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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과 생라면

첫 번째 월세방의 추억

by 낮잠

첫 번째 월세방의 추억

대학교부터 전세를 살던 친구들과 나는 사정이 달랐다. 네 번의 월세 유목민 생활은 이제 시작이었다. 변변한 월세집을 구할 보증금도 없는 나와 처음 인연이 된 방은 <여성전용 원룸텔>이었다.


첫 번째 방. 여성 전용이지만 밖에서 남자의 손이 들어올 수 있는 방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던 나는 보증금은 없지만 좋은 월세를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보증금 없이 좋은 월세?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파랑새와도 같았다. 나의 첫 원룸은 서울시 광진구의 <여성 전용 원룸텔>이었다.

저희 고시원은 "여성전용"으로 3개 지하철역 도보 10분 거리이며 밥+반찬(김치)+식빵(쨈)+라면 무한제공합니다! 모든 방에 창문이 있으며 1인 원룸으로 샤워실/침대/옷장/냉장고가 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 무료제공합니다. 안전과 치안을 위해 24시간 CCTV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4평의 공간, 4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처음 골라본 방이라 <여성전용>, <창문>, <샤워실>에 끌렸다. 그리고 그곳에 살기 시작한 나는 4평 남짓 공간에 모든 옵션들이 들어가는 기적을 발견했다.

그러나 <CCTV>는 방범에 크게 도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겨우 팔뚝만한 창문 앞에 빨랫대를 세우고 속옷빨래를 널었더니 핸드폰을 든 남자의 손이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와 속옷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고시원 월세를 내기 위해 커피전문점에서 새벽 마감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시원에 돌아와 방 안의 작은 TV를 켜면 TV에서는 정규방송 종료를 알리는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아침이 올 무렵에 매일 잠을 청해야 하는 우울함을 잊기 위해 애국가 소리라도 들어야 잠이 왔다. 옆방에서는 TV소리를 줄여달라는 내용이 적힌 포스트잇을 내 방문 앞에 붙였다. 나는 깜짝 놀라 TV소리를 아주 작게 줄이고 살았다.

공용 거실의 밥과 김치는 거의 없거나 먹기 힘든 상태일 때가 더 많았다. 무한 리필이라던 라면 선반 앞에는 하루 한 개 이상 라면을 가져가지 말라는 고시원 총무님의 안내문이 붙었다. 고시원 쓰레기통에서 생라면 부숴먹고 버린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절약을 위해 마련한 대책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생라면을 참지 못하고 먹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 공용거실에 설치된 인덕션은 물이 매우 천천히 끓는 인덕션이었다. 라면 하나를 끓일 때까지 낯선 고시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좁은 공간에 서 있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고시원 치고는 호화스러웠지만, 삭막함은 어쩔 수 없었던 나의 첫 방과는 작별해야 했다.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고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생의 고시가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별히 추억이라고도 지칭하거나 미화하고 싶지 않은
수고로운 삶이 내 첫 번째 방에 깃들어 있었다.


라면 하나를 끓일 때까지 다 기다리지 못하고 급하게 먹는 생라면의 짭짤한 맛.
나의 시작은 그런 짠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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