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람의 이해일지도 모르지만 몰입은 된다

책, 이혁진 - <사랑의 이해>

by 낮잠

드라마를 먼저 보고 원작 소설을 읽었다. 드라마는 중간에 다소 늘어지는 부분도 있는데, 소설은 작가님의 필력 덕분인지 늘어지지 않고 잘 읽힌다.

드라마와는 다르게 소설에서 수영이 종현을 사랑했다는 점도 현실적이고 마음에 들었다.


다른 짝이 있어도, 돌고 돌고 돌아도 둘만이 운명이라는 듯, 서로만이 정답이라는 듯, 서로를 끝없이 원하는 드라마틱한 로맨스가 조금은 얄미웠기 때문이리라.

다 인연이 있다고,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는 위로가 가장 듣기 싫은 나이. <사랑의 이해>라는 제목이 <사랑의 이해관계>로 더 잘 읽히는 나이.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사랑이라는 순간의 열정이 상대에 대한 이해에 닿기 위해 애쓰게 한다. 그러다 더는 애쓰지 않는 순간이 온다. 이해는 이해관계가 된다.

그렇게 꺼져버릴 불꽃임을 알면서 어떻게 결혼들을 하는 걸까?


작년 겨울 혼자 살 집을 사면서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걸 하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혼자서 집을 사면 좋은 매물을 사기 힘들었다.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라도 연합군은 있어야 했다. 싱글은 손해였다.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던 결혼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애초에 '사랑'이라는 것도 착각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차라리 이해관계만 고려해 결혼한다면 꺼져버린 사랑에 좌절할 일도 없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결론은 다시 평범한 진리로 돌아와 버린다.

해관계로 맺어지는 법적 혼인관계를 끝까지 유지하게 하는 것은 결국 애정이라는 걸 결코 무시할수가 없다. 그래서 혼란스러운 요즘이다.


수영과 상수, 수영과 종현, 상수와 미경도 그 혼돈 속에 있다. 다들 애썼지만 실패했고 그래서 안쓰럽고 마음이 간다. 그들에게 이입하지 않으면 소설 속 커플들은 미래가 없는 동거커플이고, 부유한 여자와 그녀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남자 커플이다. 각자 만나는 상대가 있으면서도 서로를 유혹하고 쫒아가는 바람 커플은 제일 가관이다. 바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혼돈이 이해가 된다.


최선이자 최상의 선택을 하지 않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상수가 미경에 대해 느낀 감정처럼 말이다. '미경의 뜻을 따르는 건 늘 최선이자, 최상의 선택'이었지만, '가끔씩 그러기가 싫은'. '가끔씩 눌리고 오그라드는 기분'.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나의 감정이 인도하는 곳에 길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도 결혼도 정답이 없는데 마치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것처럼, '최선'과 '최상'을 찾아 헤메는 우리의 혼돈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것을 가끔씩 싫어하고, 그것에 가끔씩 눌리고 오그라들어 하면서도.

keyword
이전 11화10년만에 다시 읽는 책 - 앨저넌에게 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