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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범한츈 Nov 16. 2018

디자이너 친구에게
일 시키는 방법

눈갱을 하라

2010년 11월, 대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꿈에 그리던 디자인 공부를 하루하루 열심히 하고 있던 나에게 옆 전공 영화 전공의 한 선배(교내에서 변태감독으로 명성이 자자했다)가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요청해왔다. 당시에도 취미 삼아 블로그에 포스팅을 위해 소소한 디자인을 해온지라, 나에게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나는 내가 디자인하기 좋은 형태를 위해 나에게는 '영화의 제목'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그 영화의 제목은 매우 난해한 '엄마는 창녀다'였다.

처음에는 고사했다.


영화 제목도 입에 담을 수 없을 지경이었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감독과 스테프까지 뭇매를 맞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디자인 요청에 일단 미팅을 했고, 이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많이 받을 정도로 괜찮은 영화라는 내용을 들었다. 의심반 믿음반의 상태에서 받은 DVD를 보고 나는 이 영화의 타이틀을 다시 디자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상 영화의 내용이 감동적 이서가 아니라, 영화 속에 들어있는 영화 타이틀 디자인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타이틀은 영화가 입는 옷이라고 생각해왔다. 잘 만들어진 영화 타이틀은 영화를 보지 않은 관중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받아본 충격과 공포의  '엄마는 창녀다' 타이틀


반드시 고쳐놓겠다.

사실 영화 내용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잘 풀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 타이틀은 진짜 이상했다. 요즘 말하는 눈갱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다. 진지함을 넘어선 저 폰트 선택하며 붉은 컬러와의 조화는 정말 최악이었다. 마치 80년대에 만들어진 북한의 괴수영화 포스터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것을 본 이상, 반드시 고쳐놔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지금 보다는 더 낫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바꾸어 제안했고,

감독님이 오케이 하여서 영화 타이틀, 포스터, 팸플릿 디자인까지 주욱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 영화는 개봉 첫날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독립영화계에 신선한 신드롬을 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했다. 






2018년 11월, 친한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사업을 하는 친한 친구가 카톡으로 이미지 한 장을 보내왔다.

사실 처음부터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친구가 이 어려운 '디자인'이라는 것을 해냈다는 것에 주안점을 주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좋네! 잘.. 했다..!!(응??)'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이 결과물은 디자이너 통해 나온 것이었고,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은 어느 정도 피드백이 반영된 그러니까, 2차 시안즘 된다는 이야기였다. 비 디자이너의 눈으로 보았을 때도 이건 아니다 싶은데, 이것을 어떻게 피드백을 주면 좋을지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나는 피드백을 주는 것보다 내가 직접 바꿔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피드백을 주고 설명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그랬다.. 



(좌) before (우) after




디자이너 친구들에게 일을 부탁하기란 쉽지 않고,
친한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란 쉽지 않다.

디자인을 하는 친구들에게 디자인을 부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부탁하는 이의 '디자인에 대한 간절함'이 보인다면, 대부분의 디자인 친구들은 부탁을 들어 줄 수도 있다. 대부분 이렇게 간절함을 가진 친구들이라면, 디자인이 몇 가지 소프트웨어를 통해 뚝딱 튀어나올 것이 아니라, 창작의 고통을 따른다는 것을 아는, 디자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 리스펙트를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간절함을 더해 디자인하는 친구의 눈을 괴롭힐 수 있는(?), 확실한 *눈갱용 디자인 시안이 있다면, 디자이너인 친구를 충분히 설득하고 남을 것이다.


*눈갱 - 1. 사진이나 그림 따위를 이용하여 상대편을 괴롭게 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행위




단, 디자이너들은 아래와 같은 말에 상처를 잘 받으니, 아래 글도 참고해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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