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영 Mar 28. 2024

prologue: 노래가 얼굴을 가질 때


어떤 노래를 좋아하게 될 때 멜로디와 가사 중 무엇에 더 영향을 받는지?


노래를 들을 때 종종 이런 질문을 해본다. 단순히 재생 버튼을 눌러 현재 플레이리스트에 담기는 노래와 그중 보물 상자처럼 따로 빼둔 플레이리스트에 담기는 노래의 차이를 생각했다. 처음 내 귀를 사로잡는 건 분명 멜로디다. 멜로디가 마음에 들면 임시 거처인 현재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온다. 기분 따라 현재 플레이리스트를 다 밀어버리기 전까지는 거기 남아서 셔플의 간택을 받아 종종 다시 듣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 소절씩 마음을 쿵 밀고 가는 가사를 가진 노래가 있다. 그러면 듣다가 가사 창을 연다. 여기까지 오게 되는 노래는 높은 확률로 임시 거처를 떠나 내가 장르나 분위기에 따라 마음대로 나누어 둔 플레이리스트들 중 하나에 정착한다. 여기에 들어간 이상 시간이 지나 내 취향이 크게 변하기 전까지는 삭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최종 단계, 자꾸 곱씹게 되는 노래가 있다. 그 가사는 왜 그렇게 쓰였는지, 이 두 곡 중 무엇을 먼저 들어야 이야기 순서에 맞을지, 왜 마지막 가사가 그렇게 끝났는지, 중의적으로 읽히는데 어떤 것을 의도한 건지, 왜 사랑한다는 말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분명 가수는 한 명인데 화자 둘이 함께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온갖 질문을 달아가며 노래를 듣다 보면 문득 그 노래가 한 편의 이야기로 들린다. 누구나 자기 감정을 쏟아붓고, 자신과 동일하게 여길 수 있을 만큼 투명하던 화자가 어느 순간 질문의 답을 따라 구체적인 '한 사람'이 되어 뚜렷하게 내 앞에 서 있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을 어쩌다 사랑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나이는 어느 정도 되었는지, 어떤 얼굴로 웃었고 얼마나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을지… 질문에서 상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면 가사에서 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행간에서 솟아오른다. 삼 분 언저리, 길어도 오 분 언저리에서 끝나는 가사들은 그렇게 한 권의 책이자 한 명의 삶이 된다.


노래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이 나에게는 즐거운 놀이기에,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글을 쓰게 하는 것만큼 특별한 노래가 없다. 언젠가 내 취향이 변해서 전만큼 듣게 되지 않더라도 플레이리스트에서는 지울 수 없을 것처럼 기억에 남는다. 이런 노래를 만날 때면 꼭 다른 사람에게 내가 행간에서 건져낸 이야기와 함께 한 번쯤 들려주고 싶어진다. 내게 소중하고 특별한 건 기왕이면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해주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했으면 바라게 되니까. 


이건 누군가에게는 가사 해석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이야기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노래 소개에 가깝겠지만, 아무튼, 내가 노래를 들으며 했던 시시콜콜한 질문들과 함께 읽어냈던 얼굴과 서사를 당신 또한 나란히 듣고 읽어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적어본다.


자꾸만 생각하고 되짚게 만들더니, 어느 순간 뚜렷한 얼굴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래들에 대하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