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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하루만 Sep 21. 2018

옷을 개다가  

가족을 만나다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장석주



빨래가 바삭하게 말랐다. 가을을 닮았다. 물기없는 쿠키같은 옷을 걷었다. 

차갑고 딱딱한 거실 바닥에 엉덩이 대신 방석을 깔고 그 위를 꾹 눌러 앉았다. 

손을 뻗어 제일 먼저 잡힌 옷부터 개기 시작한다.     


체육시간 있을 때면 늘 입던 딸아이 옷을 개면서

이 옷을 입고 흙먼지 날리는 체육시간을 즐겼을지, 어떤 운동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얼마큼 뛰었을지, 땀은 얼마나 났을지... 가 궁금했다.      


준수의 내복을 개면서

이 옷 입고 자면서 무슨 꿈을 꾸었을지, 잠들기 전까지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닫았을지, 

밤새도록 준수와 가장 가까이 있었을 내복을 가만히 바라봤다.   

   

아이의 땀을 받아내고, 아이의 잠꼬대가 묻어있고, 아이의 웃음소리에 같이 살랑거렸을 옷들이다. 

새삼 고마웠다. 옷에게.      


그렇게 한참 아이 모습을 그리다가 

널브러져 있던 옷 틈 사이로 삐죽이 모습을 드러낸 양말이 보였다. 남편 양말이다. 

바로 개지 못했다. 


이 사람은 이 양말을 신고, 어디까지 얼마나 뛰고 걸었을까?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혹은 서서 상사의 말을 듣고, 담아내고, 받아치고, 걷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웃을 일은 있었나 싶다. 이 양말을 신고.     

      

아이들의 하루와 남편의 시간을 고스란히 받아내 든든함마저 느끼게 하는 묵묵함을 마저 갠다.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고마움과 빨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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