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맥주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이러다 죽도 밥도 안 된다는 불안감이 들 때마다 주문처럼 외우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


비슷한 뉘앙스의 말들이 있다. ‘과정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해.’ 혹은 ‘누구나 반드시, 꼭 무엇이 될 필요는 없어.’ 같은 말들.

듣는 순간 위로를 받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말을 한 사람은 주로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룬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기 마련이다.

지난달 화순에 내려와서 쓴 글을 공모전에 냈다. 글을 완성했다는 것, 어딘가 내 글을 내보였다는 것만으로도 한껏 고무되어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다.

결과에 상관없이 쓰는 즐거움을 평생 느끼겠다며 매일 일정 시간 책상 앞에 앉으려 노력했으나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공모전의 결과 발표일을 몇 주 앞두고 또 다른 작가 발굴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아마도 연말에는 여기저기 공모전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그저 책상 앞에만 열심히 앉을 뿐, 스스로도 만족 못 하는 글만 써왔다는 자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생각은 바로, ‘이러다 나 아무것도 못되면 어떡하지.’ 였다.


글 쓰는 일로 돈을 벌고 작가라는 직함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바라던 바를 적을 때마다 느낀다. 얼마나 야무진 꿈인지.

글 써서 먹고사는 일이 요원하다면 공모전에 떡하니 당선을 해서 받은 상금으로 서점을 차리고 자영업자가 된 나의 모습을 꿈꾸기도 했다. 야무짐을 넘어선 허무맹랑한 꿈이다.

학창 시절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야망 한 번 가져 본 적 없는 나였는데 마흔의 나이에 이런 꿈을 꾸게 되다니.

아이를 낳고 집안에 너무 오래 머물렀던 걸까. 아니면 책만 읽어서 현실 감각을 잃었던 걸까. 사는 게 너무 공허해서 뭐라도 붙잡을 것, 그러니까 희망 같은 게 필요했던 건 아닐까.


이어폰을 꽂고 정신 나간 여자처럼 읍내를 걷다가 갑자기 이 모든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불안감을 떨치려 더욱 속도를 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두 시간 동안 열심히 헤엄을 치며 머릿속을 비워냈다.

세상에는 머리를 비우기에 안성맞춤인 행위가 아주 많겠지만 경험한 바로는 수영이 최고라 생각하며 뿌듯하게 수영장을 나섰다.


집에 돌아와 굶주린 배를 채우고 어제 방송한 짝짓기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배경음악 삼아 낮잠을 자고 나니 어느덧 책상 앞에 앉아야 할 시간이 되었다.

무엇도 보장해주지 않을뿐더러 스트레스까지 주는 글을 왜 쓰고 앉아 있나, 오늘은 글쓰기 접고 실컷 텔레비전이나 보며 맥주나 마셔볼 요량으로 캔 하나를 급히 냉동실에 넣었다.

맥주가 시원해지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앉으니 ‘오늘은 뭘 쓸까’하는 생각이 습관처럼 떠올랐다. 아까 느꼈던 불안감과 진도가 안 나가고 영 뒤끝이 시원찮은 요즘의 글쓰기를 소재 삼아 오늘도 지지부진 한 편의 글을 완성했다.


첫 문장을 쓰고 어느덧 한 시간이 흘렀다. 냉동실에서 맥주가 마시기 딱 좋은 온도로 시원해져 있을 시간이다.

글쓰기로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맥주는 글을 한 편 쓰고 마시는 편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훨씬 맛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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