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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Dec 23. 2020

책-철학이 필요한 순간

흔들리는 서른 중반의 나에게 필요한 단단한 토대


우리 삶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제가 이 강의를 통해 다루려는 ‘태도 또는 관점’입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불확실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 있을 만한 단단한 토대를 제공하지요. 그런데 오늘날 이런 생각은 안타깝게도 상당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바로 ‘도구화’라 불리는 사회 흐름 아래서 말이지요. 도구화란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들이 다른 것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처럼 취급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예컨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거나 우정을 나눌 때에도 그 관계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여부를 잘 따져야 ‘현명한’ 처신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처럼 우리 사회는 갈수록 많은 일을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고,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줄 10가지 생각

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 선이다(아리스토텔레스)

존엄성은 가격으로 따질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다(칸트)

인간은 약속하는 동물이다(니체)

자기란 관계 그 자체와 관계하는 관계다(키르케고르)

진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진실할 수 있다(아렌트)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그의 삶 무언가를 손에 쥐는 일이다(로이스트루프)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머독)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데리다)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카뮈)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몽테뉴)


“OO이는 욜로족이야?”

통장 잔고를 오픈한 나에게, 주식이나 부동산은 남의 이야기인줄 아는 나에게 그는 물었다.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비행기를 처음 타본 게 스물일곱살이었던 내가 욜로족이냐는 질문을 받다니, 내 마음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졸업 후에도 장기 인턴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했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하는 데 성공한 나였지만,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집을 마련한 그에게는 많이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이었다.

‘벼락거지’라는 말이 생겼던데 그 단어가 나를 빗댄 듯 했다.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나는 가진 게 없지? 라는 의문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덧 삼십대 중반을 달려가는 나이에 오랜 시간 믿어온 인생의 가치에 크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을 읽으면서 그를 떠올린 건 미련이 아닌 필연과도 같았다. 나에게 의미 있는 삶의 가치가 흔들릴 때 만나면 좋은 철학자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도구화’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상처받고 지쳤을 때 칸트‘존엄성은 가격으로 따질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다’며 나라는 그 자체의 존재를 인정해준다. 최선을 다해 헌신했지만 부서져버린 관계의 덧없음에 환멸을 느낄 때 키르케코르 ‘자기란 관계 그 자체와 관계하는 관계다’라고 조언해준다. 그리고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마음에는 데리다의 말을 새기게 된다.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 용서할 수 있는 것들을 용서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고 용서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해야 한다.......


아마 우리는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머독이 말하는 사랑이 그것이다. 자신외의 다른 무언가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 타오른 감정은 사랑이 아니며, 다른 무언가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고 도구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눈이 펑펑 오는 날이다. 집안에서 호빵을 쪄서 먹으며 이불 속에서 VOD를 봤다. 지인들에게 카카오톡을 보내 눈에 대한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산책을 나가 거리의 눈사람을 구경하고 카페에서 다이어리를 교환해 왔다. 목적 없이 보낸 영양가 없는 하루였지만 참 편안했다.

목적이 있는 대화로 기억되던 그는 없었다. 결혼을 하면 식장은 어디로 잡아야 하고, 아이들 육아에 부모님 도움은 어떻게 받아야 하고, 생활비는 얼마씩 모으고, 출퇴근은 어떻게 해야 하고. 쓸모 있는 계획과 현명했던 약속들은 사실 그가 사랑하는 조건의 나열이었다.

하지만 나는 ‘쓸모없기 때문에 쓸모가 있다’칸트의 말에 공감한다. 쓸모가 없어도 서로를 찾을 수 있는 관계로 세월을 쌓고 싶다. 겨울날 눈을 바라보며 보내는 하루처럼 그냥 곁에 있으면 좋겠다. 눈이 녹는 동안 혼자만의 사랑에 대한 기억은 어느덧 다 녹았고 나는 천천히 넘기던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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