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만든 디자인의 끝나지 않은 후폭풍
지난해 연말에 회사 내 나눔 이벤트에서 시작한 '추억의 금성사 월페이퍼 디자인' 프로젝트가 요즘 다시 재조명(?)을 받고 있다. 당시 디자인 이야기는 아래 포스트를 참고하면 된다.
https://brunch.co.kr/@forchoon/365
월페이퍼 배포 이후에 회사에서는 나름 반응이 있었다. 노션(notion)으로 만들어진 월페이퍼 공유 링크가 퍼지면서 우리 사업장 디자인센터 외 타 지역 사업장의 임직원들이 배경화면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해가 바뀌어 2020년이 되었다. 시무식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성사 월페이퍼 디자인'에 대해 사내 홍보팀과 판촉팀, 영업팀에서 디자인 사용 관련 연락이 많이 왔었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뉴트로' 트렌드가 널리 알려지며 홍보, 판촉팀에서 최초 제안된 금성사 레트로 콘셉트를 활용하여 굿즈 제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었다.
사실 '금성사' 디자인 로고에 대해 따져 파고 들어가면 로고 원안 디자인은 순수 내 저작물이 아니고, 특별히 뭘 해보겠다고 만든 게 아니라 단순히 재미로 제작해본 것이었다. 그래서 작년 말에 작업한 디자인 일러스트를 공유해주었고, 홍보팀에서 협력 디자인 업체와 함께 나의 원안으로 디자인 시안들이 나오면 피드백을 주는 형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굿즈들이 제안되었다. 에코백을 기본으로, 모바일 키링, 스트랩, 손난로(당시 겨울이었음), 유리컵, 소주잔 등이 있었는데 1차적으로 '에코백'과, '유리컵'이 선정되었다.
최초 나의 디자인 원안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디자인들이 베리에이션 되었다. 에코백은 처음에 블랙버전만 있었지만, 시안을 공유받을 때가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휩쓸 때였는데, 한 다큐멘터리에서 봉준호 감독이 흰색 에코백을 메고 다니는 걸 보고 흰색 버전도 있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흰색 버전으로도 시안을 만들어 보냈다.
홍보팀과의 금성사 레트로 굿즈 프로젝트는 1월부터 시작되었지만, 중간중간에 시안들도 한 번씩 크게 바뀌어 출시가 좀 늦어졌다. 최초에 나는 금성사 로고 조형만 활용하여 심플함과 레트로만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소비자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좀 더 장식적인 요소들이 필요로 하다고 했다. 디자이너인 나 혼자 쓰는 게 아니라, 엘지를 바라보는 실제 소비자들이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홍보팀의 말에 일리가 있다 생각했다. 에코백에 대해서 정말 다양한 시안들이 제안되었는데, 내부 디자이너들과 홍보팀 분들의 투표로 의해서 현재의 디자인이 결정되었다.
금성사 굿즈 1 - 에코백
금성사 굿즈 2 - 유리컵 세트 (2개 한 세트)
보고 준비와 개인적인 일로 매우 바쁘게 보내고 있던 차에 홍보 팀으로부터 6월 초 곧 굿즈들이 출시된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금성사'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억을 못 하거나, 아예 기억에 없는 사람이 있다. 어쨌든 엘지전자의 전신이 금성사이니, '금성사' 굿즈를 만들더라도 '엘지전자'라는 걸 표기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논의가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에코백 디자인은 '금성사'로 하더라도, tag 같은걸 달아서, 그곳에는 'LG전자'를 표기하거나, 유리컵의 경우 패키지 디자인 한쪽에 금성사 로고, 반대쪽에는 LG전자 로고를 표기하는 식이다.
시안들도 나왔는데, 나의 의견은 "결사반대"였다.
금성 사면 금성사고, 엘지면 엘지지, 두 시대가 공존하면 임팩트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의견이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종본에는 모두 '엘지'가 빠졌다!
