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첫 포장이사

파워J 1인가구의 정신없는 하루

by 낮잠

1인가구의 포장이사

1인가구에게는 조금 사치처럼 느껴지는 포장이사. 그래도 해야 했다. 반셀프이사를 했다가 골병이 들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만큼은 매매를 통해 진짜 내 집으로 가는 이사이기 때문에 이삿날 잔금처리 등 중요하게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이사 견적을 여러 곳에서 비교하고 고민하는 사이, 평이 좋고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이사업체는 예약이 다 잡혀 버렸다. 이사일이 평일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사 업체는 일찍 정할수록 좋다는 교훈을 얻었다.

결국 숨고에서 견적을 받은 것보다 20만원 비싼 유명 포장이사업체를 예약하게 되었다. 반셀프이사를 15만원에 했던 시절을 생각하니, 총견적이 80만원인 포장이사업체의 견적이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포장이사를 하고 난 결론은, 그만큼의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사업체 예약을 마친 후 업체에서 뜬금없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회사 SNS에 올릴 홍보 영상을 내 집에서 찍었으면 좋겠다는 조심스러운 제안이었다. 이삿날 정신없을 것이 분명했고, 내 프라이버시도 우려되어 거절했다.


드디어 대망의 이삿날이 되었다. 한국인 직원 3분이 짐을 정리하고 옮겨주셔서 좋았다.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직원 한 분은 섬세한 작업을 해주실 이모님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하드캐리(!)하신 일들이 많아 감사했다. 나는 이미 초벌로 짐을 분리해 놓은 상태였고, 속옷이나 와인장 등 취급주의가 필요한 장 앞에는 종이 이름표를 붙여 두었다. 취급주의가 필요한 물품 정리부터 무거운 짐 이동까지 이모님은 못 하는 일이 없었다. 이번 아파트 매매과정을 통해 부동산 소장님부터 이사 이모님까지 여성 파워들을 많이 발견해서 참 좋았다.


이사 업체에서는 사전에 부탁했던 벽걸이에어컨 해체작업(따로 업체를 부르면 비용이 든다)도 안전하게 해 주셨고 대형폐기물(세탁기 등)도 분리수거장 앞으로 이동해 주었다. 이사의 모든 과정이 신속하고 순조롭게 흘러갔다. 하지만 파워J의 인생 역시 계획대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작은 복병도 있었다.



"아니 커튼봉을 왜 이렇게 달아놨어. 봉을 다는 위치가 따로 있는데."

준비성 철저한 나는 커튼봉 해체까지 미리 시도했다. 그러다 커튼봉을 걸기 위해 박혀있던 나사못을 마모시켜 버렸다. 마모된 나사 푸는 방법을 검색해서 따라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사업체 직원분이 그것 때문에 애를 먹다가 겨우 해결이 되었다. 처음에 셀프로 커튼봉을 달면서 잘못된 위치에 나사를 박았던 모양이다. 처음부터 설치도 잘못했고, 잘못 박은 나사도 그냥 두었어야 했다며 이사업체 직원분께 잔소리를 된통 들었다.


행복주택 최종점검 예상치 못한 복병은 말발굽

모든 짐들이 방에서 빠지고 난 다음 행복주택 관리실의 최종점검이 있었다. 한 페이지 가득 적힌 체크리스트를 들고 관리실 직원분이 집안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6년 동안 거주한 생활감은 있었지만 큰 하자 없이 산 방이었다. 식기건조대를 싱크대 상부장 밑에 부착하느라 나사못을 박았던 부분에 가리기 테이프를 붙인 것이 살짝 찔렸는데, 관리실 직원은 그런 부분까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질문을 했다.


“고양이 키우셨어요?"


아뇨,라는 나의 대답에 그는 말했다.

“아 그럼. 그전에 살던 사람이 키웠나 보네. 방충망을 고양이가 긁은 것 같은 자국이 있어서. 알겠어요. 최종점검 끝났고, 별다른 이상 없습니다."


예상보다 간단하게 최종점검이 끝나는 듯했다. 도어록도 해체해서 원래 문고리로 원복 했고, 말발굽은 설치된 그대로 두고 가도 된다고 했으니…….


