-2번 방 : 2번 방은 크기가 작은 것만 고려하면 침대방으로 활용하고 싶었지만, 복도와 붙어 있어 잠자는 곳으로 활용하면 불편할 것 같았다. 전 주인이 설치해 놓은 예쁜 붙박이장을 활용할 겸, 붙박이장 맞은편 벽면에 내가 사용하던 옷장 2개를 추가 배치하여 2번 방을 <드레스룸>으로 정하기로 했다.
작은 창문에는 블라인드 커튼을 설치하여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 환기 시 커튼을 걷기 용이하도록 했다. 창문 밑의 공간에는 3단 투명 수납함을 두어 추가 수납공간을 만들면서도, 공간이 좁아 보이지 않도록 했다.
-1번 방 : 베란다를 끼고 있어 따뜻하고 아늑한 위치이므로 침실로 낙점했다. 처음으로 잠을 위해 오로지 기능할 수 있는 방 하나를 갖게 되어 기뻤다. 참았던 욕망이 폭발했다.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에 큰돈을 투자했다. 실로 혼수라고 할 만한 가구였다.
침대 옆에는 호텔형 침대 프레임과 세트인 2단 수납장이 들어가고, 그 옆에는 화장대를 배치했다. 자기 전 샤워를 마치고 1번 방으로 온 다음, 화장대에서 스킨로션을 바르고 좋아하는 향수를 뿌린 뒤 바로 옆 침대로 들어가는 동선을 생각했다.
커튼은 암막커튼으로 정했다. 수면을 위해 암막 비율이 높은 커튼을 선택했으나 베이지그레이 색상을 골라 방이 칙칙해 보이지 않고 포근해 보였다.
-거실 : 투룸 치고는 거실이 크게 빠진 편인데도 이상하게 원하는 가구를 모두 배치하기엔 부족했던 공간이다. 냉장고와 소파에 대한 욕심 때문에 결정에 애를 먹었다. 냉장고 옆에 소파를 두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고민했으나, 신축은 TV월(티비를 설치하는 벽)이 정해져 있어서 소파와 냉장고의 배치를 나란히 할 수밖에 없었다.
베란다 확장을 한 거실이라 창문 밖의 풍경을 거실에서 바로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거실 풍경에 어울리는 흰색 시폰 커튼을 설치하기로 했다.
거실에 놓는 가구 가전들도 가격대가 상당했다. 거거익선이라는 TV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 TV의 최상급 화질은 포기했고 한 단계 낮은 화질의 대화면 TV를 선택했다. 스탠드형 무선청소기(코드제로)도 풀옵션이 아닌 불필요한 부속품이 빠진 옵션으로 골라 주문했다. 소파는 가격이 있더라도 누워보고 까다롭게 정했다. 너무 폭신하지 않은 적당한 쿠션감의 가죽 소파를 골랐다. 식탁은 넓고 길게 혼자 걸터앉아 먹고 싶어 1인 가구의 니즈에 맞게 주문 제작해야 했다. 뜨거운 냄비를 받침 없이 올려놓을 수 있는 포세린 식탁을 선택했다. 역시 비싸...지만 원팬 요리가 많은 1인 가구에게는 대만족인 제품이었다. 냉장고의 경우, 1인 가구인 덕분에 저장 용량이 너무 크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로 예쁜 키친핏을 선택할 수 있었다. 아래 두 칸은 냉동실과 김치냉장고로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데 처음 김치냉장고를 쓸 수 있게 된 덕분에 삶의 질이 확 올라갈 수 있었다. 얼음정수기 등의 옵션은 냉장고 가격대를 확 올리므로 고려하지 않았다.
-베란다 : 워시타워 첫 구매! 기사님이 먼저 방문해 설치 가능 공간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므로 미리 일정조율이 필요하다. 10초만에 끝나므로 이사날 방문하는 것으로 했다.
결정된 내용만을 정리하니 크게 복잡하지 않아 보이나, 그 과정은 매우 지난했다. 결정장애 있는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을 추천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할 정도. 혼자 하나하나 모든걸 결정하기까지 눈알 빠지게 정보를 검색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점은 가구 배송일 / 설치일 지정이었다. 값비싼 가구 가전은 주문 단계부터 희망 배송일을 지정하는 서비스가 있지만, 소형 가구는 비싸도 배송일 지정이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다행히 미리 주문을 완료하고 인터넷 게시판 문의 등을 통해 지정일 배송을 간절하게 부탁해서 담당 기사님이 가능한 일정과 잘 맞춰볼 수 있었지만 100퍼센트 일정을 맞출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 주문 시 이것을 꼭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배송지주소...!
이사할 주소로 다 바꿔서 주문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는 이전집으로 신청하는 실수가 있었다.
다사다난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깨닫는다.
나 혼자 산다(buy)는 것이란
나 혼자 감당할 것도 많아진다는 것
하지만 나에게 맞는
플렉스를 할 수도, 가성비를 택할 수도 있다는 것
그 후에 받아볼 카드 고지서는? 오롯이 나 홀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렇게 나는 나와 결혼할 준비(응?????)를 마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