한 신문사에서 작년에 내가 공유한 월페이퍼 중에서 메신저 단톡 방 배경에 관심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나도 처음에 금성사의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문구의 '순간의 선택'에서, 단톡 방 월페이퍼의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이었는데 그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어 기사화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4353397
온라인 기사가 게시되고, 다음날 해당 신문사 지면 신문에도 기사가 나왔다. 내가 디자인한 월페이퍼와 함께 기사가 실렸는데, 뿌듯한 순간이었다. (20년 전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산시 홈페이지 경연대회에서 은상 수상 소식을 지역신문 지면을 탄 이후, 2번째며 게다가 전국지 일간지에 실리다니, 이건 캡처를 해두고 고이고이 모셔야겠다)
회사 내부에서 한 연구원이 재미로 만든 디자인이 굿즈까지 나온 스토리가 재미가 있었는지, 평소 즐겨보던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와도 인터뷰를 하는 영광이 있었다. (네이버 디자인 판에 소개됨)
https://m.blog.naver.com/designpress2016/222005378245
기사가 나가고 사내에 알려지면서 몇몇 분들이 제 자리로 찾아오셔서 금성사 월페이퍼를 적용한 스마트 배경화면을 보여주기도 하시고, 한 유튜버가 우리 회사 제품을 리뷰하면서 배경화면으로 설정한 뒤 리뷰를 하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해서 월페이퍼가 자연스럽게 퍼지는 걸 보고, 새삼 뿌듯함을 느꼈다. 특히 굿즈 관련 기사가 나가고 난 뒤 '어디서 구매할 수 있냐'는 진심 어린 문의가 정말 많았는데, 돈을 주고 사고 싶어 할 정도라니 감격스러웠다.
회사 외부에서도 반응이 괜찮다. 특히 이노션 기획자이신 브랜드 보이(광고대행사 이노션 안성은 광고기획자,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 저자)가 소개해준 글이 인상 깊어 캡처했다.
노션 월페이퍼 웹사이트 방문자가 엄청 늘었고, 댓글들의 호의적인 반응이 놀라웠다. ''금성사'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엘지전자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이라는 것을 느꼈다.
격변(?)하는 시대의 디지털화된 디자이너라, 우리 어머니는 항상 내가 무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셨다. 학부 때 '디지털 콘텐츠학부'를 이해시키는데 실패했고, 전자회사에 'GUI' 디자이너로 입사했고, 어떤 일을 하는지 이해시키는데 또 당연히 실패했다. (아직도 제품 디자인을 하는지 알고 계시는 것 같다)
뉴트로 굿즈들이 기사에 나오고, 뉴스 링크를 엄마에게 보냈다. 금성사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있어서 인지 디자인에 대한 격한 공감을 해주었다. (하지만 아직도 뭘 하는지 모르는 눈치)
때마침 장모님이 서울 집에 놀러 오셔서, 작업방 한편에 걸려있는 금성사 에코백을 보고 옛날 기억이 난다며, 감회에 젖으신 눈치(?)였다.
이렇게 사내외를 불문하고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입사 이후로 이렇게 회사에 대한 주제로 사내, 외부 소비자들도 모두 한마음으로 애정을 드러내는 일은 흔치 않은 경험인데, 아직도 이 경험이 익숙지는 않다.
이런 것이 요즘 유행하는 뉴트로 디자인의 장점이다. 엘지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를 기억하시는 분들에게 추억과 향수를 드릴 수 있고, 동시에 기억에 없는 분들은 이런 시도 자체를 유니크하게 바라볼 수 있어 모든 이가 금성사 레트로 디자인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큰 호응을 얻은 것 같아 디자이너로서 뿌듯한 순간이었다.
얼리어답터 에디터가 발행한 골드스타 굿즈 관련 뉴스 기사 하단에 보면 '엘지전자 직원이 쏘아 올린 공'이라는 에디터의 코멘트로 끝난다. 나는 이 문구가 너무 와 닿는다. 작년 말에 재미로 시작한 디자인이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남은 한해 "금성사 굿즈"는 계속될 것 같다. 나는 이제 본업으로 돌아와 주어진 일을 하면서, 어떤 멋진 아이템들이 금성사의 추억을 되살려 줄지, 이제 지켜볼 일만 남았다.
금성사 굿즈 시리즈는 판매되는 제품이 아니라, 엘지전자 페이스북 등의 온라인 이벤트, 베스트샵에서 이벤트로 뿌려질 예정입니다.
금성사 월페이퍼는 아래 사이트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