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
아무나 표현 못하는 감정

by 딱하루만

안경을 맞추러 갔다. 시력이 나빠서 밤 운전이 힘들단 내 말에 남편은 갑자기 양세형의 개그라도 본 것처럼 큰 소리로 웃어댔다. 왜 웃는지 도대체 모르겠는 그 황당함을 느끼고 있는데 그와 동시에 두 아이는 '엄마 그래도 별일 없이 잘 다녀서 다행이야~' 라며 나를 안아줬다.


나에게 안긴 것처럼 보이는 안아줌. 아이 둘은 그동안 밤 운전 해온 나를 걱정해주며 격려까지 해줬다. 웃는 남편과 나를 격려해주는 두 아이. 그 사이에서 난, 전혀 다른 프로그램을 동시에 보는 듯했다. 남편에게 느낀 황당함과 아이 둘에게 느낀 포근함을 동시에 느끼는 기분은 정말 묘했다. 남편만 있었으면 한 마디하고 싸우기라도 했을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아이들이 주는 격려에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있었다.


두 아이는 나를 안아주던 손을 풀고 아직도 큰 소리로 혼자 웃고 있는 남편을 물끄러미 보다가 묻는다.


'아빤 왜 웃어?

그게 웃긴 일이야?

걱정되는 게 아니라?'


애들 아빤 대답을 못한다.


'어.. 음. 걱정은 되지만 웃음이 났어'

'아빤 이상해~ 걱정되는 일인데 웃어?'


남편은 결국 답을 못하고 인상은 굳어지고 시선은 매대에 펼쳐져 있는 선글라스에 고정시킨다. 선글라스 때문에 더 이상 답을 못한겠단 핑계라도 만들고 싶은 사람처럼.


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고, 웃지 않아야 할 때 웃고.

물론 감정에 정답이란 건 없지만, 맞으면 아픔을 느끼듯 보통은 어떤 자극에 대해 자연스러운 반응이 나온다.


우는 사람을 보면 같이 슬퍼지고 이유궁금해진다. 웃기진 않다. 화난 사람 보면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답답함을 느끼지 그걸 보고 재미있어 하진 않는다.


기분 나쁘면 입이 굳게 다물어지고. 짜증 날 때 짜증을 느끼고 기쁠 때 미소 짓고 즐거울 땐 웃는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 아이들을 보면서 배운 것 중 하나다. 감정이란 것도 참 단순하다는 것. 자판기에 있는 2% 음료 버튼을 누르면 2% 음료가 나오는 것처럼.


맨박스는 남성들이 감정의 가드를 한껏 올리게끔 만든다. 가드를 내려놓고 감정에 충실하는 것은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맨박스 중에서 - 토니 포터


남편은 이 간단한 시스템이 고장 난 것 같다. 40대 중반 한국사회에서 장손이라는 기대와 기업의 중간 리더로서 짊어진 짐에 눌려 살아가는 사람에게 감정적 마비라도 온 걸까? 감정을 언어화하고, 그걸 표현하는 구간에서 탈이 난 것 같다. 아이들 말에 답을 못한 남편의 시선조차 안쓰러워 보였다. 남편의 감정 자판기도 아이였을 땐 안 그랬을 텐데.


슬퍼도 슬픈 게 아냐 기뻐도 기쁜 게 아냐
울어도 우는 게 아냐 웃어도 웃는 게 아냐

- 미스티 블루의 '위로'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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