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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죽이기

아이에게 배우다

by 딱하루만


나는 식물킬러였다.


13년 전 집안에 식물이 있었으면 해서 집근처 꽃집에 무작정 갔다.
'잘 크고, 튼튼한 애는 누구인가요?'
묻고 또 물어, 고르고 또 골라서 물 잘 안줘도 특별히 신경 안 써도 잘 큰다는 식물을 들여와도 참 잘 죽었다. 역시 난 안 되나부다. 포기하고 산 지, 10년쯤 지났다. 이제는 식물을 안 죽인다. 아니, 다육식물에 꽃까지 핀다. 내가 꽃잎 한장 한장 만들어 피우게 한 건 아니지만 죽이진 않았다.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라, 배웠다. 우리 집 두 아이들이 식물 키우는 모습을 보고 배웠다.


아이들은 자연에 관심이 많고, 꽃이나 나무를 보면 집에서도 키우길 바래서, 장난감 사달라는 대신 식물원에 있는 화분을 고르는 아이들이다. 물론 장난감 앞에서 사죽을 못쓰는 여느 아이와 같은 면도 있다. 여튼 그렇게 하나 둘씩 집으로 오는 식물이 늘어나고, 식물을 대하는 아이들 모습을 자연스레 지켜보게 됐다.


커버이미지: 원이(가명)가 물주는 모습


아이들은 식물들을 거의 매일 들여다보고, 볼 때마다 정성을 들인다. 식물을 덮고 있는 흙 하나하나, 모래알 하나하나까지 살펴보는 치성이 있었다. 따뜻한 눈빛과 물을 가만가만 주고 있는 작은 손끝이 식물을 살리는 듯 했다. 새싹이 올라오면 장난감 가질 때보다 더 기뻐서 이것 좀 보라고 날 끌고 와 보여주고, 어쩌다 죽게 된 식물에겐 울먹이며 애틋한 인사도 하고, 가느다란 줄기에서 애써 피어난 봉숭아꽃을 보며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따라했다. 1~2분이라도 매일 식물을 지켜봤고, 물도 주고, 인사도 해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그 성의까지 흉내낼 수는 없었다. 성의를 가지고 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득 떠오르는 중용 23장이 생각난다. 아이들의 성의를, 화분을 보며 오늘도 연습해본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베어 나오고, 겉에 베어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 중에서-



아이가 그림 그리고 엄마는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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