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금 D-30, 보금자리론 대출 실행 준비
부동산 매매계약서 작성 후 나는 한 달 하고도 일주일, 5주 정도 뒤에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매매계약서를 쓰던 부동산 소장님은 물었다.
"잔금일이 빠듯하지 않아요? 대출하는데 최소 몇 달은 걸리는 걸로 아는데."
은행 대출담당 과장님도 처음 대출창구를 방문한 나를 보며 답답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이렇게 촉박하게 은행에 오시면 어떻게 해요. 대출 실행에 시간이 최소 한 달은 걸리는데요. 다른 건의 대출 실행까지 지금 밀려있어서 더 걸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인터넷으로도, 스마트폰 어플로도 편리하게 신청 가능한 아낌-e 보금자리론은 최대 한 달 뒤까지 대출 실행일이 선택 가능했다. 대문자 J형인 성격인 나이기에 최대한 여유를 두고 신청하고 싶었지만, 허용되는 여유는 최장 한 달이었다.
부동산 계약서를 쓰기 전부터 보금자리론 대출 신청을 실험해 보았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연습 삼아 신청해 본 대출 건은 어플에서 바로 취소하면 그만이었다.)
부동산 소장님도, 심지어는 은행 과장님도 잘 몰랐다. '저 보금자리론인데요.'라고 말하면 다들 척하고 알아들을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는 한국주택금융공사 상담원도 잘 모르는 것이 있었다.
보금자리론 승인을 위해 매매하고자 하는 아파트를 기입하고 대출 신청을 완료했던 때였다. 아파트의 감정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감정평가사의 문자가 왔다. 시세가 있는 아파트이기 때문에 감정평가를 할 필요가 없는 데다, 나는 이미 시세 기준으로 예상 대출 금액을 생각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당황스러웠다. 당황한 나는 연락이 온 문자로 답장을 보냈다.
[KB시세가 있는 아파트인데 왜 감정평가를 진행하시는 걸까요?]
[한국주택금융공사로부터 감정평가를 진행하라는 연락을 받아 감정을 한다는 문자를 드린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공사에 문의해 보세요.]
감정평가사도 영문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고객센터에 전화에 상담원과 통화했다. 상담원은 본인의 답변 매뉴얼에 맞춰 앵무새처럼 똑같은 답변만 반복했다. 감정평가를 진행 후 감정평가액에서 대출이 얼마큼 나올 것이고 어쩌고 저쩌고.......
"아니. 감정평가를 진행 안 해도 되는 아파트에요."
죄 없는 상담원을 붙들고 더 설명해 봤자 쇠 귀에 경 읽기임을 깨달은 나는 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에 질의글을 올렸다. 바로 다음날 부서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출을 신청할 때 온라인 시스템에서 어떤 주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정보가 다르게 불러와지는데요. 선택하신 주소로는 KB시세가 불러와지지 않은 것 같아 저희가 시스템을 수정했습니다. KB시세로 대출 승인될 겁니다."
대출 승인이 되었다는 주택금융공사의 문자를 받았다. 사전에 대출 실행을 할 은행으로 선택한 OO은행에서도 알림톡과 전화 연락이 왔다. 기간 내 OO은행 지점을 방문해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라는 연락이었다.
'왜 이제야 왔니'라는 표정과 말투로 나를 대하는 은행 과장님에게 나는 이를 차분히 설명해야 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와 OO은행에서 받은 알림톡을 보여드리고, 준비해 온 서류들을 전부 제출하자 과장님은 전보다 차분해진 말투로 '일단 알겠으니 검토 후 전화로 다시 연락드리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더 많은 말을 할 필요도, 더 많은 말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나 때문이 아니라 옆 창구를 방문한 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언성은 높았다. 대출이 안 되는 게 어디 있냐며 대출을 빨리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아니. 대출 실행 될 거라면서요. 지금 와서 안 된다고 하면 잔금일이 코앞인데 어떻게 하라고요. 내 인생 책임질 거예요? 지난번에는 대출된다고 했잖아요. 아가씨! 그때 여기 젊은 남자 직원이랑 이야기했는데 대출된다고 이야기 들었다니까요. 그 직원 불러오던가요. 대출이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서류를 가져오면 검토 후 아마 대출이 될 거다'라는 은행 직원의 답변만 믿고 뒤늦게 은행을 찾아온 할머니 때문에 직원은 난감한 모양이었다. 잔금일이 코앞이라 그때까지 대출 실행은 불가능했고, 너무 늦게 은행에 오셨다는 직원의 설명에도 할머니는 계속 대출을 해달라고 성화였다.
나와 상담을 하던 과장님까지 옆 창구 직원을 도와 할머니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미리 서류를 가지고 와서 대출 신청서를 쓰셨어야죠. 지금 와서 당장 잔금일이라고 대출을 해달라고 하시면 어떻게 해요. 안 돼요."
안 되는 것을 되게 해달라고 직원들을 계속 괴롭히는 할머니가 답답했지만, 생각해 보니 어르신 혼자 대출을 준비하면 충분히 있어날 수 있는 일 같기도 해서 할머니가 안쓰러웠다.
대출 승인과 실행 절차를 통해 나는
'본인의 대출은 본인이 가장 잘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 나는 서류 검토가 완료되었다는 은행의 연락을 받고 지점을 방문해 대출 계약서 작성을 완료했다. 다시 만난 은행 과장님은 전보다 친절했고 편안한 얼굴이었다. 나는 과장님께 진심어린 감사 인사를 전하고 대출 신청을 끝마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