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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집은 가족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집

by 낮잠

어린 시절 나의 집

경기도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나는 어려워진 집안 사정 때문에 시골로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간 집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집이었고, 지어진 지 오래되어 옛날 구조였다. 겨울이면 연탄으로 장판에 불을 때었고, 대문 앞 현관에는 걸을 때마다 삐그덕 소리를 내는 마루가 있었다. 마루 왼편은 세면장, 마루 오른편은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겨울에는 세면장이 추워서 커다란 대야에 끓인 물을 조금씩 부어 목욕을 했다. 목욕을 할 때 추위보다 더 싫었던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목욕을 할 때마다 가족들에게 현관에 나오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을 자제하라고 부탁해야 했다. 현관 앞 철문을 잠그고 목욕을 하다가도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있으면 목욕을 중단해야 했다.

여름 재래식 화장실은 냄새가 나고 파리가 꼬였다. 용변을 보면서 기어 다니는 벌레를 발견할 때마다 놀랐다. 밤에는 구멍에 빠질까 봐 무서웠다. 어떤 손님은 용변이 가득한 그 구멍에 핸드폰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조심해서 써야 하는 공간들이 많은 집이었다.

그 집의 유일한 장점은 자가(!)라는 점뿐이었다. 다시 공사를 해서 집을 지으면 집의 층수를 올려 평수를 넓힐 수 있고, 신식 화장실과 샤워실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집을 개량하거나 새로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재해와 재건축

노후화된 집을 재건축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재해였다. 태풍으로 동네가 물에 잠겨 집이 침수되었기 때문이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우리 동네는 정부의 무이자 대출 지원 덕분에 새로운 주택들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보통의 노후된 집들처럼 재개발 계획으로 재건축이 된 것이 아니라, 집이 침수되어 부랴부랴 재건축을 하게 된 것이다. 건축에는 많은 돈이 들어갔지만 무이자에 장기 상환이 가능한 대출 덕분에 우리 집은 결국 다시 지어졌다.

새로 지은 집 2층에서 난생 처음으로 나는 내 방이라는 걸 갖게 되었다. 다른 가족들의 코 고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내 방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가구도 없이 텅 비어있는 내 방의 첫 모습을 보고 실망해 크게 울었던 중학교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개천에서 탈출하는 꿈

새 집은 좋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집의 위치였다. 내 방을 갖게 된 내겐 나만의 꿈이 생겨났다.

학교와 집 두 곳밖에 오갈 곳이 없는 무료한 시골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공공도서관, 공공 문화예술시설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사기업이 지은 영화관, 대형 마트, 쇼핑몰, 카페, 편의점 중 어느 것도 없는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서울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끝나지 않은 개천 생활

인서울의 기쁨도 잠시. 혈혈단신으로 온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같은 대학에 합격한 친구들과 교류했지만 나만 여전히 개천에 사는 느낌이었다. 친구들은 베스킨라빈스에 31가지 아이스크림이 있다고 신기해하는 나를 신기해하며 서울 유명한 곳을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친구들과 왁자지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집은 내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나의 인생이 채워진 시절이었다. 내가 사는 곳도, 자연재해도, 가난도 나의 선택은 아니었다. 앞으로의 선택이 중요했고 희망은 있었다. 그리고 나의 유목민 생활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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