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하고는 못 배기는 생활

by 김모씨

제과와 제빵 필기 시험에 합격하고 한동안 홀가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을 듣는 일이 고역이었다. 수업에는(특히 제빵 수업!) 발효나 완성된 반죽이 오븐에 들어가 있는 동안 기다리는 과정도 포함되어있는데 그 시간에 아무런 할 일이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던 것이다. 주로 수강생이나 강사님과 수다를 떨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그 시간은 견딜 수 없이 무료했다.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미뤄두었던 실기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그간 배운 빵과 제과류가 벌써 스무 개가 넘었다. 기억을 더듬으며 레시피를 암기하다 본격적인 준비(?)를 위해 실기 시험지를 출력해 제조 공정과 오븐 온도를 공부하며 발효와 굽기 시간을 보내니 시간도 잘 가는데다 덤으로 공정을 완벽히 암기하고 나면 찾아오는 희열도 느낄 수 있었다. 올해 마지막 실기시험인 12월 중순을 '디데이'로 결정하고 얼른 레시피를 암기하고 몇 개를 골라 혼자만의 모의 고사를 치룰 생각을 하니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이전보다 훨씬 힘이 실렸다.

스스로를 목표 지향적인 사람으로 여긴 적은 없지만 나에겐 아무리 작더라도 일상을 지탱하는 데는 모티브가 필요하다.

올 한해만 돌아봐도 한동안은 새로운 영법을 배우는 일에, 자격증을 따는 일 등등에 집착해온 기간이 짧지 않고 그러한 집착과 노력은 일상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제과제빵 자격증 따고 나면 미뤄두었던 수영 강습이나 또다른 무언가를 찾아 애를 쓰며 일상을 버티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다 일상이 무언가에 의지해, 혹은 끊임없이 이뤄야할 목표를 설정해놓고 버텨야하는 것이 되어버렸을까? 예전에는 책이나 영화, 영어 공부, 글쓰기와 같은 일을 루틴이자 이루어야 할 리스트로 채워넣으며 하루를 보냈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할 일'이 없어지면 하루를 보내는 일이 고역스럽고 어딘가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쑥쑥 자라나기 시작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드라마 시리즈를 끝까지 완주하는 일이 나에겐 쉽지 않다. 그건 드라마를 볼 짬을 낼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를 보는 것은 나의 기준에서 '목표'라고 볼 수 없는 일, 그저 즐기기위해서 하는 일이고, 나에겐 그런 것에 시간을 쓸 수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과제빵 수업을 처음 들을 때만해도 수강의 목적은 빵을 이해하고 만드는 과정을 즐기고, 더불어 앞으로의 진로를 위한 것이었다. 그 마음이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자격증 합격'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이루는 일이 어째 우선 순위가 된 것 같다.

왜 내 삶은 이런 식일까? 남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이루어야할 성취가 없으면 견딜 수 없이 공허하고 불안해하며 살고 있을까?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할 시간이다.(퇴근 10분 전) 오늘도 다행스럽게 2시간의 근무 시간동안 '독서와 글쓰기'라는 목적을 성취했다. 집에 가면 주문한 책이 문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책의 제목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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