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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May 06. 2024

독서모임 5년 차의 좋은 (유료) 독서 모임 고르는 법

모임에 30만 원을 태우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주변인들에게 말하면 이해하지 못할 세상이 있다. 독서모임에 30만 원 가까운 돈을 태우는 사람들의 세상.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정말 가성비 떨어지는 활동이다.

좋아하는 일이라 꾸준히 활동하면서도 계속 가성비를 고민하게 되는 활동이다. 그렇게 5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시행착오 끝에 생각하게 된 <좋은 독서모임 고르는 법>은 이렇다.


1. 모임의 장, 파트너

파트너의 역량이 모임의 질에 반 이상은 영향을 주는데도 독서모임 업체에서는 파트너에 대한 상세 이력이나 후기들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사실 자발적으로 지원해서 활동하는 파트너들이 냉정한 평가를 받거나, 자신을 노출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을 내고 모임을 신청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파트너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의 정보들을 찾아보는 편이다.


1) 신중한 책 선정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 누가 봐도 유행에 편승한 책만 선정한 모임은 피한다.  오랜 시간 검증된 책을 읽는 모임일수록 모임의 질도 올라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정은 있다. <위대한 개츠비>를 고른 파트너가 그 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파트너에게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술잔을 들고 있는 사진 밈을 보고, 책을 읽고 화려한 파티를 하자는 목적에서 책을 골랐다’는 아주 솔직하고 순수한 답을 들었다.


이런 함정도 있었지만, 모임의 책 선정은 파트너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된다. 그래서 책 선정이 거의 되지 않은 모임도 피하는 편이다. 민주적으로 모임원들의 투표에 의해서 책을 선정한다는 좋은 의도를 갖고 있지만 경험상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갔다. 엉뚱한 책을 읽어도 보고, 그 책을 비판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읽지 않은 매우 좋은 책들이 많고 우리의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하는 편이다.


2) 시간을 쓸 결심

프리랜서이면서 모임 운영에 진심이신 파트너를 보고 감명받은 적이 있다. 시간이 돈인 사람이지만 모임에 진심이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쓰고 있었다.


토론 전날 발제를 맡은 사람과 만나 발제 회의를 해서 최종 발제문을 완성하는 분이었다.


반면, 자신의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모임원들의 토론을 사전 허락 없이 녹음한 파트너도 있었다. 경제적 자유가 꿈이라며 모임을 여러 개씩 동시다발적으로 운영하는 파트너도 있었다. 자신의 유튜브, 자신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 몸이 여러 개인 것처럼 사는 파트너의 모임들은 유야무야 되는 경우가 많았다.


2. 좋은 모임

1) 최근 후기가 있음

오래된 후기는 모임의 이름만 동일하전혀 다른 사람들이 활동했을 때의 상황을 반영하므로 무시해도 좋다. 모임 후기를 남겨본 적 없는 나는, 양질의 모임을 경험하고 난 후 처음으로 후기라는 걸 썼다. 물론 모임의 성향이 나와 ‘달라’ 계속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절대 ‘틀리지’ 않은 선택이었다.


2) 사공이 편중되지 않음

성별이 한쪽으로 심하게 편중되지 않은 것이 좋다. 남미새, 여미새 걱정이 없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성별이 편중된 모임은 모임 자체가 없어지다시피 될 가능성이 높았다……. 성별이 섞여 있어야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미지 관리도 하고 모임도 평화롭게 유지되는 것 같다.


3) 뜨내기가 없음

독서모임을 꾸준히 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좋다. 신규로 참여하면 텃세가 있다는 소문도 들었지만, 오히려 텃세가 있다는 말을 들을까 봐 이를 의식해서 신규에게 더 잘해주기도 한다. 꾸준한 사람들이 모인 곳은 토론의 열의 자체가 다르다.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감을 받을 수 있다.


뜨내기들이 주로 참여하는 모임을 가면, 파트너가 말을 시켜야 발언을 하는 분위기로 토론이 흘러간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지각, 결석, 탈퇴도 잦아 모임 분위기도 흐려진다. ’책을 읽는 습관이 없어서 이를 습관으로 만들고자 돈을 내고 모임에 왔다‘는 의도는 멋지지만 그런 분들이 대다수인 모임은 결국 독후감 숙제 내기 급급한 분위기로 끝난다.


