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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하루만 May 08. 2020

제대로 된 엄마가 되기로  겨우 마음먹었다

나를 엄마로 자라게 해 준 아기 미소

나를 엄마라고 부른 첫 아기, 그 아기 때문에 엄마가 되어야만 했다. 출산을 했다고 무조건 엄마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내 몸만 챙기고 나만 잘하면 되는 일상을 살다가 눈뜨면 남부터 챙겨야 되는 시작은 반갑지 않았다. 그게 내 아기라도.


산후조리원에 있던 아기는 집에 오니 두 배로 커졌다. 하룻밤 새 한 뼘씩 자라고 있는 잡초처럼 마구 컸다. 아기가 자라는 속도만큼 내 두려움도 빠르게 컸다.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왜 키워야 되는지도 몰랐다. 사는 데 정답이 없듯 육아도 길을 만들어가야 했다. 난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때쯤이었다.


임신기간 동안 맘 카페를 들락거리며 정보를 모았다. 산부인과는 어디로 다닐지, 그 산부인과에서 제일 괜찮은 의사는 누군지, 기저귀는 어떤 브랜드가 좋은지, 모유수유를 할지 분유를 먹일지 결정하고 아기침대는 사는 게 좋을지 대여가 좋을지 산후조리는 조리원이 좋은지 친정부모나 시부모에게 부탁해야 하는 건지. 수능보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엄마가 될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엄마가 되기 싫었다. 척추가 휘어지는 희생이 싫었다. 나 같이 이기적인 사람은 엄마가 되면 안 된다고 시간 좀 거꾸로 돌려달라며 기도하듯 원망했다. 신은 시간을 되돌려주지 않았고 아기는 내 시간을 앞으로 빠르게 돌려주었다.


하루 자고 나면 자꾸 컸고, 후회할 틈 없이 기저귀는 계속 갈았으며 우울이 오기 전에 을 찾았다.


딱 4시간이라도 좋으니 잠 한번 푹 잤으면,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화장실에 마음 편하게 앉아봤으면, 딱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나 좀 제발 혼자 있었으면… 이런 원초적인 바램들이 하루에도 37번씩 나를 흔들었다.


정신 차리고 일단은 아기부터 잘 키우라는 신의 배려였을까? 신이 준 것 같은 옥시토신 분비에 아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도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잘 맞지 않는 수유쿠션의 도움을 받아 젖을 물렸다.



젖 먹고 있는 아기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솜털 사이사이에 포동함이 가득한 아기 손은 가슴에 얹혀 있었고 눈을 아주 천천히 반쯤 감았다 뜨며 꿀떡꿀떡 모유를 잘도 먹고 있었다. 젖이 아기 목으로 넘어가는 소리와 내 심장박동 소리가 합주하는 듯했다. 아기의 선홍색 입술과 젖가슴이 마주한 틈은 접착제로 붙여놓은 듯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내 시선은 아기의 볼을 따라 맑은 동자로 흘러 들어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갑자기 아기가 웃는다. 얼굴 전부와 그 작은 온몸으로 웃는다. 아주 빛나게!!


젖을 삼키지도 않은 채 웃는다. 세면대에서 물이 흘러넘치듯 입 밖으로 젖이 흘러내리고, 유두에서 나오는 모유는 물총처럼 아기 얼굴에 내뿜어지고 있었다. 그 아기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빛이 나도록 웃는다. 아기의 모든 곳에서 빛살이 새어 나온다. 그저 내가 나여서 그런 나를 보고 웃는 이 작은 사람 덕분에 눈물이 났다. 그 눈물 속엔 엄마가 되기 싫다는 투정,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 나를 놓지 않겠다는 억지까지 녹아버린 듯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 ‘이 아기’의 엄마라는 역할, 대체할 수 없는 신의 영역 같은 임무.

이 직책은 무보수다. 출퇴근 시간도 계약기간도 승진도 뭣도 없는 일. 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업무를 맡고 있는 나는 이 아기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어쩌면 집착, 어쩌면 사랑, 어쩌면 행복일지 모르는 아기의 마음. 누군가는 자기 생존이 걸린 일이기에 당연히 주양육자에게 주는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생물학적 이론으로 설명하겠지.


그래 알지만, 알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온 지 두 달밖에 안된 사람이 주는 이 맑고 하얀 마음을 받은 이상, 난 엄마가 돼야겠다 마음먹는다. 지구에서 30년 넘게 사는 동안 사람들이 주었던 그 무엇에 감동받아  적은 거의 없다. 나 또한 그 누구에게 사랑다운 걸 준 적도 없고. 그런 내가 너의 엄마로 잘 크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었다.




이 아기를 낳으면서 뼈가 뜯기는 아픔을 잘 참았으니 한 계단 올라선 거겠지? 모유 수유하겠다고 각오하고 막상 해보니 유두가 찢어지고 피가 나는 걸 잘 견뎠으니 두 번째 계단도 오른 거겠지 싶다. 이제 조심스레 세 번째 계단으로 올라서야겠다. 어떤 게 펼쳐져 있을지 모르지만.


나 엄마는 처음이라 너무 외롭고, 잠 못 자서 졸리고, 결정할 것도 많아 혼란스럽지만 네가 주는 사랑을 먹고 나도 잘 커 볼게! 지켜봐 줘. 우리 서로 잘 자라 보자 아가야. 언젠가는 너를 만나 나도 많이 컸다고 말할 수 있도록.




이제 막 엄마를 시작하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제 글이 위로가 됐기를 바라며

그 시기에 저에게 위로가 됐던 음악도 함께 드립니다.




김윤아의 '길'

https://www.youtube.com/watch?v=J3VZ78hWh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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