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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Jan 07. 2024

술자리가 후회만 남기는 건 아니다


1.

 “저는 시니컬해요.” 

 술자리 분위기가 무르익던 중 느닷없이 나온 자기 고백이었다. 아내의 MBTI 테스트 결과를 두고 강한 의문을 품는 남편을 보며 함께했던 모두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직후의 일이다. 

 내 성향을 알림과 동시에 대화의 중심이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혹은 다른 이들이 내 말에 동의를 표할지 아니면 부정할지 궁금했던 걸 수도 있고.

 대부분의 일에 심드렁하게 반응하고 결국 ‘이 모든 건 헛되고 소용없는 일이다’라 결론 맺을 뿐이라고 말을 보탰다. 맞은 편에 앉은 이들은 스스로에 대한 나의 판단에 긍정도, 부정하지 않으며 가끔 우울해 보이던 나를 보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궁금한 적이 있었다며, ‘그런 성향’으로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원치 않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 그것이 나의 대답이었다. 

    

 술자리를 정리하고 돌아설 때였다. 어쩌면 나의 냉소적인 태도는 또 다른 방어기제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모든 일은 소용없다’라는 결론은 사실 이 모든 게 소용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걱정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글쓰기의 삶의 중심에 두기로 한 것부터 아이와 책을 함께 읽으려는 노력, 자립을 꿈꾸며 돈벌이에 매달리는 일, 가족과 떨어져 농촌의 작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기로 한 결정,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때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시험을 치르는 것까지. 내가 시간을 쏟아부으며 애를 쓰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아무런 의미도, 결과물도 만들어내지 못할까봐 나는 너무나도 두렵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은 누가 만든 기준에 따른 의미와 성과 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내가 찾은 ‘모든 일에 대한 의미와 성과’는 다름 아닌 돈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욕구였다.

 뚜렷한 수입이나 안정된 일자리와 같은 결과물 없이는 모든 노력이 다 소용없다는 전제 아래에선 내가 추구하고 살아가는 방식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것과 혼돈하지 말라고, 남이 원하는 삶을 사느라 자신의 삶을 허비하지 말라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나 역시 세상이 정한 기준에 내 삶을 맞춰야만 행복할 수 있고 성공한 삶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여겨질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일을 비관하며 그저 냉소적으로 대응하는 건 어쩌면 가장 쉽고도 비겁한 방법이다.


 시니컬한 태도로 살아가다 보면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고 말했지만, 사실 가장 상처받고 좌절하는 건 나 자신이다. 세상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는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취에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것, 매 순간 이게 정말 옳은 걸까 끊임없이 의심하는 과정에서 나보다 괴로워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술자리에서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한마디 말로부터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의 나는 술을 마신 후, 더욱이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하고 감정을 털어놓은 후엔 그러지 말 걸 그랬다 후회하는 일이 많았다.

 어쩌면 계획에 없던 이번 모임으로 인해 내가 나로 살기를 시작할 수 있진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을 품으며 지난 주말 늦은 밤까지 이어졌던 술자리를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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