물론 본업이 진짜 바빠서 책을 읽기 벅찰 수는 있다. 책을 꼭 다 읽지 않아도 좋은 인사이트를 공유해 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이 많아지면 전체 모임 분위기가 허술해진다.


모임을 탈퇴하고 카톡방을 나가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나간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탈퇴 러시를 해서, 요즘은 ’조용히 나가기‘ 기능을 사용해 달라고 부탁하는 파트너도 있다. (오죽했으면)


3. 기타


1) 무용한 뒤풀이

뒤풀이는 꼭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뒤풀이에 참여하지 않으면 왠지 모임에서 소외될 것 같은 느낌에 다음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억지로 뒤풀이에 참여했다가 낭패를 본 일이 있었다. 뒤풀이에서 사람들과 친해졌고, 모임에서 소외되지 않는다고 딱히 좋은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때는 친해진 것 같고 더는 없을 소울메이트를 만난 것 같아도 모임이 끝나면 거의 만날 일이 없다.


진짜 좋은 모임은 파트너님이 뒤풀이 시간을 줄이고 모임 시간을 2배로 늘렸다. 밥시간을 포기하고 배고픔을 참고 쏟아냈던 많은 이야기들과 들었던 이야기들이 나에게 영향을 줬다. 그런 진짜 모임 후에 짧고 굵게, 한두 시간 정도 함께 배를 채우는 뒤풀이가 더 좋았다. 심지어 파트너는 각자 먹은 맥주의 병 단위로 모임비를 계산하는 어마어마 세심함을 발휘했다.


비싼 독서모임비가 아까운 적은 없었다. 뒤풀이 비용이 아까웠다. 술고래들의 취향에 따라 술을 먹고, 술고래들의 먹성을 엔빵해서 부담한 돈. 내가 원하는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을 사 먹을 수 있는 돈과 차이가 없었다. 이왕 내 간을 적시는 술은 맛있고 좋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신념(?)이기 때문에 단체모임에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곳들과 마셔야 하는 것들에 지출되는 돈은 꽤 가성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주객이 전도되는 모임도 많았다. 토론은 대충 생략하고 기승전 술…. 술을 먹기 위해 모이는 모임은 잠깐은 즐거울지 모르나 돌이켜보면 아깝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이기에 종종 망각한다. 엔빵술고래들의 술값 보태주러 부지런히 갔던 셈.


2) 여미새, 남미새

모임을 나가면서 처음 그 단어를 알게 되었다. 우습게도 나에게 그 단어를 가르쳐준 사람이 여미새, 남미새 기질이 있었기도 하고. 그들이 모임 후 밤새 술을 먹고 귀가한 흔적을 카톡방에서 보고 있으면 뒤풀이에 잘 가지 않는 내가 이상한가, 착각하게 됐다.


그들에게는 여왕벌이 있다. 남자와 술자리 성향이 잘 맞는, 남자가 있을 때는 차를 회사에 두고서라도 술을 먹지만 여자와 있는 자리에서는 술을 먹지 않고 집에 가는 여왕벌이 있었다.


모이는 날짜를 투표로 올리면 여미새, 남미새들은 가장 나중에 투표한다. 이성이 있어야 모임에 필참하고 이성이 없으면 참석을 하지 않거나 참석을 취소한다. 모이기로 한 날짜가 정해진 상태에서 나는 책을 거의 다 읽고 모임을 준비했지만, 여왕벌이 모임 날짜를 바꾸자고 해서 모임을 참여할 수 없었던 적이 있다. 독서모임인지 술모임인지 모임의 본질이 헷갈리는 순간들이 많았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 기준에서는 알코올중독 전 단계……. 술이 없는 모임에는 참여하지 않고, 술을 마시는 시간에 맞춰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고 모임의 본질에 충실하면 유료 독서 모임은 아깝지 않은 선택이라는 결론이다. 좋은 사람술자리에 있을 가능성매우 낮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충실하며 주로 집과 회사만 다닌다. 집 밖을 나오더라도 배울 것에만 관심을 쏟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무료 환불이 가능한 넉넉한 기간에 모임 하나를 신청해 놓은 뒤 다른 모임들의 지난 발제문과 지난 독후감을 열람하면 알게 된다. 30만 원의 가치에 걸맞지 않은 모임도 꽤 많고, 대단한 모임들도 꽤 많다. 그렇게 좋은 모임을 사전조사하는 수고로움은 필요하다. 나의 시간과 돈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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