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밀당의 세계
나는 대출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원하는 아파트와 평수를 고르고 고른 평수의 매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매물을 계약했다. 깔끔한 상태에,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고, 중층에, 복도 끝에서 두 번째 집이었고, 엘리베이터나 이웃들 동선에 가깝지도 않고, 놀이터와 산이 보이는 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면 본 매물 중에서 가장 비싸게 계약한 것일까? 아니었다.
호가는 호가일뿐일까
처음에는 다른 매물보다 호가가 2천 넘게 비쌌다. 그래서 임장 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혼자 네이버 부동산 사이트에서 째려보고만 있던 매물이었다.
어느 날 그 매물인 것으로 추정되는 매물의 호가가 천만원이 낮아진 걸 발견했다. 매매가 급하지 않고 가격 협상에 대한 의지가 없는 집주인을 만났던 때에 발견한 반가운 매물이었다.
‘이 집은 팔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나는 바로 부동산에 연락해 그 매물을 보러 갔다.
자세히 볼 필요도 없었다. 처음 들어서자마자 더 볼 필요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충 보아도 집주인이 깔끔하게 집을 썼다는 게 느껴졌다.
마음을 이미 정했기에 돌아가려는 나에게, 집주인으로 추정되는 젊은 아기 엄마는 매물의 장점을 설명해 주며 보고 싶은 만큼 자세히 더 보고 가라고 말했다. 신생아가 누워서 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전에 보았던 집과 크게 대조되었다. 어르신 냄새가 많이 나고 골동품 같은 가구들만 가득했던 집. 매매하는 게 급하지 않아 호가 이하로는 조정할 생각이 없다던 집. 같은 평형에 같은 구조지만 많이 달랐던 집이 떠올랐다.
부동산 강의를 하는 선생님이 말했었다. 매물을 볼 때 공인중개사에게 이 질문을 해보라고.
"이 집 왜 파시는 거래요?"
나는 면전에서 직접 그 질문을 할 만큼의 내공은 없었다. 매물을 보고 각각의 특징을 기억에 넣기에 바빴다. 하지만 대면했을 때 못한 정보 입수는 비대면으로 하면 된다. 나는 문자를 보냈다. 매물의 가격만 제발 조정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강의에서 배웠던, 공인중개사와 대화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이 매물 소장님 단독 매물이실까요?]
[이 조건만 맞으면 바로 계약금 입금 가능합니다.]
[최대로 할 수 있는 금액이 여기까지에요. 금액만 맞으면 당장 계약하고 싶지만, 맞지 않으면 정말 어쩔 수 없이 다른 매물을 봐야 할 것 같아요.]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정사정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초짜에게 쉽게 넘어갈 소장님이 아니었다.
"이미 호가를 한 번 낮춘 매물이고 집주인이 절대 그 이하의 가격으로는 계약할 수 없다고 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꼭 이야기해 주세요. 가격만 맞춰주시면 계약금 바로 드리고 잔금일도 최대로 당길 수 있어요. 이사 날짜도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소장님과 지속적으로 문자를 하던 나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신혼부부가 청약에 당첨돼서 매물을 내놓은 것이라는 힌트를 우연히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청약에 당첨이 되었다면, 지금 저와 계약하고 최대한 빨리 이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소장님은 나의 말에 아차 싶었는지, '청약이 된 것은 맞지만 입주 기한은 넉넉해서 집주인도 급하지 않다'라고 말을 살짝 바꾸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장님은 집주인을 설득하는 것에 열심이었다.
나의 문자 답장이 늦어지자, 소장님은 내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며 이 정도 조건으로 맞추면 계약이 가능할지를 물어왔다. 집을 보여줬던 아내 쪽은 가격 협상에 찬성했지만, 집주인인 남편이 가격 협상을 절대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소장님이 최대한 설득하는 중이고 이 가격은 어떤지 빨리 답장을 주면 다시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이런 과정들이 서로의 약점을 숨기며 하는 밀당 같았다. 지난했던 비대면 줄다리기가 반나절 오고 갔고 결국 매매가를 조정하는 걸로 합의했다.
계약서를 쓰던 날 집주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부동산에 왔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무거운 분위기 속에 부동산 소장님은 열심히 양 쪽과 대화하며 계약서의 사인을 받았다. 단독 매물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애쓴 소장님의 수고로움도 끝났다.
결국 웃은 사람은 부동산 소장님이었을까? 집주인이었을까? 아니면 나였을까? 소장님과 집주인이었을까? 누가 가장 성공한 밀당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부동산 어플에 올라온 최근 실거래가들을 보며 적어도 거기서 깎았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호가는 호가일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교훈을 얻었다.
부동산 매매에서는 실거래가와 KB시세(대출받을 때 대출액 산정의 기준이 되는 가격)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대부분의 실거래가는 KB시세보다 높게 형성되기 때문에 매매가를 더 낮추고 싶었다. KB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산다고 대출 한도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호가를 낮춰 계약한 덕분에 취득세와 같은 취득부대비용도 아꼈다. 하지만 지출은 끝이 아니었다. 이사 및 인테리어(가구 구입), 등기 비용, 부동산 공인중개사 수수료 등이 필요했다.
그래도 매매가를 깎았기 때문에 매매 후에 필요한 추가 비용 지출을 감당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나도 좋은 일로 이사를 나갈 일이 생기고, 매매가를 깎아줄 수 있는 집주인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미래를 상상해 보며 본격적인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