그런데 말발굽이 문제였다. 6년간 잘 쓰던 말발굽을 이사 업체에서 짐을 옮기다 고장 낸 것이다. 고장 난 말발굽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이사 업체에서는 그것을 빼서 버렸다.


문 밖을 나서려다 이것을 발견한 관리실 직원은, '말발굽을 뺀 자리에 구멍이 있으니 이를 원복 해달라'라는 이야기를 했다. 말발굽이 설치된 상태라면 상관이 없지만, 말발굽이 없이 구멍이 뚫려 있으면 문 전체를 갈아야 되는데, 문 전체를 교체하는 비용은 매우 비싸다고 했다.


“지금 잔금 치르러 약속 시간에 맞춰 가야 해서요. 제가 지금 말발굽을 달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나중에 다시 와서 설치하면 안 될까요?"

나의 말에 계속 고민하던 관리실 직원은, 말발굽 설치는 관리실에서 해줄 테니 제품만 구입해서 관리실에 가져오라고 말했다. 나는 쿠팡 배송을 약속드린 뒤 출발해야 하는 시간 내에 이삿짐을 싣고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저 어디 타면 돼요?"

트럭이 출발할 일만 남았다. 나의 질문에 이사 업체 직원분들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이 차로 같이 이동한다고 사전에 말씀 안 주셨잖아요. 앉을자리도 없어요. 대중교통으로 오세요.”

나도 말 안 했지만 업체에서도 사전에 물어보지도 않았었다. 포장이사가 처음인 나는 이것을 사전에 말해야 하는지 몰랐다. 당연히 같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대중교통으로 거기까지 가려면 많이 돌아가야 해서 약속 시간에 도착을 못 해요. 택시로 가기에도 부담스럽고요. 짐칸에라도 타고 같이 갈 수 없을까요?”

고민하던 업체 직원 한 분이 사이드 의자로 자리를 옮기더니 나에게 좌석 하나를 내어주셨다. 다행이었다. 덕분에 나와 업체 이모님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이사할 집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새로운 성에 도착하다

이사할 집에 도착한 후 포장이사 직원들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최대 3시간까지는 추가 비용 없이 대기해 주겠다고 이사업체는 말했었다.


짐 넣기 전의 일들

나는 그 사이에 다른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먼저, 공인중개사와 만나 새로운 집에 들어가 기존에 살던 사람들의 짐이 다 빠졌는지, 집에 추가적인 하자가 생긴 것은 아닌지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미리 신청해 놓은 사이청소 업체 직원분을 방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전주인이 이사 전날 방을 뺀 것을 알았다면 양해를 구하고 전날 입주청소를 했을 텐데 아쉬웠다. 계약할 당시 집주인의 분위기가 좋지 않아 이에 대한 부탁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이청소는 짐을 넣기 전 정해진 시간 동안만 간단 청소를 하는 서비스여서 창틀과 같은 세부적인 청소까지는 불가능하다. 그 점이 아쉬웠지만 나는 잔금을 치르러 부동산으로 이동해야 했다.


부동산에서 전 집주인, 법무사, 나, 공인중개사 이렇게 네 사람이 만났다. 잔금 이체, 집 인수인계, 부동산소유권 등기를 위한 인감증명서 등의 서류제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무사는 은행에서 지정한 법무사가 아니어도 된다는 은행의 말을 들어서 법무통을 통해 견적을 받은 법무법인 중 가장 평이 좋은 곳을 채택했다. 법무사 보수는 25만원 정도로 비슷했고 등기에 필요한 총견적은 4백만원대 였다.


서류 확인이 끝난 뒤 잔금을 이체했다. 행복주택 보증금은 당일 아침 내 계좌에 입금완료된 상태였고 이를 먼저 매도인 계좌로 이체했다. 계좌이체한도를 상향하는 일은 이사 전에 은행 지점을 방문해서 미리 처리해 놓은 상태였다.


나머지 대출 잔금은 은행과의 최종 통화 후 매도인의 계좌로 입금되었다. 이 과정은 법무사의 안내에 따라 어렵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잔금을 모두 입금한 후 나는 매도인에게 출입카드, 리모컨 등 집과 관련된 물품들을 인수인계받았다. 아파트 직원분(?)으로 추정되는 것 같은 분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께서 아파트 입주 시 제공되는 물품들의 종류와 개수를 설명해 주며 차례차례 물품을 확인하고 내게 건네주었다.


