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에 남기로 마음을 정하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문득문득 무표정한 채 넋을 놓고 있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순간이 잦았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우울감이나 공허함에 금새라도 잠식 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그건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바빠져야겠어', 마음 먹었다. 바빠지는 방법 중의 하나는 예전처럼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는 방법이나,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일, 집안을 뒤집어 정리하는 일, 동호회에 가입하는 일등이 있겠으나 어느것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자발성이 있거나, 조금의 여유가 허락되는 일과로는 마음이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 돈을 버는 일, 아르바이트를 찾기로 했다. 강제적인 출근 시간과 체력과 감정을 요하는 몇 시간의 노동과 그 후에 댓가로 주어지는 얼마의 돈, 그 돈을 벌고 있다는 뿌듯함이면 어느정도 공허와 우울을 덜어낼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그렇게 해서 잠자리에 누워 일자리 어플을 켜고 몇 시간이고 뒤지는 일을 반복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1. 첫 번째 면접
작년에 딴 바리스타 자격증을 앞세워 커피 전문점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가능한 아이의 하교 시간에는 집에 있고자 했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대를 찾는게 관건이었다.
그러다 오전 6시~오후 1시 근무하는 24시간 커피 전문점의 공고를 발견했다. 과연 그 시간에 일어나서 매일 출근하는 게 가능할지 확신이 들지 않은 채 무턱대고 지원 버튼을 눌렀다.
그 날 저녁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렇게 알바자리가 구해진 건가, 면접도 보기전에 김칫국을 마셨다. 뭐, 나정도면 '당연히' 뽑히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이때만 해도 가지고 있었다.
이력서 한 장 뽑는 성의도 없이 면접에 참석했다. 사장으로 추정되는 면접관은 나에게 질문을 하기 앞서 자신의 매장 규율(?)을 읊기 시작했다. 1분이라도 지각하면 그 주의 주휴 수당은 없으며, 수습 기간 중 해고 통보를 할 수 있다, 배달 사고가 나면 알바생이 사비로 처리한다, 퇴사 한 달 전 통보가 원칙이며 어길시 마지막 월급이 지급되지 않을 수 있다, 직원이 얼마 없어 대타 근무를 하는 경우가 있다 등등..
힘들게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내게 면접관은 "나이가 몇이냐?" 물었다. "마흔이요." 들릴락말락 입밖으로 세어나온 대답을 하는 심정이 복잡했다. 뭔가 당당할 수 없는, 민망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락을 주겠다던 사장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2. 두 번째 면접
가뜩이나 소심한 마음은 첫 번째 면접을 보고 더 작아지고 말았다. 구인 공고에 '대학 휴학생', '대학 재학생' 우대 조건을 보면 지레 겁을 먹기 시작했다.
며칠 후 노상 다니던 도서관 앞의 프렌차이즈 제과점에서 오전7시~13시까지 오픈 근무조의 구인글을 발견했다. 이번엔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도 업데이트하고, 짧은 경력과 자격 사항이 적힌 이력서를 파일에 넣고 면접에 참여했다.
며칠 째 면접이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만나야 할 면접자가 있다며 연락을 기다리라 말하는 사장에게서 왠지 채용될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자리에서 일어서 매장을 떠나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사장이 물었다. "그런데 보건증은 있으시죠?" 보건증이 없다는 나에게 사장은 오늘이라도 발급을 받으라며, 일반 병원에 가면 몇 만원이 나오니 꼭 보건소에 가라고, 3천원이고 일주일정도 소요된다며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마음먹은 김에 면접을 마치고 곧바로 보건소로 향해 간단한 몇 개의 검사를 받고 보건증 발급을 신청했다. 언제부터 근무를 시작하려나 이제나 저제나 연락을 기다렸다. 역시 연락은 없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해당 채용 공고는 사라지고 없어졌다.
3. 세 번째 면접
두 번의 거부를 받고, 그냥 몇 개월은 여유있게 쉬자 마음을 바꿔보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가지 못하고 다시 알바 어플을 수시로 열어보다 차로 10분 거리의 프렌차이즈 제과점(두 번째 면접을 본 바로 그 프렌차이즈!) 오픈조 구인글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자리가 온라인이나 문자 지원인 것과 달리 이번 일자리는 '전화 후 방문' 을 하는 일자리였다.
"구인글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입을 떼자마자 상대는 나이와 사는 곳, 최소한 6개월 근무 가능 여부를 물은 뒤 매장 방문을 요청했다. 가능한 시간을 묻자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는 요청해 그러마 대답을 했다. 귀찮기는 했으나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하고 수기로 적은 이력서를 들고서 매장을 방문했다.
언제부터 근무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언제든"이라 하니, 그럼 내일부터 나올 수 있느냐 물었다. 뭐, 아침부터 일어나서 수선을 피울 상상만으로 고단함이 밀려왔으나 역시 딱히 일정이 없어서 그러기로 했다.
그렇게 이틀의 근무를 마쳤고 내일이면 3일차가 된다. 내일 아침 먹을 거리를 미리 준비하고 출근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밤에 씻고, 갈아입을 옷까지 머리맡에 두고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빵이름은 왜이리 어려운지, 빵 포장지도 다양하고, 포스기를 다룰 일도 걱정이 앞선다. 일주일이 지나면, 한 달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거라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적어도 오전 시간 게으름을 피우며 씻지도 않고 공허해하다 눈물을 글썽이는 대신, 몸을 움직여 경제 활동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