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소곡의 마을
당신은 두 번째 메인 디쉬를 입에 넣을 차례이다, 새로운 손님과 함께 자리를 만끽하자. 역시나 가장 뛰어난 곳, 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베토벤! 그의 곡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불멸의 명곡들을 청각 없이 쏟아낸 그의 곡들은 대개 거대한 것들로 우리를 파고든다. 애초에 베토벤이 그런 것을 좋아하였다, 피아노 소나타도 더 거대해 보이는 4악장 구조를 좋아하였다고 하니.
그럼에도 그가 작곡한 소곡들이 있다. 바가텔(Bagatelle)은 소곡의 일종으로, 베토벤은 그것들을 몇 모아 한 번에 출판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베토벤의 바가텔이라면 Op. 33, Op. 119, Op. 126이 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엘리제를 위하여(WoO. 59)'도 바가텔 중 하나이다.
그가 흡수해 이곳 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연주한 바가텔은 Op. 33으로, 위 세 작품번호 중 비교적 일찍 작곡되고 출판되었다 보니 가장 가볍고 경쾌한 곡으로 생각된다. 그곳에서 오는 매력이 참 예쁘랴.
난 베토벤의 소곡이라면 솔직히 상상이 잘 안 된다. 작업이 안 되면 머리를 박아대고 종이를 찢어대는 고집불통 독불장군 《수정修整의 신神》이 소곡을 작곡했다고? 이런 괴리적인 광경을 보았나.
라며 왈왈댈 수 있으나, 내 생각에 그는 소곡에서 오히려 유일하고 소소한 기쁨을 느꼈을 것 같다. 자연을 좋아하였다고 하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그러했을 것이다. 괜히 불멸의 음악가가 아니다.
소곡이지만, 속에 그만의 이야기가 있다. Op. 33, Op. 119, Op. 126은 각각 7곡, 11곡, 6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속의 진행이 흥미롭다― 특히 Op. 126은 역시 베토벤의 후기답게 소곡의 모습으로 그 답지 않은 세상을 보여준다. 참고로 바로 직전에 출판한 Op. 125가 심포니 9번이다.
Op. 33은 아까 말했듯 7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작을 알리는 No. 1 Andante grazioso quasi allegretto, 이만 들어 보아도 전체적인 느낌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음악들 있지 않나? 한 번 들으면 계속 맴돌아 흥얼거리는 음악 말이다. 내 생각엔 이 곡이 그런 곡인 것 같다. 간단하면서 선명하고 두터운 8분음표의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이 멜로디가 얼마나 매력인지.
7 Bagatelles Op. 33 No. 1 Andante grazioso quasi allegretto
No. 2 Scherzo. Allegro가 시작종을 이어받아 생기를 끌어올린다. Scherzo라 3박자 곡인데, 조금만 해봐도 알 수 있다, 박자를 정확히 하기 아주 어려운 곡이라는 것을 말이다. sf(스포르잔도) 위치가 나에겐 너무 폭력적이더라. 아무튼 아기자기한데 강인한 것이 마치 성숙한 아이를 보는 것 같다. 특히 Trio의 음악이 인상적이다, 마치 멀리 모험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지 않나!
7 Bagatelles Op. 33 No. 2 Scherzo. Allegro
No. 3 Allegretto가 명확한 sf 위치로 박자감을 제시해 준다, 6/8 박자의 리듬이 청자를 압도한다. 마치 여러 자연을 호기심 갖고 집중하여 관찰하는 듯한 음악이 참으로 환상적이다. 베토벤도 평소에 흥얼거리면서 다니지 않았을까. 머리를 박은 뒤.
7 Bagatelles Op. 33 No. 3 Allegretto
No. 4 Andante, 자연스레 우리를 반긴다. 개인적으로 Andante라는 지시어가 너무 잘 어울리는 곡인 것 같다. Andante는 느린 것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느린 것은 아닌, 마치 산책을 하는 것 같은 템포와 분위기를 지시한다. 평온한 산책으로 여유를 즐기지만 한편으론 우울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7 Bagatelles Op. 33 No. 4 Andante
No. 5 Allegro ma non troppo가 화려한 패시지로 기분을 사악 띄워준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16분음표... 동시에 minor로 무게를 과연 용감히 슥 잡는 것이 아주 조화롭다.
7 Bagatelles Op. 33 No. 5 Allegro ma non troppo
No. 6 Allegretto qusai andante... 이 7 Bagatelles Op. 33의 중심이라면 이 곡이지 않을까. 소곡에서 대곡의 향을 맡게끔 해준다, 역시 베토벤은 베토벤일까. 악보에 'Con una certa espressione parlante'라고 지시되어 있다. 대략 해석하면 '감정적으로 노래하듯이' 정도로 된다. 또한 특히 임윤찬은 이 대곡의 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듯하다. 바가텔이라는 껍데기로 내면을 살포시 가리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의지일까.
이 곡은 알프레드 브렌델과 임윤찬의 해석이 완전히 다르다. 그 세계를 한 번 들여다보랴.
7 Bagatelles Op. 33 No. 6 Allegretto qusai andante
No. 7 Preto가 슬쩍 들어온다. 그러곤 툭툭 치더니 다급히 도망가버린다. 빠릿빠릿한 게 소매치기인가? 싶은데 아니다. 아이다. 아이, 뭐야.
어? 정신 차리고 보니 버스를 놓쳤다. 그런데 저 놈이 타고 날 놀리네...? 가볍게 툭툭 털어버린다.
7 Bagatelles Op. 33 No. 7 Presto
슬그머니 고요가 맴돈다. 저어 멀리... 누가 백마를 타고 다가오는 듯하다. 위엄한 장군...
7 Bagatelles Op. 33은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소곡들의 마을은 자연으로 감싸져 있다. 베토벤이 사랑한. 딱 들어봐도 그렇지 않나?
직전의 연주자는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 오늘의 연주자는 역시 임윤찬. 자연을 사랑한 베토벤이 창조한 새로운 소곡의 마을을 또 우리에게 구경시켜 주실 것이다.
L. v. Beethoven 7 Bagatelles Op.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