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치에 이 가격이라고?

욕망과 가격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

by 낮잠

욕망과 대출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

3억 이하의 아파트들을 임장한 후 나는 주거에 대한 나의 욕망을 인정하기로 했다. 디딤돌 대출을 포기하고 대출 한도를 높여 내가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의 아파트를 매매하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보금자리론을 활용하면 대출 금리는 높았지만 매매할 수 있는 아파트의 범위가 넓어졌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 예상대출조회를 통해 대출 금액에 따른 월별 상환액이 얼마인지 추정해 보았다. 이자 위주로 상환을 시작하는 40년 만기 체증식 상환을 선택해도 매달 은행에 납부해야 하는 금액은 월급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했다.


월급에서 어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지를 알고 매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그만한 돈을 지불할 가치가 과연 그 매물에 있는지를 검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시점부터는 공인중개사와 대화하기도 편해졌다. 원하는 금액과 조건을 공인중개사에게 이야기해놓은 다음 연락처를 남겨 놓으면 비슷한 매물이 나왔을 때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장부에만 달아놓는 급매란 나 같은 일반인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호가를 최대한 깎으면 언제든 매매가 가능한 사람으로 공인중개사를 대했다.

조율을 통해 계약이 가능한 사람. 부동산 임장 공부를 하러 온 것이 아닌 진짜 거래를 원하는 사람.

대화 몇 마디만 나눠보면 그런 사람이라는 게 공인중개사에게도 다 보였을 것이다.




그 위치에 그 가격인 이유를 배우는 과정

나는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한 역 주변 매물을 임장 하기로 했다. 메뚜기라는 생명체가 나를 맞이하는 지역을 다녀온 뒤였기 때문이다. 호가가 5천~7천 정도 올라갔지만 처음으로 1.5룸이 아닌 방 2개인 곳을 임장하게 되었다. 브랜드 아파트는 아니었고 적당한 연식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만의 장점도 있었다. 방의 구조도 나쁘지 않았고 군더더기가 없어 공간이 크게 빠진 느낌이었다. 집 내부를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만들어가며 살 수 있을 것 같은 매물이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아쉬웠다. 여러 단점들이 있었지만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가격 아닐까도 고민을 했다. 부동산 공인중개사도 가격대별 매물을 정리해서 종종 문자로 연락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접었다. 친구들도 부모님도 그정도 매물에 대한 마음을 접은 이유가 궁금했는지 그 이유를 내게 물었다. 모든 걸 만족할 수 있으면서 가격이 저렴할 수는 없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 한 가지를 대답했다.

역에서 집으로 걸어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육교 위에 노숙인들이 있어서.

번화한 역 앞에는 노숙인 쉼터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로 걸어가는 거리에도 소주병을 들고 앉아 공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복잡한 대로의 건널목은 횡단보도로 건너러면 많이 우회해야 했다. 육교로 건너는 것이 가장 용이했는데 그 육교에도 노숙인들이 앉아 있었다.

너무 번화한 곳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큰 소리를 내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단 한 번의 임장만으로 발견했다. 차가 없는 뚜벅이에 1인 가구인 나는 그런 부분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사통발달 인구이동의 중심인 지역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대답을 들은 주변인들은 다시 되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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