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의 함정, 행복주택

바람같이 지나간 행복주택에서의 6년

by 낮잠

국가와의 6년 계약

월세방 집주인 할머니에게서 벗어나 운 좋게 나는 국가를 집주인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주택도시공사에서 임대하는 행복주택 사회초년생(청년) 계층 청약에 성공해 신축 아파트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증금을 최대로 증액하면 월세를 최소로 낮출 수 있어 반전세처럼 거주가 가능해 좋았다.


<경기도 OO마을 행복주택 프로필>

보증금 : 약 4천만원(최대보증금 전환 시)

월세 : 약 6.2만원(최대보증금 전환 시)

관리비 : 약 12만원

거주 형태 : 21형(주거전용 면적 21.75)

계약기간 : 2년마다(갱신 시 최대 6년)


행복주택의 최대 장점은 전세사기 염려가 없다는 것이었다. 최대 6년까지는 거주가 보장된다는 것이 장점이며, 반대로 퇴거를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이전처럼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문제로 싸울 집주인이 없다. 퇴거 전에 다음 세입자에게 집을 보여줄 필요도 없다. 이사 전에 만났던 집주인 할머니처럼 원하지 않는 간섭을 하거나 임의로 창문을 열고 닫거나 벨을 누르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국가가 집주인이기 때문이다.

단지에 상주하는 관리실 직원분들은 친절했고, 살다가 유지보수건이 발생하면 채팅상담 등의 방법으로 언제든 편리하게 LH에 보수 요청을 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해본 목돈 대출

보증금 대출은 청년전용 버팀목전세자금대출을 이용했다. 대출 금리가 낮아서 좋았는데, 그 이자마저도 일부는 지원을 받았다. 경기주택도시공사에서 보증금 대출 이자지원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액의 이자를 내면서 반전세를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저렴하게 거주를 해결했다는 당장의 행복함에 취해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있는 내게 친구들은 축하와 함께 덕담을 해줬다.


"와 정말 저렴하다. 좋겠다. 거기서 사는 동안 돈 모아서 나중에 이사 가면 되겠다."


철없는 그때의 나는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말인지 몰랐다. 친구들의 말을 한 귀로 흘러들은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응. 돈 모아서 금방 이사 가야지. 설마 내가 거기서 6년 동안 살겠어?
그전에 얼른 나와야지.

그러나 내가 정신 놓고 산 사이 6년은 바람같이 흘러갔다. 계약이 끝나갈 때까지도 나는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몰랐다. 6년이 이렇게 바람 같은 시간일 줄. 몰랐다. 내가 거기서 6년을 다 채울때까지 살 줄.

6년 간이나 고민을 유예하게 해 준 고마운 집에는 그만큼의 함정이 있었다.


계약 끝나면 이제 어디로 이사 갈 거야?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행복주택 사진. 책상과 싱크대, 미니 냉장고만 옵션으로 들어가 있었고 나머지 가구들은 직접 구입했다.
겨울에 배관이 얼어 저층 베란다로 물이 역류한 적이 있다. 혹한기에는 사용이 금지되었던 베란다 세탁기
침대를 놓을 공간도 없이 살았지만 그동안 살았던 원룸들에 비하면 궁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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