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이하 아파트를 찾아라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by 낮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초보에겐 예습이 필수인 부동산

네이버 부동산에서 매물을 확인하고 담당 공인중개사분께 연락드려 방문일정을 조율했다. 덥석 방문해서는 원하는 매물을 보기 어렵다는 조언을 전세사기 강의를 했던 공인중개사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강연을 들은 후 나는 그 공인중개사가 모임장으로 있는 모임을 신청했다. 유료 모임 플랫폼에서 20만원 정도를 주고 공인중개사가 진행하는 부동산 매매 관련 강의를 4번 정도 더 듣게 되었다. 강의에서 배운 부동산 매매 과정, 계약서 작성 시 주의사항, 임장 방법 등은 매우 유익했다.

가장 좋았던 건 가상의 부동산 매물을 가지고 협상하는 롤플레잉 시간이었다. 공인중개사 역할을 맡은 참여자들이 가상의 매물을 나누어 갖고, 나머지 참여자들이 각자의 가상 예산을 설정해 공인중개사와 매물 가격을 협상해 보는 활동이었다. 역할을 바꾸어서도 협상을 진행해 보았다. 이러한 활동은 부동산을 문 열고 들어가는 것조차 고민이었던 나에게 매우 유용한 연습이었다. 실전에서 가격 조정을 요청하는 상황이 어색하지 않도록 미리 연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임 참여비는 20만원이었지만 훗날 이를 바탕으로 매매가를 천만원 깎았다. 교육비보다 훨씬 큰 금액을 절약한 셈이다. 원하는 매물을 결정하는 선택에 영향을 준 무형의 효과까지 고려한다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나 회사에서 교육 프로그램으로 마련했으면 하는 현실의 부동산 강의였다.


부동산 관련 유튜브의 경우에는 단순 참고만 했다. 대부분 투자 위주의 관점으로 부동산을 설명하고 있어 실거주 부동산을 찾는 나에게 무조건 도움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연 신청자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힘든 처지를 이야기하고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하면 유튜버가 마치 교주라도 되는 듯 '당신도 부자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비싼 강의를 팔기 위한 빌드업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부동산 투자 강의는 첫 주택을 구입하려는 나에게 과하다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것은 부동산 상식 사전이나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가 그린 웹툰, 부동산 관련 소설이었다. 웹툰이나 소설의 경우 쉽게 읽히면서도 '실거주 부동산 한 채는 왜 사야 하는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잘 되어있어 좋았다.


부동산에 대한 예습을 하고 나니 매물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물은 어떠한 자료 조사보다 현장 방문, 임장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3억 이하 아파트 임장 후기

대출 금리가 낮아 가장 활용하고 싶었던 <디딤돌 대출>. 그 조건에 맞춰 찾은 3억 이하 아파트 매물은 소중했다. 임장을 하기 전까지는.


2024년 여름 나는 지은 지 40년이 되어가는 복도식 아파트의 개방형 복도에서 40도의 직사광선을 맞으며 타들어가고 있었다.

매물을 보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 했으나 하나 있던 엘리베이터가 타자마자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소리가 났던 곳이다. 그 울림과 소리에 겁에 질린 공인중개사는 엘리베이터가 주저 않을 것 같다며 4층이니 걸어가자고 말했다. 4층을 올라와서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 복도까지 걸은 나는 땀으로 온몸을 샤워하며 깨달았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아직 나는 젊고 혼자 사니까 몸테크를 하면 되지 않을까 고민했다. 단지 앞에는 재건축을 추진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단지 앞 버스정류장에는 고령의 어르신들만이 보였고 어르신은 내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OO 동네 가려면 버스 몇 번 타야 돼?”

평소에도 자주 듣는 질문이었지만 임장을 간 곳에서 그런 질문을 듣자 약간의 불안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매매라는 선택을 하기엔 불안한 아파트였지만 내 주머니 사정을 상기하며 같은 아파트의 다른 매물도 임장해 보았다. 부동산은 무조건 입지라고 하지 않는가. 준역세권 위치라는 장점이 있는 아파트였다. 낡은 집이야 리모델링해서 살면 되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올수리가 된 매물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올수리를 했어도 천정 배관이 터졌었는지 누수로 벽지가 얼룩져 있었다. 집주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윗집에서 조만간 수리해 주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녹물이 나오는 세면대 수도꼭지에는 녹물 필터가 달려 있었는데 투명한 필터가 매우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여러모로 물을 걱정해야 하는 매물 같았다.


혼란스러웠던 나는 부동산 대출 관련 원데이 클래스를 해준 부동산 선생님에게 이 아파트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넌지시 물었다. 아파트 이름을 듣자 미소를 머금고 있던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는 정말 아니에요. 어떤 이유로 이 아파트를 보게 되셨을까요? 금액 때문이라면, 지금 본인이 생각하는 예산 대비 너무 높은 레벨의 지역을 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용의 꼬리가 되려고 하지 않으시는 게 좋아요. 지역을 조금 낮추어 보는 건 어때요? 어쨌든 이 아파트는 정말 아니에요."


많은 부동산 거래 경험이 있는 부동산 투자자의 관점이었다. 그런 선생님의 관점이 나에게 정답은 아니었지만, 나는 조금 더 많이 '백문이 불여일견'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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