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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Jul 04. 2024

타인이라는 감옥(Feat. 인복 없는 팔자)

현직 언론인이 소개해준 무당을 만나러 갔다. 국힙원탑 민희진이 점을 보러 다녔던 무당이 바로 그 무당이라고 했다. 직장상사에게 민희진처럼 '맞다이로 들어와' 까진 못했지만 나름 영악한 복수전을 벌이고 있던 나에게 그곳은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엔 신당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용한 이미지의 젊은 여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당이 오히려 나에게 기가 빨렸을지도 모르겠다. 한 시간 반을 쉬지 않고 나는 랩을, 아니 하소연을 했기 때문이다.


-저는 왜 이렇게 인복이 없을까요.


-능력은 있지만 인복이 없는 팔자예요. 사람 부분은 포기하는 게 본인에게 좋아요.


그녀는 차분말했다.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확인사살을 당한 나는 타격감을 느꼈다. 울컥, 눈물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나는 말했다. 인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요. 차라리 능력 없고 인복을 가진 팔자였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말했다.


-인복이 있는 사람들은 본인의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둘 다 가진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또 다른 부분이 없고. 다 가질 순 없어요.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파이팅 하세요.

인복이 없어서 혼자 있겠다는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무인도에서 살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 다른 사람과 교류해야 본인이 성장할 수 있기도 하고.


파이팅. 무당이 파이팅 하라고 한다. 차라리 굿을 해야 마귀들이 내게서 떠나가고 살림살이 좀 나아질 거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답답했다.


같은 거 믿지 말라고, 그런 곳을 왜 가냐고 잔소리하던 엄마의 문자가 와 있다.


-그래서. 이사는 어디로 가야 된다고 하던? 그래. 무당 말대로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후부터 네가 좀 아프긴 했지.


# 나의 무인도

지난 3년, 몸도 마음도 아프긴 했다. 남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을 나이에 실연을 당했다. 회사에서는 민원인들에게 매일같이 모멸감을 느끼는 말을 들었다. 일은 내가 다 했는데 나에게 그 일만 주던 상사는 뒤통수를 쳤다. 결혼하자고 나를 조르던 놈도 뒤통수를 치는 세상인데 뭘 기대하겠는가. 스트레스로 자가면역질환이 왔고, 세계에는 코로나가 왔고, 나는 자가면역질환이 악화될까 봐 백신도 맞지 못한 채 3년을 회사와 집만 왕복했다. 그러다 마스크를 벗는 세상이 오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라고 나를 돌려보내는 날이 왔다.


하지만 나는 지난 3년의 무인도 생활이 어쩐지 그리워진다. 온전히 홀로 있었기에 사람에게서 받은 몸과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사람에게서 치유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복 있는 유형의 사람이겠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없는 집 안에서의 시간. 종일 시끄러운 뒷담화 TMI를 듣고 있지 않아도 되고, 술을 들이붓는 사람들 옆에서 아까운 내 간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고, 나의 배려가 당연한 줄 아는 친구들에게 지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항상 내가 그들이 사는 곳까지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모임에서 나를 소외시키기 위해 정해진 약속을 계속 바꾸는 사람들. 그들을 손절해야겠다고 결심할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그랬다. 사람들은 나에게서 늘 무언가를 가져갔다. 학교 사람들은 나에게 팀플 과제를 더 많이 작성해 달라고 했고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자신이 못하겠는 일을 대신 좀 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내가 지쳐서 못하겠다고 할 때까지 자꾸 달라고만 했다.


하지만 집에 있으면 나는 나를 위해 채울 수 있다. 아까운 술자리 비용이 들지 않으니, 그 돈으로 먹고 싶었던 것을 호화스럽고 가득하게 배달시켜 먹었다. 읽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보고 하고 싶은 것을 집에서 원 없이 다 했다.


# 타인이라는 감옥

-그럼 너도 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행동해.


-그럼 너도 똑같이 일 하지 마. 다 못한다고 하면 너도 못한다고 하라고.


마흔을 바라보는 또래 어른들이 건네주는 건 그저 이 정도 수준의 도긴개긴 조언뿐이다. 속이 터진 나는 화를 내며 대답한다.


-아니!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힘이 든다는 건데, 나보고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라고 하면 어쩌라는 거야?


나는 여전히 무인도를 그리워할 성싶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잠시 숨김 하고 그립던 무인도엘 다녀온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종종 '타인'이라는 감옥을 만들고 그들을 구금한다. 인스타그램 친구가 되면 그들의 소식을 감추고, 카카오톡 친구가 되면 그들의 이름을 숨김으로 바꾼다. 그들을 꼭꼭 눌러 담아 네모난 감옥에 가둔다. 그리고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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