막상 잔금을 입금받고 나니 기분이 좋았는지 매도인은 부동산 계약 당시보다는 태도가 부드러워져 있었다. 이 아파트가 좋은 아파트라는 말로 운을 띄우더니 아파트 어플에서 커뮤니티나 세대창고를 신청하는 팁까지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게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문자와 전화들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짐 넣는 일들

[저희 식사 다 끝났는데 언제 짐 넣으면 될까요]

빨리 짐을 넣고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은 이사 업체의 연락이 왔다. 사이청소 담당 직원의 청소가 끝났음을 확인한 후 나는 바로 이사 업체에 연락해 짐을 넣어도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청소 직원이 문을 열어둔 채로 집을 나온 뒤 이사 업체가 짐을 가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사 업체는 이미 엘리베이터 보양작업까지 마친 상태로 바로 짐을 넣기 시작했다.


나는 부동산 옆에 있던 주민센터에 들러 전입신고까지 신속하게 완료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새로 구입한 가구업체 기사님들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지금 가구를 배송하러 가도 되냐는 확인 전화였다.


침대 프레임 기사님이 들어와 뚱땅뚱땅 킹사이즈 호텔침대 프레임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안에 넣을 멀티탭도 기사님께 건네 드리고, 정확한 설치 위치(방의 끝에서 몇 센티 정도부터 설치할 것인지)까지 알려드렸다. 파워J의 준비성 덕분에 이사 당일에 새가구들의 배송설치까지 거의 완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복병은 또 있었다.


이사 전 열심히 집 도면과 VR 이미지를 보고, 콘센트 위치까지 고려하며 가구 배치 계획을 세웠는데…….

전 집에서 사용했던 옷장을 배치하려던 작은 방 벽면에 스위치가 있었다. 조명과 난방을 제어하는 스위치였다. 그게 있다는 사실까지는 차마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

너를 내가 몰라봤구나

부동산에 잔금을 입금하러 가기 전 방을 점검하며 그 스위치를 발견한 나는 크게 당황했다.

[옷장 2개는 폐기물로 버려야 할 것 같아요. 방에 설치하지 마시고 폐기물 내놓는 곳에 내놓아주세요.]


이사 업체에 문자를 보낸 후 집으로 들어오는 길 편의점에서 폐기물 스티커 2개를 구입했다.

‘6년동안 정 들었던 깨끗한 내 옷장. 다시 쓰려던 내 옷장. 안녕.’




벽면 스위치 때문에 새로 구입한 시스템 행거장

스위치가 있는 벽면에는 시스템 옷장을 구입해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하부는 서랍형이고 상부는 행거형으로 벽면의 스위치를 가리지 않는 가구를 구입할 계획이었다.

티비나 티비장, 책장 등은 살면서 니즈에 맞게 천천히 골라 구입할 예정이었다.

포세린 식탁은 배송지 지정을 이사 전 주소로 잘못하는 바람에 일주일 뒤에나 배송받을 수 있다고 했다.

커튼은 이사 다음날 설치하기로 했다. 커튼이 없어 바깥 풍경이 크게 보이는 거실은 정말 새 집 같으면서도 휑했다. 새로 설치한 가구 냄새를 빼기 위해 베란다 창문을 전부 열어놓으니 더 그랬다. 나는 새가구 냄새와 섞인 찬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휑한 거실에서 이부자리를 깔고 잠이 들었다. 어떠한 감격도 없었지만, 아직 다 갖춰지지 않아 불편했지만, 조금씩 찾아오는 안도감과 안정감에 곧 잠이 들 수 있었다.



‘드디어 내 집이 생겼다!!!!!!!!!!!?’


이런 감동은 전혀 없었다.

신나서 환호하고 방방 뛰는 드라마 속 장면은 이사 과정을 겪지 않았기에 나온 게 아니었을까? 나는 이사업체에서 무작위로 넣어놓은 짐 정리, 커튼 설치, 워시타워 설치 등 내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 이사는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이사 첫 날의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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